협박의 심리학 - 감정적 협박을 이기는 심리의 기술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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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은 1879년 독일의 분트(wundt)에 의해 새로운 학문으로써 그 기틀이 마련 되었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심리학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양으로 세분화 되었고, 발전하였다. 과학이 발달 할수록 심리학의 입지가 줄어들 것도 같지만 오히려 심리학은 그 만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많은 비밀을 캐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소우주라 불릴 만큼 방대하고 오묘해서 그것의 완전한 정복은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뇌에 대한 연구 못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가 인간의 심리분석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심리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경제와 사회 그리고 과학 등이 고도화 되어 인간의 심리도 고도화, 안정화를 찾을 것 같지만 오히려 불안정해지고 있다. 문명의 고도화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도화와 동시에 수많은 모순과 병폐가 일어나 인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인간의 심리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심리학은 참으로 재미있다. 우선은 어느 분야에든 자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억심리학,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상담심리학, 생물심리학, 아동심리학, 임상심리학, 조직심리학, 청소년심리학, 학습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긍정의 심리학, 부모의 심리학, 선택의 심리학, 설득의 심리학, 소비의 심리학, (이 책의 제목처럼) 협박의 심리학 등과 같이 학문적 분야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 책 '협박의 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 서적의 계보를 잇는다. 다른 심리학 서적들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실용서로써의 기능을 한다.

 '협박의'라는 단어로 두 가지 내용이 추측 가능하다. 그것은 내가 남을 협박하는 이유와 심리. 또는 남이 나를 협박하는 이유와 심리이다. 이 책은 후자의 경우를 다루고 있다. 즉 비해자로서의 나. 당하는 내가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가해자의 심리와 그의 영향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본문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고, 그 아래 총 11장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본서에서 다루는 협박자의 유형은 네 가지로 처벌형, 자해형, 비해형, 보상형 협박자이다. 각각의 협박자는 우리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반드시 취하게 만든다. 그것은 고도의 심리적 계산이 깔린 것이지만 의식적인 계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면서 몸에 밴 습관에 의한 것이다.

 협박자의 유형은 네 가지이지만 그들에 대한 대책은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SOS'로 1단계 '멈추기', 2단계 '관찰하기'이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대안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안개 극복'이다. 그 대안들은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솔직한 표현으로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알면서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물론 몰랐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을 제시할 때 뭔가 거창한 것을 내놓는 듯 말을 하니 잔뜩 기대하면 실망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안은 제시되어 있으나, 방법은 제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노하우를 공개하면 소득 감소가 우려 되기 때문인지 모르나 -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참을 수 없는 은근한 협박, 가슴을 조금씩 옥죄는 협박에 당해온 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아무리 유명한 격언과 속담 등이 나를 감동시켜도 정작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실행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대안들이 모두에게 효과적일 것이라 장담은 못하지만 실행해 본다고 손해볼 것은 없을 듯 하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마냥 당하는 것보다 시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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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언어 - 하늘문을 여는 열쇠
김우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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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너무나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무척 길어질 것 같아 몇 가지만 짚으려고 한다.



 이 책에 나타난 은사를 사모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한 가지 은사에 집착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시지 필요없는 은사를 주시지는 않는다. 각 은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안에서 각 성도들을 사용하실 때 각자에 맞게 주시는 것이다. 각자의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코 각자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방언이 제일인 양 방언을 계속 강조한다. 한 마디로 방언제일주의이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도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는 과오 범하는데 말씀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지 않는 한 성도가 말씀을 얼마나 엉뚱하게 해석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우리는 지성이 있고, 심령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그분을 통하여 말씀의 비밀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기도 가운데 심도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깊이 연구해 보지도 않고 자기 체험에 비추어 말씀을 오역하는 사례의 전형을 보여준다. 말씀 변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 고린도전서 14:4

 이 구절을 "나는 방언의 은사가 '개인의 덕을 세우는 것'임을 강조했다." 라고 말한다. 즉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바로 앞 구절을 보자.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 고린도전서 14:3

 그리고 그 뒷부분을 보자.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 고린도전서 14:5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시대적 배경과 심정을 모른 채 앞뒤 구절을 살펴본다 하더라도 결코 방언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 고린도전서 14:5

