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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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남의 얘기는 쉽게 떠들지만 금세 잊어버리죠.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라면 어떨까요.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몰입하듯이, 우리를 역사의 장면 속으로 초대하는 책이 나왔네요.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는 유튜브 지식 채널 <다크모드>를 운영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다크모드의 책이네요. 저자는 우리 인류는 똑똑하고 영리한 종인데 왜 같은 방식으로 실패를 반복하는지를 묻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인류학적 오답 연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네요. 여기엔 시대도 장소도 다른 이야기들을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어요. 고대 로마의 법정부터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까지, 흥미롭게도 저자는 모든 이야기를 '당신'으로 시작하여 이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끝에는 '인간의 오류'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네요.

인류의 역사를 위대한 진화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거듭된 실패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책은 바로 인류가 저지른 오답을 추적하여 그야말로 다크모드로 풀어내고 있네요.

첫 번째 장의 주제는 '형벌'이며, 한 사회가 죄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인간은 정의를 말하면서 어디까지 폭력을 정당화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과거의 형벌들을 보면 너무 끔찍해서 인간의 본성을 의심하게 만드네요.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네요.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야만의 권력이 작동하고 있지만 말이죠. 형벌이 한 사람의 몸을 다루는 장치였다면, 두 번째 장의 주제인 '감옥'에서는 통제가 어디까지 인간을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국가가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려 했는지를 보여주네요. 당신이 감옥의 설계자라면?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네요. 단순히 가두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교정할 수 없고, 그저 사회로부터 위험 요소를 격리하는 차원이라면 너무 비효율적이니까요. 세 번째 장의 주제인 '완전범죄'에서는 완전범죄를 꿈꾼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네요.

"우월감의 오류는 이런 구조다. 자신은 틀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순간, 틀릴 가능성 자체를 계산에서 지워버린다. ··· 이건 단순히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전제의 문제다. '나는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믿음,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오류는 낯선 것이 아니다. 챕터 1에서 형벌의 설계자들이 '이 절차는 완벽한 정의의 실현이다'라고 믿었을 때, 챕터 2에서 ADX의 설계자들이 '이 격리는 흠잡을 데 없다'고 결론 내렸을 때, 작동한 것도 같은 회로다. 완벽하다는 확신이 점검을 멈추게 하고, 점검이 멈춘 자리에서 가장 단순한 균열이 시작된다." (167-168p)

저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됐네요.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 그러니 인류의 오답 노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네 번 째 장의 주제인 '전쟁 무기'는 가장 대표적인 인류학적 오답이라는 것을 보여주네요.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쪽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정교한 무기를 개발하여 승리를 설계하지만 우리가 이미 역사에서 봐 왔듯이 전쟁의 승자는 아무도 없었네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 그것이 인류가 가장 어리석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네요. 인류의 역사가 지닌 이면, 진짜 어두운 뒷이야기에서 교훈을 얻는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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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오피셜 히스토리 - F1®의 시작과 현재를 기록한 유일한 공식 히스토리 북
모리스 해밀턴 지음, 박지혜 옮김 / 잇담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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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영화 <F1 더 무비>를 계기로 포뮬러 원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F1 규정이나 전문용어 등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들도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 액션을 보며 속도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네요. 영화뿐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 역시 2019년 첫 공개된 이후 2026년 현재 최신 시즌까지 공개되면서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 포뮬러 원의 치열한 경쟁과 비하인드 스토리로 생생한 스포츠 드라마를 보듯 즐길 수 있어서 F1에 대한 관심과 팬덤이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F1 더 오피셜 히스토리》는 F1의 시작과 현재를 기록한 유일한 공식 히스토리 북이라고 하네요.

저자 모리스 해밀턴은 영국 모터스포츠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 작가로서 수십 년간 F1 현장을 직접 누비며 취재해 왔고, 이 책은 F1의 모든 역사를 오롯이 되살려낸 유일한 공식 F1 역사서라는 점에서 F1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특별한 책이 될 것 같네요.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주관하는 F1 월드 챔피언십은 실버스톤 영국 그랑프리에서 1950년 조지 6세 국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참관 아래 성대한 시작을 알렸지만 그랑프리 대회의 실제 운영은 모든 방면에서 초보적인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1950년대의 원초적인 레이싱부터 2020년대 정확히는 2023년 하이브리드 머신까지 모터스포츠 세계의 방대한 역사를 생생한 증언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네요.

