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부서지기 전에 에버모어 연대기 1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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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에밀리 킹!!!

<백 번째 여왕> 시리즈를 읽으면서, 에밀리 킹만의 판타지 세계에 푹 빠져들었어요.

이번 신작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놀라운 판타지 세계와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해요.

시계태엽심장을 가진 소녀 에벌리.


읽는 내내 똑딱똑딱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심장 소리가 유난히 빨라진 이유는 단 하나.

<별이 부서지기 전에> 때문에.

에버모어 연대기 3부작으로 1권을 읽고나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팔딱팔딱.


신기해요.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내다니.

작가야말로 대단한 창조주인 것 같아요. '시간'을 주요 테마로 한 점이 멋져요.

주인공 에벌리는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있던 저택에서 습격을 당했고, 심장을 찔린 그녀만 유일한 생존자가 됐어요.

시계수리공인 홀덴 삼촌이 비밀리에 에벌리의 심장을 시계태엽심장으로 교체하여 살아났어요. 어떻게 그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어요.

가족의 복수를 꿈꾸며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시계수리점으로 젊은 해군 대위 재미슨이 찾아왔고, 뒤이어 에벌리의 심장을 찌르고 가족을 죽인 원수와 맞닥뜨리게 돼요. 그는 바로 마크햄 총독.

아이슬린 여왕이 비수섬을 관리할 총독으로 마크햄을 임명했고, 그는 곧 비수섬으로 항해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된 에벌리는...

열일곱 살 에벌리는 오직 복수심에 불타올라, 비수섬으로 가는 레이디 레기나호에 오르게 되고, 위험천만한 모험이 시작돼요. 

처음에는 에벌리의 시계태엽심장이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점점 '심장은 시계'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판타지 세계에서도 '시간'은 절대불변의 진리를 알려주네요.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선물이에요. 소중한 삶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요."  (212p)


복수를 위해 살아온 에벌리에게 재미슨이 해준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재미슨은 매우 현명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는 복수하거나 아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에 쌓인 것을 흘려보내어 자유를 얻고자 했어요. 그가 겪은 일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인간의 품격을 지닌 것 같아요. 반면 탐욕스러운 인간은 그저 괴물일 뿐이에요. 괴물과 맞서 싸우게 된 소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생명의 땅은 일곱 세계 중 하나다. 

다른 세계는 젊음의 땅, 약속의 땅, 낯선 자들의 땅, 은빛 구름 평원, 파도 속의 땅, 그리고 기쁨의 평원이다." (150p)

...

"아이오차는 하늘에서 조용한 망각의 대지로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물방울은 세찬 물줄기가 되어 황량한 땅을 적셨다. 물에 흠뻑 젖은 한 자락 땅에 아이오차는 씨앗을 심었다.

그곳에서 어린 묘목이 싹을 틔웠다. 창조주는 그녀를 모든 것의 어머니, 마드로나라고 불렀다.

그리고 시간의 지배자에게 묘목을 보살피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이오차는 그에게 별을 빚어 만든 검을 하사해 마드로나를 지키게 했다.

묘목의 몸통 속에 들어 있는 하트우드의 박동에는 생명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마드로나는 강력한 엘더우드로 자라났다. 그녀는 아이오차의 가장 강한 창조물이다.

나무는 숲에 갖가지 씨앗을 뿌려 자라나게 했다. 머지않아 그녀는 다른 엘더우드들에게 둘러싸였다.

나무들은 모든 식물과 생명을 자라게 했다. 

아이오차는 그녀의 정원을 에버우드라고 부르고, 생명의 땅과 분리했다.

그리고 신성한 땅 에버우드에 일곱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맡겼다.

에버우드는 번창했다. 창조의 힘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을 잉태했다.

비록 인간이 에버우드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마드로나의 얼굴은 해가 뜰 때 볼 수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새 생명이 태어날 때 들을 수 있다.

또 도토리를 귀에 갖다 대면 무지개처럼 활기차고 즐거운 생명의 부름을 들을 수 있다."  (1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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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성교육을 합니다 - 소년부터 성년까지 남자가 꼭 알아야 할 성 A to Z
인티 차베즈 페레즈 지음, 이세진 옮김, 노하연 감수 / 문예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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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답답하네요.

최근 여성가족부가 전국 초등학교에 배포한 성교육 도서를 전량 회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일부 보수진영에서 선정성 논란을 제기했기 때문이래요.