 한 절의 전체 문장에서 앞부분만 뚝 떼다가 "바울은 초대교회 교인들 모두가 방언하기를 권했다." 라고 일축한다. 참으로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성경 변개지 않고 무엇인가? 어느 한 부분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러기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또한 부흥은 믿지 않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고개 숙여 철저한 회개를 통해 구원 받은 성도로 거듭난 사건과 믿는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 살다 회개를 통해 다시금 주께 돌아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지 믿는 성도가 여러 은사 중 하나에 불과한 방언을 한 자리에서 떼로 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흥의 중심에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저자 김우현은 많은 이들이 동시에 방언을 받았다 하여 그것을 부흥이라 칭한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며 호도이다.



  물론 그의 체험이 정말로 성령님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을 근거로 체험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혹 말씀을 근거로 해석했다 하더라도 잘못 해석한 말씀을 바탕으로 체험을 자기 임의로 추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기독교는 결코 신비주의 종교가 아니다. 체험주의 종교도 아니다. 오직 말씀 위에 서서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느끼는 종교이다. 그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 초대 교회는 신비주의적 이단들과 싸워왔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정수가 오늘날에 전해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동일한 문제인,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떼어다가 마음대로 해석 했다는 것이다.



 허튼 사건으로 어린 성도들을 미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부분이 전체인 양 동일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처음 언급 했듯이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각자에게 다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한 채 한 가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내 의견 또한 절대성이 없기 때문에 부디 읽는 이들이 날카로운 분별력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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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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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요한복음 3장16절(이하 3:16로 표기) 은 성경의 핵심이자 요약문이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기독교를 설명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구절이다. 만약 누군가 성경의 말씀 중 가장(가장이라는 단어는 어폐가 있지만) 중요한 구절 단 하나만 제시해 달라고 한다면 이 구절이 언급될 것이다. 실제로 복음 제시 때 항상 언급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하나님(이하 읽는 분들을 고려하여 신이라 표기)은 인간들을 창조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의 관점에서 타락 하였다. 그럼에도 신은 인간들을 매우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용서하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그의 한 몸, 아들이라 칭해지는 자를 이 세상 가운데 내려 보냈다. 신의 논리에 따라 그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게 하였고, 마침내 그를 통해 인류와의 화해를 이루어 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의 줄거리이고, 그것을 다시 압축한 것이 요한복음 3:16의 내용이다. 성경을 다 몰라도 위의 한 구절만 정확히 이해한다면 기독교의 중심 줄기는 이해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요한복음 3:16절에 대한 책으로써 그것을 신학적으로 분석한 책은 아니다. 그 구절과 관련 네 가지 대주제 - 1.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2. 사랑하는 만큼 헌신한다 : 독생자를 주셨으니, 3. 믿는 만큼 전도한다 : 그를 믿는 사람마다, 4. 내 생애 최고의 축복 :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를 통해 신이 인류에게 준 것들과 그에게 우리가 얻은 것들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 설명한다. 자신이 겪은 일들이나 누군가 겪은 일들을 차용하여 각 주제를 이용하는 것을 돕는다. 때문에 내용 이해가 쉽고, 크게 지루하지 않다. 미국 기독교계에 소문난 입담가인 저자의 양념 버무리는 솜씨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자인 맥스 루케이도는 미국 서점가에서 상당한 파워가 있는 작가이자 목회자이다. 그는 수십 수백만의 고정적인 독자를 거르리고 있다. 그렇기에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매우 유명하고, 그의 책은 나오는 족족 잘 팔린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될만한 책인가? 팔릴만한 책인가?이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찬사가 무려 20여개나 실려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글, 그의 책에 수많은 독자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책이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독교인에게 진리는 오직 성경 말씀이다. 기독교인은 성경책을 세상 그 어떠한 책보다 가장 많이 읽어야 하고,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신 여러 유명 작가의 글은 항상 읽고 열광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정작 그들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은 옆으로 밀어둔 채, 그들이 열광해야 할 성경책은 일주일 중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 시 잠깐 펼쳐보는 것으로 그치면서 유명 작가들의 책은 항상 본다니. 좇아야 할 것은 좇지 않고, 엉뚱한 것을 쫓고 있는 우스운 꼴을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글솜씨는 대단하다. 때론 동화 같아서 우리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고,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성경 말씀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알기 쉽게 풀어준다. 이는 자칫 중심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이용한 공식으로 인해 엉뚱한 답을 찾아내거나 답은 찾지 못하고 문제 풀이로 헤매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씌어진 책이 오히려 진리 행세를 할 수 있다.