윌리엄스 팀의 공동 설립자 로스 브라운은 서문에서, "포뮬러 원 업계에 몸담은 이래로 내가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바로 전문성의 비약적인 발전과 팀 규모의 눈에 띄는 성장이다. 최근 캐나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그 변화를 크게 실감했다. 당시 나는 포럼의 연사로 참여했는데, 주최 측이 나를 소개하면서 내 커리어의 각 단계를 보여주는 사진을 시간 순서대로 띄워주었다. 내가 F1에서 처음 맡은 역할은 1977년 새롭게 출범한 울프 팀의 기계 기술자였다. 당시 팀 단체 사진에는 나를 포함해 총 15명뿐이었다. 기계 기술자 몇 명과 차량 제작자 한두 명 그리고 조수 몇 명이 전부였다. 그게 전체 팀 구성이었지만, 그해 울프 팀은 첫 우승을 달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된다. 오늘날 메르세데스와 같은 상위 팀은 엔진 부서를 포함해 약 1400명에 이르는 인원이 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업게에서 목격한 가장큰 변화이다. F1의 상업적 성공과 전 세계적인 인기가 이 같은 변화를 불러왔다." (9p) 라며 70주년을 맞이한 F1과 여전히 함께해 온 소회를 밝히고 있네요.

모리스 해밀턴은 실버스톤의 원초적인 레이싱부터 최첨단 하이브리드 머신에 이르기까지, 속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기술, 공학적 발전 과정을 심도 있게 조명하면서 영광스러운 챔피언들의 이면에 있었던 목숨을 건 위험과 비극적인 사고들을 다룸으로써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규정이 어떻게 바뀌었고 안전 사항이 의무화되었는가를 알려주네요.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기술 전쟁 속에서 공학적 진화와 비극을 딛고 발전해 온 안전의 역사가 놀라웠네요. 각 챕터마다 전설적인 드라이버, 핵심 인물, 극적인 사건, 규칙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스포츠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네요. F1 공식 조직의 독점적인 자료와 협조를 바탕으로 과거의 주요 그랑프리 순간들을 담아낸 250여 점에 달하는 희귀하고 강렬한 사진들이 압도적이네요. 화려한 서킷 뒤의 70년 F1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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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영화관 환상 시리즈
호리카와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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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보는 소녀와 인생 주마등 영화관, 반전 힐링 미스터리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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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영화관 환상 시리즈
호리카와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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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죽은 사람이 눈에 보인다고?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근데 꼭 그걸 공개적으로 말해야 했니?

안타까움에 그만, 혼잣말을 하고 말았네요. 이 소설 속 주인공 구스모토 스미레 때문이에요.

《환상 영화관》은 호리카와 아사코 작가의 '환상 시리즈'라고 하네요. 원래 《환상 전기관》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 4월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전작 《환상 우체국》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아즈사와 원령 마리코 씨가 나눈 대화가 집필 계기였다고 해요. 마리코 씨 성격에 순순히 성불할 리 없으니, 샛길로 빠진 마리코 씨 이야기를 써보자, 그 결과물인 거죠. "글쎄,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었대."라는 식으로 스포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환상 시리즈'를 소개하다 보니 마리코 씨의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네요.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마리코 씨가 아니라 귀신, 유령을 보는 열여섯 살 소녀 스미레예요. 외동딸인 데다가 소꿉친구도 없고, 어른들 틈에서 자라다 보니 친구 사귀는 게 서툰 스미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담임 선생님이 각자 자기 소개를 준비하라는 말에, "이렇다 할 특기는 없지만, 가끔 유령을 봅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좋아하던 나나에 이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모가 새벽녘 침실에 훌쩍 찾아와 '이렇게 됐다' 하고 평소의 사무적인 말투로 인사하고 떠났습니다. 저세상으로 떠나는 바쁜 때에 일부러 저희 집까지 찾아와 주었다는 사실이 기뻐서 무섭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도 복도나 화장실에 가끔 영혼이 보이는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42p) 라며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을 한 뒤로 왕따가 되었네요. 아무도 스미레 근처에 오지 않는 바람에 외톨이가 되었고, 학교에 가기 싫은 스미레가 등교길 전철 안에서 우연히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어쩐지 모든 게 우연이 아닌 느낌이죠. 암튼 학교에 가지 않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점가에서 '게르마, 전기관(1903년 일본 아사쿠사에 등장한 오락 시설로 영화관의 전신)'에 들어가면서 영화관 지배인과 마리코 씨를 만나게 돼요. 낡은 영화관의 분위기가 흡사 영화 <시네마 천국, 1988>에 나오는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소년 토토를 연상시키는데, 재미있는 건 영사기사가 할아버지가 아닌 잘생긴 미남 우도 씨라서 스미레가 첫눈에 반했다는 거예요. 어라, 유령 나오는 공포물 아니었나? 네, 공포물 아니고 판타지 미스터리 장르였더라고요. 여기에 반전 힐링을 더해서 흥미진진하네요. 아주 살짝 무서운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정황상 그런 것이지, 공포 영화처럼 비명이 나올 정도는 아니네요. 게르마 전기관은 평범한 극장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곳으로 죽은 사람들이 인생의 주마등을 볼 수 있는 주마등 상영관이네요. 사실 그쪽 이야기보단 우도 씨를 짝사랑하는 스미레의 순수 로맨스 감성에 더 관심이 쏠렸네요. 무엇보다도 롤에 감긴 아날로그 필름에 빛을 통과시켜 렌즈를 통해 스크린에 영상이 맺히는 영화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면서 그립더라고요. 인생의 주마등처럼 말이죠. 만약 나의 일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네요.