50년 전 덴마크에서 출간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1971)라는 그림책.

여자와 남자가 벌거벗은 그림이 나오고, 성관계를 재미있는 일로 서술한 것을 문제라고 지적한 거예요.

이 책의 저자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덴마크에서도 책이 발간된 뒤 기독교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내 책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되레 난 그해 정부의 아동문학상을 받았다"라고 밝혔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성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그 점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 성교육 그림책의 선정성을 문제 삼기 전에, 현재 벌어지는 미성년자들의 디지털 성범죄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싶어요.

온라인으로 퍼지는 음란물, 불법촬영물은 어떻게 막을 거냐고요.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해요. 여기, 제대로 된 성교육 교재가 출간되었어요.

스웨덴 성교육 전문가가 쓴 소년부터 성년까지 남자가 꼭 알아야 할 성교육책이에요. 저자는 스웨덴 정부가 임명한 성평등 전문가라고 해요.

이 책의 핵심은 '존중'과 '동의'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알려주고 있어요.

성평등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와 소통에서 시작된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해요. 

앞서 언급했던 덴마크 그림책이 초등학생용이라면 이 책은 청소년 필독서라고 할 수 있어요. 

성교육 교재 내용을 선정적이라고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 정말 궁금하네요. 

이보다 더 정확하고 세밀한 성교육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식들을 알려주고 있어요. 이건 정말 중요해요. 

책에도 나오듯이 포르노에서 현실의 섹스를 배울 수는 없어요. 호기심이든 뭐든, 성교육 없이 포르노를 먼저 접한 남학생이라면 그릇된 성 인식이 생길 위험이 있어요. 

불과 얼마 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다크웹,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사건의 범죄자들이 미성년일 때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돼요. 그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았더라면 그토록 잔인한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을까요. 적어도 죄의식을 느끼는 양심은 있어야 하는데...


성교육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물학적 지식인 남자와 여자의 몸을 설명하는데, 자세하게 묘사된 그림이 선정적인가요?

성(性)은 감추고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당한 거예요. 

이 책에는 올바른 성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있어요. 혹시나 지나치다 싶으면 부모 입장에서 걸러줄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성교육이니까 나중에라도 끝까지 완독하면 좋겠어요.

잘 배운 성교육이 좋은 남자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굿가이드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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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도 안전해요 초등 교과연계 알려줘 시리즈
박신식 지음, 젤리이모 그림 / 소담주니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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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뛰어놀던 일상이 사라졌어요.

아이들뿐 아니라 모두의 일상이 바뀌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바이러스 공포증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는 것이 힘!

<바이러스에도 안전해요>는 어린이들을 위한 바이러스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초등 사회 교과연계로 구성된 내용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찬물에 손 씻기 싫어하는 진주가 주인공이에요.

'노로바이러스'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진주의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어요.

노로바이러스는 급성 장염을 일으키는 전염성 바이러스로 겨울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범이에요. 주로 오염된 물이나 굴, 조개, 생선 같은 수산물을 익히지 않고 먹을 경우, 구토물, 침 같은 분비물이 묻은 손으로 음식을 먹을 경우 걸릴 수 있어요.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라서 더욱 주의해야 해요. 

노로바이러스는 백신이나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이 가장 중요해요. 30초 이상 손을 세정제로 깨끗이 씻고 흐르는 물로 충분히 헹궈야 해요. 특히 화장실을 사용한 후나 음식을 준비하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해요. 

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슬찬이를 보면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집콕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아이들이 짜증을 내거나 답답함을 토로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아직 어린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어른들도 이해해줘야 할 것 같아요. 짜증이 심해졌다고 야단칠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노력이 필요해요. 가족끼리 투닥투닥 싸우는 일이 늘었다면 백퍼센트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힘들 때일수록 서로 배려하면서 이겨내야 될 것 같아요.

세 번째 에피소드는 민호를 통해서 답답한 마스크를 왜 써야 하는지, 올바른 마스크 사용법은 무엇인지를 알려줘요.

학교에서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받는 일은 너무나 힘들어요. 그래서 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마스크 수칙은 우리 모두가 잘 지켜야 안전할 수 있어요. 내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건강도 지켜주는 일이에요.

네 번째 에피소드는 감기를 비롯한 여러 바이러스 감염 때 알아야 할 슬기로운 대인관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누군가 콜록콜록 기침만 해도 화들짝 놀라 피하게 될 거예요. 당연한 반응이에요.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지 마음까지 멀어지면 안 되겠지요?

