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의 수집가들
피에르 르탕 지음, 이재형 옮김 / 오프더레코드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파리의 수집가들》은 피에르 르탕의 마지막 회고록이자 '수집하는 마음'을 기록한 유일한 책이라고 해요. 우선 피에르 르탕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어요. 책에는 "'20세기 일러스트레이션의 마스터'로 칭송받는 아티스트이자, 수많은 예술 애호가들의 취향을 사로잡은 컬렉터." 라고 적혀 있는데, 크게 와닿지 않는 설명이었죠. 근데 피에르 르탕이 자신을 사로잡았던 컬렉션과 그 소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 '아하, 컬렉터!'라는 느낌적인 의미가 전해졌어요. 예술작품과 흥미로운 물건을 보고, 찾고, 욕망하고, 획득하는 일이 그리 낯설고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왠지 컬렉터라고 하면 그가 소장한 컬렉션의 가치에만 눈길이 가서 정작 중요한 마음은 보질 못했는데, 르탕은 진지하고 유쾌한 안내자가 되어 우리를 수집가들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네요. 재미있는 건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르탕이 직접 그림으로 그려서 소개한 컬렉션들과 수집하는 마음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순전히 좋아서 하나씩 모았던 물건들을 꽤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수집가라고 여겼던 적은 없어요. 대단한 예술작품이나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는 이유였는데,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찾아내는 열정이나 선택한 물건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자면 이미 수집가인 걸, 나만 모르고 있었네요.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르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어요.
"컬렉션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가장 크고 비싸지만, 가장 의미 없는 컬렉션은 결국 박물관에 소장되거나 재단으로 향한다. 그러한 컬렉션은 애처롭게도 오직 컬렉터의 재산이나 허영심을 반영할 뿐이다. 최상의 컬렉션이란 안목과 취향, 시대를 대변한다. 리스본의 칼루스테 굴벤키안 컬렉션을 비롯한 몇몇 컬렉션은 실로 다채롭고 완벽하여,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나이와 함께 머릿속에 붙어버린 환멸과 지혜의 결합은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보물과 함께 땅속에 묻혔던 불쌍한 군주들의 무덤은 모두 파헤쳐졌고 보물은 약탈당하지 않았는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는 오직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발견과 획득의 유혹에 기꺼이 굴복할 생각이다. 미지未知는 늘 그렇듯 내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는 바이기도 하지만, 언제든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내가 남겨 두고 싶은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과거에 내 아이들이 만들었거나 내게 선사한 작은 것들, 상태가 형편없을 수도 있지만 소중한 것들, 점토 모형이나 어딘가에서 오려낸 그림, 깨진 조개껍데기를 내 뒤에 남겨 두고 싶다. 그리고 나의 담뱃갑 로즈버드도···." (105-106p)
놀랍게도 최고의 컬렉터인 르탕은 얼마든지 모든 걸 놓아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남겨 두고 싶은 것들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대단할 것 없이 소소한 것들이라고, 그러니까 르탕은 진짜 소중한 것이 뭔지 아는 멋진 사람이었던 거죠. 르탕이 표현했듯이, 진정한 수집가는 물고기를 놓아주는 낚시꾼인 거예요.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이란 쌓여있는 물건들이 아니라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온기, 사랑, 열정, 기쁨, 즐거움으로 정해지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앞으로 내가 기억하게 될 피에르 르탕은 아티스트, 컬렉터 그리고 현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