 소위 유명 작가들의 책들이 다 그렇다. 성경의 말씀을 잘 알고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말씀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말씀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한 마디로 옥석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말은 너무나 유려하고, 대개의 독자들보다 더 뛰어난 논리력을 가지고 있어 자칫 오류를 바른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도 전자의 입장이거나 그런 것들을 다 신경 안 쓰고 내용을 즐길 사람이라면 마음껏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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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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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저마다 진리라 자칭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어느 것이 진정한 진리인가? 왜곡된 거짓 진리가 우리의 눈을 가려 진정한 진리를 분간하기 어렵다. 우리의 엄격한 분별의 능력이 필요한 때이다.

 진리의 분별은 오직 성경을 기반으로 했을 때에만, 말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분별력은 왜곡된 진리에 놀아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말씀을 항상 묵상하여 그것이 뜻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믿는 자들 중 많은 이들이 사모하는 방언에 관한 책이다. 그것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저작 중 이처럼 방언을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책은 본적이 없다. 때문에 내용히 단호하다. 그리고 책을 급하게 쓴 것인가 - 어느 한 책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이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문에 충분한 여유를 두어 조사하고 숙고하여 쓴 것이 아니라, 그 책의 열기가 식기 전에 급하게 쓴 것 같다(그 책은 2007.07.04, 이 책은 2008.02.25에 출간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 아니면 원래 책을 그렇게 쓰는가 그도 아니면 감정적으로 쓴 것인가(이것은 바로 앞에 언급한 이유로 추측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거친면이 있다.

 저자 옥성호는 '은사 중지주의'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그는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인 방언이 아니다.' 라는 완강한 전제로 이 책을 써내려 간다.

 신학을 전공한 이는 아니지만 방언에 대해 상당히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방언을 언급하고 있는 신약의 구절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 어느 한 구절만 따로 떼어 들여다 보지 않는다. 방언을 언급하고 있는 앞뒤 말씀을 모두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수긍할 만하다. 물론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분석하고 있는 구절들이 씌어지게 된 배경에서부터 은사에 대해, 말씀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방언에 대한 정의와 그것에 대한 조사로부터 얻어낸 자료와 오늘날의 방언에 대한 자료를 비교한다. 그 결과는 앞서 말했듯이 '현대의 방언은 성경적 방언이 아니다.'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방언에 대한 국내외 많은 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용한 책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많은 책을 인용한다고해서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쓸모 없는 열 개의 책보다 확실히 검증된 한 개의 책을 인용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방언을 옹호하는 책들의 내용이 다 비슷하여 한 책만 대표적으로 인용한다는 이야기는 하고, 자신의 입장을 돕는 책은 왜 몇 가지만 인용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아 균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 중지주의' 입장 외에, 즉 중립은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는 대립되는 의견은 모두 반대한다. '만약...' 이라는 자신의 의견이 100% 맞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소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의 입장을 수용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는 하는 넓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아쉬움이 든다. 물론 한 쪽 입장에서 쓴 책임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모습이 이해는 간다.

 앞서 여러 차례 언급 했듯이 이 책은 어느 한 쪽, 은사 중지주의의 입장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그 반대 입장인 은사 지속주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자신과 철저하게 반대되는 의견으로 자신을 자극하는 내용을 좋아 할 이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입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반대의 입장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면 마음을 열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조심스레 권유해 본다. 그리고 같은 입장이면 자신의 의견을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해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끝으로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주장을 잘 알고 있어야 하므로 또한 추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은사 중지주의자나 지속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 그 이유는 내게는 하나님, 성령님의 역사를 감히 판단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아직 성경을 잘 알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말씀에 더 다가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내게도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을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의 의견을 견지한다. 물론 나름의 기준으로 취할 것은 취하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은 취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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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리처드 용재 오닐 지음, 조정현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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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의시가 될거야.". "나는 대통령이 될거야." "나는 선생님이 될거야." ... ...