감기와 독감은 사계절 내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간에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배려심이 필요해요. 모두 침으로 인해 감염되기 쉽기 때문에 손을 자주 씻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손수건이나 휴지, 옷깃, 팔꿈치로 입을 가리는 것이 좋아요. 사람이 많은 장소는 되도록 방문을 피하고,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마스크를 꼭 쓰고 다른 사람과의 간격을 두며 건강 거리를 지켜야 해요.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완치 후에도 타인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서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종민이의 일상을 통해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질병 예방지식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책이네요.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감하고, 배울 수 있어서 좋네요. 무엇보다도 초등 교과학습을 위한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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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 병법의 구도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우오즈미 다카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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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손자병법은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병법은 아예 아는 바가 없습니다.

심리적 거리감 혹은 거부감이 컸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둬내고 병법의 도(道)를 만나기 위해 이 책을 펼쳤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 최고의 무예가이자 병법의 구도자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가 아닌 무사시의 진정한 모습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자료 검증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최대한 기본 자료로 되돌아가 엄밀한 검증을 바탕으로 무사시의 생애가 전개되는 과정을 고찰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륜서』는 교토에서 "천하의 병법자들"과의 "수차례 승부"에서 이긴 후, 

"천하를 돌아다니며 여러 유파의 병법자들을 만나 60여 차례 승부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라고 쓰고 있다.

이것이 "스물 여덟, 아홉 살까지의 일"이라고 한다.

"천하제일"을 칭하는 이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유파의 병법자들과 대결해 그 실력을 입증해야만 한다.

... 무사시는,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검의 도를 끝까지 추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84p)


50세 무렵 무사시는 드디어 병법의 도를 터득했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 1631년으로 추정됩니다.

1630년대 후반 조선은 병자호란으로, 일본은 시마바라의 난으로 엄청난 전쟁을 겪는 시기라고 합니다. 무사시는 시마바라의 난에 출전했고, 난이 종결된 1638년에 14개조의 검술 이론서를 문하생들에게 전수했다고 합니다. 50대 후반에 저술된 『병법서부』는 20대 중반에 작성된 『병도경』에서 『오륜서』로 발전되는 전개 과정으로 보이며, 검술 이론이 상당히 완성 단계에 가까워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책 속에 달마도뿐 아니라 여러 수묵화 작품이 나옵니다. 모두 무사시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중 달마도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가이쇼모노가타리(1666)』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주군으로부터 달마를 그려보라는 말씀이 있어 무사시가 혼신의 힘을 쏟아 그리려 했으나 좀처럼 붓이 움직이지 않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잠자리에 누웠는데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말하길, "내가 마음껏 병법을 발휘하지 못했기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161p)라고 하더니, 제자에게 불을 밝히게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멋진 그림을 완성했다는 겁니다. 훗날 제자들이 어떻게 그런 그림이 나왔는지를 묻자, 무사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내가 병법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칼을 잡을 때는 무아지경으로 해야 하는 법,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데, 높은 지위나 비천함이 무슨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그리자 비로소 그릴 수 있었다." (162p)


병법의 도를 검조차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무사시의 생애를 통해 병법의 도를 추구하는 자의 기상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사시 입장에서 무사의 정신이란 죽음을 각오하는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도를 행하는 사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병법의 도에서의 마음가짐은 평소 그대로의 평상심과 달라서는 안 됩니다. 평소에나 전투에 임해서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마음에 여유를 갖고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으며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중심을 바로잡으면서 집중하는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무사시가 『오륜서』의 붓을 내려놓은 것이 죽기 일주일 전이었다고 합니다. 평생에 걸쳐 도달할 수 있었던 병법의 올곧은 도를 후세에 남기고자 마지막 날들을 집필에 집중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일본인들에게 미야모토 무사시는 시대정신을 구현한 최고의 무사이자 위대한 유산을 남긴 구도자였음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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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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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만났고,

서로를 알아봤고,

걸어왔던 길과 걸어가고 있는 길과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이야기했다."   (23-24p)


살다보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발견하곤 해요.

그 경계는 좋거나 나쁜 무엇이 아니라 너와 나를 구분짓는, '다름'의 발견인 것 같아요.

이 책은 저한테 그 '다름'이 보여주는 새로운 '길'이에요.


