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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피싱
조진연 지음 / 북오션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저는 이 일이 좋아요. 피해자 얼굴을 보지 않고 통화해서요.
미안한 마음도 생기지 않고, 그냥 장난 전화하는 것 같아요." (114p)
소름끼치는 말이네요.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려놓고도, 뻔뻔하게 얼굴을 보지 않았으니 죄책감은커녕 장난처럼 느낀다는 거잖아요.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냐고, 네가 그러고도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블랙 피싱》은 조진연 작가님의 장편소설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다룬 이야기예요. 최근 몇 년 사이에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그들의 사기 수법이 공개되고 있지만 갈수록 정교해지는 수법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지네요. 영화 시나리오마냥 완벽하게 세팅된 상황에 놓인다면 속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걸리면 무조건 낚일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보이스피싱의 실체, 이 소설은 거대한 범죄의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경각심을 갖는 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네요.
"보이스피싱을 당한 청년들이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그저 운이 나빠서다. 그저 당신이 운이 좋아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호구를 속이기 위해 얼마나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지 당신은 모른다. ··· 어쨌든 1년 365일, 사기꾼은 부지런히 호구에게 사기를 친다. 호구의 돈으로 명품과 외제차를 구입하고, 그렇게 사기 친 돈은 돌고 돌아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 이젠 1980, 90년대 사장님과 사모님을 벗겨 먹던 꽃뱀과 제비의 노력도, 마을 사람들의 돈을 챙겨 야반도주할 수고도 필요 없다.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과 많은 사람을 벗겨 먹는 다단게 JU그룹 주수도처럼 스케일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 휴대폰 가입자 수 5천만 시대! 손바닥만 한 휴대폰만 노리면 된다. 호구의 휴대폰을!! 호구와 전화 연결이 되면 사기는 시작된다." (7-8p)
이 소설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깊숙하게 가담한 이선경이 벌이는 위험천만한 사기 매뉴얼을 보여주고 있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요. 사기 치는 놈들은 자기들이 생태계 안의 포식자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든지 피식자, 먹히는 쪽이 될 수 있다는 걸 잊는 순간 당하는 것 같아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매뉴얼을 만드는 이선경, 다 읽고 나니 그녀가 궁금해졌어요. 예쁘고 똑똑한 그녀가 왜 범죄의 길로 들어섰는지, 만약 《블랙 피싱》 2편이 나온다면 이선경의 과거를 알려주기를 기대하네요. 딱히 마음을 줄 수 없는 주인공이라서 아쉬움이 있나봐요. 왠지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은 이야기, 다음 편에서는 리벤지 매치가 나올 수도, 아니면 글로벌 사업이 등장할 수도... 악의 뿌리는 쉽게 뽑히지 않는 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