"신작 개봉관이든 재개봉관이든 성인 극장이든, 소규모 영화관은 이제 멸종 위기종이나 다름없어. 비디오 대여점이나 복합 영화관이 생기면서 영화관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영화를 보는 스타일도 달라져. 그런데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내가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건 역시 곤란하거든."

"우도 씨는 작은 영화관을 좋아하나요?"

"좋아해."

우도 씨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좋아한다기보다, 마음으로 거기에 내가 있을 자리라고 느끼는 거야"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근무했던 영화관들이 잇달아 문을 닫는 바람에 매번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184p)


사라져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저는, 둘이 함께 머물 곳이 사라질 위기 상황에······.

이럴 때 아무것도 못 하다니, 그럴 순 없어요!

외고모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극복해야 할 좌절이 바로 이것입니다!

"좋아요. 요컨대. 대안. 안달복달. 달리기······ 기, 콜록콜록······."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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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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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라는 제목 옆에 세로로 길게 적혀 있는 문구에 눈길이 갔네요.

월 급 사 실 주 의 2026

암호 같은 문장이 궁금했죠. 장강명 작가님이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과 규칙으로 동인을 만들어 책을 내자는 제안을 했고, 참여 작가 열한 명이 모여 여러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는데 문학동네에서 반기면서 책 제목에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를 붙인 단행본이 나오게 된 거래요. 실제로 작가들끼리 세부 규정을 만들거나 선언이나 결의문을 채택한 건 전혀 없고, "우리는 소설을 쓴다." (299p)라면서 기본을 강조하고 있네요. 작가의 할 일은 글을 쓰는 것이고, 소설은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니까요.

영업 중단을 발표한 홈플러스, 경영진은 책임을 외면한 채 법적 처벌마저 피했고 모든 피해는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네요. 배송기사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즉시 계약해지 통보로 너무나 쉽게 내쳐졌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네요. 홈플러스를 살리겠다며 노조원들이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보면서 씁쓸했네요.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책임은 엉뚱한 이들이 떠맡고 있으니 말이에요.

쓰윽 목차를 먼저 훑어봤네요.

여덟 명의 작가 이름 옆에 나란히 적힌 단편소설의 제목, 그 아래에는 친절하게 관련 키워드가 해시태그로 달려 있네요.

잡지기자와 임금체불, 예능 PD와 생방송 사고, 웨딩 헬퍼와 투명 인간화, 하청의 하청, 정규직의 함정, 기간제 교사, 대타 세우기, 승진 심사 등등.

앞서 봤던 기사 때문인지 박연준 작가의 <경희와 경희 아닌 것>이라는 작품이 머릿속에 맴도네요. 대형마트 지하 식품 코너에서 이십오 년째 일하다가 잘린 고미숙과 그녀의 딸 경희의 이야기를 보면서, 경희가 옛날 일기장에서 찾은 문장을 보며 할 말을 잃었네요

"바흐를 들으며 빛이 좋은 곳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 창밖으로 날아다니는 새를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33p)

이토록 소박한 일상의 꿈이라니...

평생 일하던 엄마 고미숙이 고작 두 달을 쉬면서 머리가 백발이 된 것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네요. 경희는 자신이 열매라면 누구라도 먹고 싶어하는 탐스러운 열매가 되길 바랐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었다고, 아무도 먹을 수 없는 열매이고 싶다는 말이 가슴을 콕 찔렀네요. 하청의 하청 업무를 도맡아 하는 작은 회사에서도 사장, 실장, 과장이 상사랍시고 평사원인 경희를 마구 부려먹는 모습은 얄밉다 못해 화가 나네요. 경희는 을 중의 슈퍼 을로 살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었던 거예요. 문득 사과도 열심히 먹고 늙는 것도 열심히 늙고, 뭐든 열심인 엄마 고미숙을 바라보다가 깨닫게 된 거죠. 아하, 나도 다르지 않구나... 열심과 성실이 뭐가 나쁘겠어요. 그걸 이용해먹는 세상이 못된 거죠.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만 경희와 고미숙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멈출 생각이 없으니, 재벌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부디 모녀의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하기를 꿈꿔보네요. 착한 사람이 더 이상 호구가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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