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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망가뜨리는 내 안의 말썽쟁이 길들이기
폴린 월린 지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살며 평소의 내가 아닌 나를 맞딱뜨릴 때가 종종 있다. 평소엔 조용했던 나인데 어느 순간 화를 내고 있고, 반대로 평소엔 시끄러운 나인데 조용해져 있는 등 평소와는 다른 내가 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저자는 이것을 내 안의 또다른 나 즉, 말썽쟁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안의 말썽쟁이는 정신분열적 이중의 내가 아니라, 저자가 책속에서 수차례 밝히듯 '단순히 다양한 사고 방식과 느낌, 행동을 묘사하기 위한 하나의 편리한 방식' 곧,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형상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 책에는 27년 동안 임상 심리학자로서 저자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지식들이 담겨져 있다. 그녀의 오랜 경험 덕분에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심리학책이라면 으레 따르기 마련인 지루함과 어려움을 몰아낼 수 있는 그리고 우리의 고개를 자신도 모르게 끄덕이게 만드는 약재가 되었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우리 안의 말썽쟁이는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것이 생겨난 원인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그것에 맞서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들어가며 우리를 지루하게 하고, 괴롭게 하지 않는다. 심리학 용어가 나오긴 하지만 자신의 설명을 돕기위해 몇 개만 차용하고 있다. 대신 말썽쟁이라는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으로함으로써 우리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지루해진다. 반복되는 설명이 조금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책속에서 말하는 말썽쟁이가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왜 자신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리게 되는지 알게해 준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부적절한 행동들을 어떻게하면 고칠 수 있는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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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고전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전을 찾는 이유는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사람들로부터 그 가치를 분명히 인정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곡' 또한 쉽게 읽혀지는 책이 아니다.
 역자가 지적 했듯이 '전체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방대한 내용과 주제 및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 가 넘치는 까닭에 그에 따른 '배경 지식과 정보'를 갖추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까닭이다. 

 

 '열린책들'에서 이번에 새로 출간된 '신곡'은 역자 김운찬 교수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타번역본에 안타까움을 느낀 역자가 오랜시간 공을 들여 번역 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책은 번역이 얼마나 잘 됐는지 모르겠다. 첫째로는 원서와 비교 할 능력이 안 되고, 둘째로는 그나마 비교해 볼 수 있는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지 않은 까닭이다. 

   
 읽고난 후의 느낌은 역시 '고전답다'이다. 
 내용이 뭇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 안에 사용된 배경 정보와 지식 또한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그것을 완벽히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가며 수차례 읽어(도 겨우)야 조금 이해 할 수 있지 싶다. 

 

 신곡 자체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그 보다 훨씬 고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그가 실제로 사모 했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등장시켜 그들이 자신을 각각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안내한다는 설정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그 누가 상상하고, 표현해 내려 할까?

 필시 살아서 경험해 보지 못했을 그 세 곳을 어찌 그리 생생히 묘사할 수 있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종교인에게는 민감한 그곳을 비록 일부는 다른 곳에서 참고 했다고는하나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민감했을 이야기일텐데 그것을 그린 그의 상상력과 표현력 그리고 과감성에 혀를 내둘렀다.

 앞서 말했지만 다른 번역본을 보지 못한 까닭에 애석하게도 이 번역판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다른 쪽으로 몇 자 적자면...

 삽화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삽화라는 것이 책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읽는 것이 지루해질 즈음 쉬어가는 시간을 주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읽는데 애를 먹었다.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쉼없이 읽어야 하니 어찌 곤혹스럽지 않을까?(하지만 삽화가 없는 이유를 다른 분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되어 다행이다.)

 곡 옆에 해설이 붙어 있어 글을 읽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주석이 붙은 책을 읽을 때 반드시 맞딱뜨리는 문제인 '오로지 본문, 본문 + 모든 해설, 또는 본문 + 필요한 해설' 중 어떠한 방식으로 읽어야 하나에 빠졌다. 
 본문만 읽는다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해설을 동시에 읽는다면 글을 읽는 흐름이 계속 끊겨 글에 집중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설을 보지 않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가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결국 세 가지 중 마지막을 택했다. 

 해설에 대한 다른 생각은 해설이 글 바로 옆에 있어 보기 편했다는 것이다.
 대게 해설은 본문 맨 밑이 아니면, 책의 가장 뒤에 가져다 놓는데 두 가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뒤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물론 본문에 해설이 있으면 눈길이 자꾸 가서 본문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지만 - 책을 다 읽고 나중에 볼 것이 아니라면 - 이왕 볼 것이라면 본문과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열린 책들'의 신곡처럼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것(물론 신곡은 시 형식이라 가능한 것이지만)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흐름이 끊어지는 것을 가장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 바라고 바라던 신곡을 읽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해서 아쉽다. 그렇기에 앞으로 두고두고 보며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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