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 - 병법의 구도자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우오즈미 다카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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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손자병법은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병법은 아예 아는 바가 없습니다.

심리적 거리감 혹은 거부감이 컸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둬내고 병법의 도(道)를 만나기 위해 이 책을 펼쳤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 최고의 무예가이자 병법의 구도자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가 아닌 무사시의 진정한 모습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자료 검증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최대한 기본 자료로 되돌아가 엄밀한 검증을 바탕으로 무사시의 생애가 전개되는 과정을 고찰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륜서』는 교토에서 "천하의 병법자들"과의 "수차례 승부"에서 이긴 후, 

"천하를 돌아다니며 여러 유파의 병법자들을 만나 60여 차례 승부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라고 쓰고 있다.

이것이 "스물 여덟, 아홉 살까지의 일"이라고 한다.

"천하제일"을 칭하는 이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유파의 병법자들과 대결해 그 실력을 입증해야만 한다.

... 무사시는,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검의 도를 끝까지 추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84p)


50세 무렵 무사시는 드디어 병법의 도를 터득했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 1631년으로 추정됩니다.

1630년대 후반 조선은 병자호란으로, 일본은 시마바라의 난으로 엄청난 전쟁을 겪는 시기라고 합니다. 무사시는 시마바라의 난에 출전했고, 난이 종결된 1638년에 14개조의 검술 이론서를 문하생들에게 전수했다고 합니다. 50대 후반에 저술된 『병법서부』는 20대 중반에 작성된 『병도경』에서 『오륜서』로 발전되는 전개 과정으로 보이며, 검술 이론이 상당히 완성 단계에 가까워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책 속에 달마도뿐 아니라 여러 수묵화 작품이 나옵니다. 모두 무사시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중 달마도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가이쇼모노가타리(1666)』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주군으로부터 달마를 그려보라는 말씀이 있어 무사시가 혼신의 힘을 쏟아 그리려 했으나 좀처럼 붓이 움직이지 않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잠자리에 누웠는데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말하길, "내가 마음껏 병법을 발휘하지 못했기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161p)라고 하더니, 제자에게 불을 밝히게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멋진 그림을 완성했다는 겁니다. 훗날 제자들이 어떻게 그런 그림이 나왔는지를 묻자, 무사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내가 병법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칼을 잡을 때는 무아지경으로 해야 하는 법,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데, 높은 지위나 비천함이 무슨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그리자 비로소 그릴 수 있었다." (162p)


병법의 도를 검조차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무사시의 생애를 통해 병법의 도를 추구하는 자의 기상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사시 입장에서 무사의 정신이란 죽음을 각오하는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도를 행하는 사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병법의 도에서의 마음가짐은 평소 그대로의 평상심과 달라서는 안 됩니다. 평소에나 전투에 임해서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마음에 여유를 갖고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으며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중심을 바로잡으면서 집중하는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무사시가 『오륜서』의 붓을 내려놓은 것이 죽기 일주일 전이었다고 합니다. 평생에 걸쳐 도달할 수 있었던 병법의 올곧은 도를 후세에 남기고자 마지막 날들을 집필에 집중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일본인들에게 미야모토 무사시는 시대정신을 구현한 최고의 무사이자 위대한 유산을 남긴 구도자였음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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