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운동과 성령 세례
변종길 지음 / 말씀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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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세례와 성령의 은사 등에 대해 신학자들 간에 뜨거운 논쟁이 오가고 있다. 물론 그 논쟁의 열기가 지금은 사그라든 듯 하지만, 어쨌든 그 논쟁은 여전히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있다. 두 대립각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로 간에 초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의견이 맞는지 당장에는 결론이 나지 않을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를 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하나님께 쏟으려면 신학적 난제들을 풀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을 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신앙생활 계속 해나갈 것이다. 각자의 견해가 신앙에 치명적인 독이 되지 않는 한 서로의 견해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하여도 우리는 성도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편을 택하는게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이 아닐까 싶다.

 

 

 

 '오순절 운동과 성령 세례'

 

 본서는 성령론 중에서 참으로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19세기에 발생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순절 운동, 그것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성령 세례를 논하고 있다.

 

 본문은 총 2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오순절 운동의 역사를 다루고 2부에서는 오순절 사건과 성령 세례를 다룬다. 먼저 1부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오순절 운동의 핵심은 '성령 세례'에 있고, 특히 '회심 후 체험'으로서의 '성령의 세례'를 강조한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이러한 오순절 운동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을 유보한다. 그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는 오순절 운동을 평가할 때 '교리'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온전한 평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앙생활은 교리만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신앙생활은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가깝고도 밀접한 관계에서 오는 '풍성한 생명'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오순절주의자들이 교리 부분에 있어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이지 않다면, 그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풍성하고 능력 있는 영적 생명을 누린다면 그것대로 인정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교리에 있어서도 치우치지 않고 생명에 있어서도 부족하지 않은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기에 본서에서 교리만 평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이해를 구한다.(25, 26p)

 이어서 저자는 오순절 운동의 역사를 조사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18세기에 웨슬리로부터 발생한 메소디즘에서 기원하여 19세기 찰스 피니로부터의 부흥 운동, 그리고 R. A. 토리의 성결운동,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오순절 운동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1950년대에, 오순절교단을 뛰어 넘어 비오순절 교회로까지 퍼지게 되는 신오순절 운동의 출현을 더한다.

 

 다음 2부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한 오순절주의자들과 전통적 교회의 견해를 비교 분석하며 그 대립의 해결을 찾는다. 먼저 저자는 오순절주의자들과 신오순절주의자들은 오순절 사건에서 제자들은 그 전에 중생한 것이 분명하므로 오순절 사건은 제자들에게 있어 '두 번째 체험'이기 때문에 '성령 세례'는 '회심과는 구별되며 보통 회심 후에 일어나는 체험'이라는 주장을 한다고 한다. 반대로 전통적인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구속사적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두 번째 체험'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첫 번째 사건'으로 보려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저자는 한 가지 문제제기를 한다. 전통적인 교회는 오순절 사건 전에 제자들이 중생한 것에는 동의하는데, 그렇다면 오순절 사건에서 제자들이 받은 성령 세례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상의 대립과 문제에 대해 저자는 나름의 견해와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기본적으로 오순절 사건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전통적인 견해가 옳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지적한 문제, 오순절 사건 전에 중생한 제자들이 오순절 사건에서 받은 성령 세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안한 말이지만 본 평에서는 그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을 적지 않겠다. 그것까지 적는다면 다른 독자들이 본서를 읽을 맛이 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서는 성령론 문제에 있어 특히 '성령 세례'에 집중하여 분석을 시도하고, 답을 찾아 나간다. 그런데, 성령 세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 책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출간 되어 있다. 그 책들을 다 읽었다면 본서는 별 흥미를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서는 다른 책들이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은 부분(위에서 답을 생략한 저자가 지적한 문제)을 다루고 있기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저자가 특별히 지적한 문제에 대해 다른 책들은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으나 '성령 세례'를 풀어가는 맥락 속에서 자연스레 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특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본서의 토대가 되는 저자의 논문이 나온 시기는 꽤 지났기 때문에, 이미 그 부분에 대한 답을 구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문제를 보다 구체화 시켰기 때문에 본서를 통해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이고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령 세레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읽어볼 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 평을 마무리 하기 전에 성령 세례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제시함으로 한쪽 견해를 소개하고 싶다. 전통적인 견해로, 성령 세례는 신자의 중생 때 함께 받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중생과 동시에 성령 세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중생한 이후에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노력 할 필요가 없다. 오순절주의자들의, 방언이라는 가시적 은사(방언에 대한 견해차도 조율 할 필요가 있지만)가 성령 세례의 증거이기 때문에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오순절주의자들이 아직도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하는 것은 헛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성령 세례를 받았음에도, 그 증거가 방언이라는 잘못된 주장에 따라 그것을 받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려 한다면 어서 생각을 바꾸고 그 시간에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게 그분과 본인에게 훨씬 더 유익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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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사자 2022-05-0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매 전에 많은 도움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