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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인섭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불현듯 멀미처럼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
왜 불안해질까요. 의심하니까, 괜찮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거예요.
나만의 문제일까요. 어쩐지 나만 빼고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아 소외된 듯 외로워지고, 가끔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하루 아침에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 예전에는 '이런 소설도 다 있네!'라는 감상 정도였는데 요근래 다시 읽은 <변신>은 달랐어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1915년 10월 처음 출간되었고, 2025년 현재 출간 110주년을 맞이했네요. 소담클래식 시리즈 일곱 번째 책인 《변신》은 카프카 단편선으로, 「화부」, 「선고」, 「변신」 이라는 카프카의 초기 걸작 단편들이 실려 있어요. 세 단편들을 읽고 나니, 카프카의 불안 3종 세트라고 느꼈어요.
"그냥 있어요."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카를의 가슴을 꽤나 거칠게 밀어 다시 침대에 주저앉게 만들었다.
"왜 그러는 거예요?" 카를이 화가 나 물었다.
"전혀 의미 없는 일이니까." 남자가 말했다.
"잠시 후에 나도 나갈 거요. 그때 함께 갑시다. 가방을 벌써 도둑맞았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니면 그 남자가 가방을 놓아두고 갔을 텐데, 그랬다면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요. 우산도 마찬가지고."
"이 배에 대해 잘 아시나요?" 카를이 미심쩍게 물었다. 배가 텅 비고 나면 그의 물건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히 옳은 얘기였다. 그렇지만 왠지 지금은 그 확실한 생각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화부요." 남자가 말했다. (15p) _ 「화부」
커다란 배 위에서 길을 잃고 당황한 카를은 우연히 마주친 작은 문을 무턱대고 두드렸고 그 안에 있던 화부를 만나게 되는데,1900년대 초중반까지 배의 기관실에서 석탄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화부라는 직책이 있었대요. 화부는 상사 슈빌의 부당한 처사에 불만을 털어놓았고, 카를은 선장을 찾아가 말해보라고 조언했어요. 같이 선장실로 간 두 사람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중요한 건 카를과 화부가 서로 보자마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처지면서 상대를 걱정했다는 거예요. 쫓겨났고, 쫓겨날 예정인 두 남자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으로 끝을 맺네요. 솔직히 화부가 카를에게 인생 선배로서 꽤나 그럴 듯한 말을 하길래 살짝 기대했는데 화부는, 요즘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의 20세기 버전이었네요.
"틀림없이 곤경에 빠져 있는 친구, 그의 일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도와줄 수도 없을 때,
과연 편지에는 뭐라고 쓰면 좋을 것인가. 뭐라고 충고해 주어야 할까?" (72p) _ 「선고 :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 펠리체 B. 양에게 바침.
카프카는 왜 「선고」라는 작품 부제에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라고 썼을까요. 주인공 게오르크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약해진 늙은 아버지와 한집에 살면서 아버지가 물려준 사업을 꽤나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러시아로 간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고 있어요. 최근 약혼 소식을 그 친구에게 알릴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마치 자신은 아무런 고민이 없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오르크, 그가 바로 카프카 자신이었네요. 도대체 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갈등이 카프카의 삶을 얼마나 뒤흔들어 놓았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네요.
"그레고르는 도저히 침대에 더 누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해도 털끝만큼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절망에 빠진 채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해 보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그레고르는 최대한 날카롭게 가다듬은 시선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은 아침 안개뿐이었다. 심지어 좁다란 길의 건너편조차 보이지 않았다. 얻고 싶었던 믿음과 용기는 거의 얻지 못했다." (106p) _ 「변신」
그레고르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되었어요.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벌레로 변한 걸 알고서 다시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고 눈을 감는 그레고르. 매일 떠돌아다녀야 하는 출장 영업으로 진이 빠진 몸뚱이의 통증이 느껴지고, 부모님이 사장한테 진 빚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말 못하고 있는 처지가 답답해서 확 대들고 해고당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알람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기차를 놓치면 안 된다고 서두르는 그레고르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거예요.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장시간 과도한 노동으로 과로사하는 사람들... 그레고르는 더 이상 출근을 할 수 없고, 자기 방에 갇혀버렸네요. 자신은 여전히 그레고르인데,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졌어요. 그의 입에서는 인간의 말이 아닌 알아들을 수 없는 동물의 소리가 났거든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그레고르는 흉측한 벌레로 변한 순간, 그 쓸모를 잃어버렸네요.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의 절망과 무력감, 결국 변신은 그들에겐 치워버려야 할 얼룩이었으나 우리에겐 아픈 상처가 되었네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변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