저자는 도시소설가로서 사방이 콘크리트인 작업실을 벗어나 문장 밖을 쏘다니고 싶었고, 수많은 농촌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해요.

가장 많이 간 마을이 전라남도 곡성군이었고, 그곳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된 거예요.

농부과학자 이동현님.

곡성군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美實蘭) 대표이자 미생물 박사라고 해요.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부라고 해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서로의 곁에 머물면서 달라지는 과정이 이 책속에 담겨 있어요.

저자는 그 시간들을, '두 번째로 내 삶을 깨우는 시간'이자, '우리가 함께한 발아의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새롭고 낯선 만남이 특별한 인연이 되어, 서로를 흔들어 깨우면서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져요.


"아름답지요?"

곡성에 갈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고 해요. 아름답지 않느냐고 묻던 그곳은, 저자에겐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장소였대요.

그래서 침묵한 것인데, 이 대표는 오히려 강한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웃고 넘어갔다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봤어요. '오늘 나는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꼈지?' 

우리가 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매혹되었기 때문이에요. 강렬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관계 속에 아름다움이 있어요.


땅에 매혹된 소설가와 이야기에 매혹된 과학자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어느 순간 그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두 사람의 낯선 삶이 나를 흔들어 깨우네요. 경험해본 적 없는 그들의 삶이 나에게 영향을 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어요. 

초록빛 물결을 이루는 논두렁 사진을 바라보며, 사람과 동식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진짜 세상이 보였어요.


씨나락은 내년 농사에 사용할 볍씨고, 오가리는 장독의 사투리래요. 옛날부터 한반도엔 터주 즉 집터를 지키는 지신(地神)을 모시는 신앙이 있었는데, 전라도에선 철륭, 경상도에선 텃고사, 충청 이북엔 터주라고 불렀대요. 전라도에선 집 뒤 장독대에 대부분 철륭을 모셨는데, 청단마을에서 철륭을 오가리에 모신다는 풍습 자료를 읽고 두 사람이 직접 찾아갔대요. 아흔여섯 살 김씨 할머니에게 철륭 오가리 이야기를 꺼냈더니, 툇마루로 데려갔대요. 나무판 세 장을 걷어낼 때까지 할머니는 뒷짐을 진 채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바라보시더래요. 오가리는 거기 그대로 있었대요. 할머니는 열여덟 살 꽃다운 나이에 이 험한 골짜기 마을로 시집와서 아흔여섯 살까지, 긴 세월을 농사짓고 가족을 챙기며 보냈대요. 

"고맙구만, 고마와." 

"저희가 고맙죠. 오가리를 마루나 방 밑에 묻어두고 썼단 얘길 듣기만 했지 직접 본 건 처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시상 뜨기 전에 저것을 다시 몬챠볼 줄은 참말로 몰랐네. 영판 고마와."  (147-148p)

...

곡성은 대대손손 벼농사를 짓고, 쌀을 신앙의 대상으로 떠받든 곳이었다. 

미실란과 곡성은 '쌀'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너무나도 어울리는 조합인 것이다.

이것은 정녕 우연일까. 오가리에 깃든 철륭이 미실란을 곡성으로 끌어당긴 것은 아닐까.

툇마루 밑에 오가리를 숨긴 까닭이 가족 먹을 곡물을 감추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가리는 김 할머니 가족이 가장 소중한 것을 두는 비밀 금고이기도 했다.

다른 것은 다 빼앗긴대도 결코 내어줄 수 없는 물건을 거기에 뒀다. 툇마루 밑 오가리에 모신 씨나락을 떠올려보라. 

거기에 철륭이 깃드는 것은 농부에게 씨나락이 곧 목숨이기 때문이다. (149p)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는가.

얼마나 자주 소중함을 되새기며 새로운 다짐을 보태는가.

저자는 우리에게 묻고 있어요. 

세상 풍파가 거셀수록 내 삶의 중심으로 돌아와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 마음의 오가리를 열고 씨나락을 품으라고 이야기하네요.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라고요.


지금 우리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지겨내는 의지가 필요해요. 큰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굳건한 뿌리를 내려야 해요.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농부의 일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네요. 매혹적인 이야기꾼 덕분에.


발아 = "한껏 솟아오르고 또 한껏 뻗어내려"

모내기 = "세상의 모든 마음을 주고받다"

김매기 = "지키고 싶다면 반복해야 한다"

추수 = "여기까지 왔고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파종 = "사람이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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