 초등학교 시절 나를 비롯한 나의 친구들은 (반강제에 의해) 모두 한 가지씩 꿈을 갖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그 시절에는 대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꿈꿨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의 전기를 읽거나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연히 그들의 삶에  열망하게 되었다. 우리의 초점은 당연히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지금 세대는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으나 무척 다르다는걸 느낀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어릴적 꿈은 농부와 버스기사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삶은 어떠한가? 전혀 생각도 않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그렇다. 자신의 어릴적 꿈을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그것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어릴적 꿈은 단지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의 꿈일 뿐, 분명한 비전이 아닌 까닭이다.

 용재 오닐의 음악인으로써의 삶은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다섯 살 때 시작된다. 할아버지께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할아버지께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게 어떠냐고 말씀 하셨다. 그것이 그의 현재 인생의 시발점이다.

 그의 가정은 유복하지 않았다. 당연히 음악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전적인 도움으로 그는 그 길을 갈 수 있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기 떄문에 할머니는 많지 않은 수업료로 손자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았다. 그리고 먼 길도 마다 않고 손자를 선생님에게 데려 갔다. 십 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것도 여든의 연세에 하루 6시간 씩이나 운전을 하면서!!! 그 사랑과 은혜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에 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젊은 이도 장시간 운전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여든의 나이에 그 많은 시간을 매일 운전하다니!!! 그 사랑을 어찌 잴 수 있으랴!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제나 낯선 만남, 클래식', '클래식이 나에게 준 7가지 추억', '클래식이 당신에게 주는 7가지 선물' 순서로 되어 있다.

 1장에서는 음악, 예술, 즉 클래식에 대한 생각들을 삶과 연관지어 이야기 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클래식을 하게 된 배경과 그것을 하며 얻게 된 귀중한 경험들, 그로부터 느낀 것들을 나눈다. 마지막 3장에서는 클래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안겨 준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용재 오닐의 삶 속에 나타난 가족과의 관계, 그 안에서의 사랑. 다른 하나는 그의 인생, 음악 - 클래식 - 에 대한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용재 오닐의 삶 속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 못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느 가족보다 풍성한 유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알 수 있다. 가족과 클래식이, 그의 삶과 클래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을 읽고난 느낌은 참으로 '감동적이다'는 것이다.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풍부한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용재 오닐은 도전 했고, 꿈을 이루었으며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 가고 있다.

 그의 가정은 비록 부유하지 않았지만 결코 부족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서 남들보다 차고 넘쳤다. 용재 오닐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이다. 그것이 그가 오늘에 이른 가장 큰 일등공신이 아닌가 한다. 위에서 말한 노조모의 지고지순한 헌신이 없었다면 그는 오늘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할머니의 사랑은 매우 각별하고 켤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회상을 하는 장면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독자의 경험과 어우러진다면 배가 될 것이다. 책 제목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이 책이 감동적이긴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모든 내용이 세 가지 대주제를 중심으로 흐른다. 하지만 각 내용은 서로 시간의 순서나 세 중심 주제를 기반으로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산만하다. 이 내용이 나오다 저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각 내용에 몰입할 수는 있어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집중하기가 힘든 구조이다.

 

 용재 오닐의 삶과 꿈을 통해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다. 나와 우리 가족과의 관계, 나의 꿈을 말이다. 용재 오닐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였다. 그의 꿈이 싹튼 것은 유년의 삶, 가족 안에서였다. 나는 어떠한가? 물론 그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같아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그 모두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놓치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다시 붙잡을 수는 있으나 만회 할 시간은 부족하다. 그래서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시간이 남은 시간을 앞지른 까닭이다. 버린게 주울 것보다 더 많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래도 잡았다면 지난 시간을 교훈 삼아 앞으로의 시간에 충실하면 된다. 잡고 있었다면 더욱 단단히 붙잡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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