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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6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파도처럼 덮친 공포 뒤에 쓸쓸한 슬픔이 덩그러니 남겨졌네요.
공포 미스터리의 거장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 《포 단편선》을 읽고 난 느낌이네요.
왜 슬픔일까를 생각해보니, 에드거 앨런 포의 인생이 겹쳐져 보여서가 아닐까 싶네요. 심각한 알코올 중독과 생활고, 아내의 죽음 이후 불안정했던 그는 길거리에서 만취된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하고 말았네요. 마흔 살, 죽기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늙어 보여서, 눈빛이 슬퍼 보여서... 한없이 나약하고 우울해보였어요. 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편의 장편과 일흔네 편의 단편을 남겼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그저 작품에만 집중했는데 언제부턴가 작가의 인생을 먼저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다시 읽는 작품들이 새롭게 느껴져요. 이야기 속에 진짜 현실의 맛이 더해져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에는 <검은 고양이>, <어셔가家의 몰락>, <적사병의 가면>, <모르그가街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 <함정과 시계추>, <유리병에 남긴 편지>까지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무서운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던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은 무절제한 폭음으로 인해 끔찍한 괴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던 고양이를 잔혹하게 죽이더니 아내마저도... 지독한 증오심은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결국엔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되니 말이에요. 어셔가의 주인인 로데릭 어셔가 저지른 짓은 가문의 저주 탓일까요, 아니면 병적인 망상인 걸까요. 어셔가를 도망쳐 나온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셔는 자신이 예견했던 공포에 굴복하고 말았네요. 무시무시하고 치명적인 역병인 적사병을 가면자로 그려낸 것이 놀라웠어요. 소리 없이 밤도둑처럼 슬며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참으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네요. <모르그가街의 살인>와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주인공의 친구로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천재 탐정이 등장하여 예리한 추리력을 보여줬고, <함정과 시계추>와 <유리병에 남긴 편지>에서는 기묘한 경험에 관해 들려주고 있어요.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복잡미묘한 내면 세계의 묘사가 탁월한 것 같아요. 뒤팽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이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천재 탐정은 정확하게 상대방의 수준을 간파하여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네요. 자기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오만하게 구는 국장의 모습에서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을 보았네요. 무엇이 중요한가, 겉으로 드러난 광기와 죽음의 공포 이면에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에드거 앨런 포의 의지가 담겨 있네요. 가난과 불운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나 그가 남긴 작품들은 독보적인 장르를 선도했으니, 어둠이 빛이 되었네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면 그냥 어둠 속에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군요."
"당신의 그 기이한 취향이 또 나오는군요."
경찰국장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은 무조건 '기이하다'라고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주위는 항상 '온갖 기이한 것들'로 넘쳐날 수밖에 없는 위인이었다. (15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