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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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시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 주변에는 리췬담배, '나를 잡아주십시오'가 인쇄된 A4용지 그리고 줄넘기를 이용한 교살까지 3년 전부터 벌어진 이번까지 합치면 다섯 번의 살인사건 모두 동일범의 소행으로 밝혀진다. 사건을 담당한 자오톄민은 자신의 친구이자 전직 경찰 출신으로 현재는 저장대학 수학과 교수로 있는 옌량에게 사건 조사를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8년 전 닝보시 공안국 형기처(형사기술처)처장이자 성공안청 수사 전문 요원이었던 뤄원은 출장에서 돌아온 날 아내와 딸의 실종사건을 겪게 되고 현재는 경찰을 그만두고 한 회사의 이사로 평범하게 사는듯하지만 여전히 아내와 딸의 실종에 대한 진실을 찾고 있는 상태다. 어느 날 뤄원은 동네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고 그 일로 자주 가던 국수집의 주후이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궈위를 알게 된다. 하루는 그녀를 눈여겨보던 불량배의 주문으로 밤에 공원으로 음식 배달을 간 주후이루는 불량배에게 성희롱을 당할 위기에 처해가 된다. 한편 그녀가 걱정돼 몰래 따라온 궈위는 그녀가 위험해지려는 순간 주변의 돌로 불량배의 머리를 가격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의도치 않게 그녀가 들고 있던 칼로 불량배를 찌르게 되면서 살인을 하게 된다. 죽어있는 불량배와 망연자실한 그 둘... 그리고 우연히 강아지를 산책하러 나온 뤄원은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장기인 전문 수사기법을 이용하여 그 둘을 도와주기로 한다.


천재들 간의 싸움이라는 소재로 떠오르는 작품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데스노트>이고 나머지 하나가 <용의자 X의 헌신>입니다. 두 작품 다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요... 이런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범인을 숨기는 게 아니라 누군인지 전면에 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콜롬보>나 <후루하타 닌자부로>같은 경우는 시작을 범인의 범행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콜롬보'나 '닌자부로'가 사건을 조사하여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해서 어떻게 트릭을 맞추고 범인의 거짓말을 알아내는지를 보는 사람들이 즐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작 <무증거범죄>역시 소설이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마치 장기 게임을 하듯 한쪽은 공격을... 나머지 한쪽은 방어를 하는 형국으로 진행이 됩니다. 트릭을 풀면 다른 트릭으로 대응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후기에도 나와있듯이 작가 쯔진천은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자신도 사회파소설을 쓰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증거범죄>는 <용의자 X의 헌신>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도 이 유사성 때문에 말들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만큼 읽는 저 역시 너무 비슷한 구성에 당황스럽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작품까지 허술하거나 엉망이었다면 엄청난 비난을 보낼 수 있겠지만 작품 나름대로의 완성도와 가독성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같은 경우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의 우발적 살해 사건을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완전범죄를 만들려 했던 한 수학교사의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잘못된 방법의 사랑으로 모두 파국을 맞게 되죠...<용의자 X의 헌신>을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로서의 만족도는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르소설이 아닌 순수소설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 사랑이라는 소재와 너무 장르소설로서 치우치지 않은 점이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봅니다. 반면 <무증거범죄>는 좀 더 장르에 충실하게 써간것 같습니다. 여러 명의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어떻게 수습하려 하는지에 궁금증을 일으키게 되고 그리고 놀랍게도 여러 사건들이 마지막에 와서는 하나의 큰 줄기에 연결되는 어떻게 보면 가장 장르소설적인 구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소설 역시 마지막 결과는 씁쓸함만을 남기고 마는데요. 결과로 놓고 봤을 때는 <용의자 X의 헌신>보다 더 비극적이지 않았나 합니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에서 나오는 소설들은 조금 열외로 친 경향이 조금 있었습니다. 왠지 수준 이하 이거나 노골적인 중화주의 사상 그로 인한 소재의 한정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인데요(찬호께이는 홍콩이죠...) 그런 제 편협한 생각을 반성하게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심리죄에 이어서...) 물론 제가 중국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국내에 나와있는 일부만을 읽었기에 전체적으로 이렇다고 평가를 할 수 없지만 제가 읽은 한도 내에서는 작품의 질적 수준만큼은 결코 무시 못 할 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제 개인적으로는 <무증거범죄>는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지만 쯔진천 작가를 평가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용의자 X의 헌신>과의 많은 유사성을 무시 못 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요. <무증거범죄>는 일명 '추리왕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입니다. 그리고 국내에는 3편에 해당하는 <동트기 힘든 긴 밤>이 먼저 출간이 되었고 많은 분들이 좋은 평가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아직 그 작품은 읽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작품을 읽어 본 후에야 쯔진천 작가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계속 믿고 보는 작가가 될지 아닐지... 저 역시 궁금해지는데요 제가 음식으로 비유를 자주 하는데 같은 음식이라도 만드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듯 이번 <무증거범죄>는 제 입에는 잘 맞는 음식이었습니다.(어떻게 보면 원조보다 좋았던...) 다음 작품은 제 입맛에 맞을지 어떨지는 빠른 시일 내에 알 수 있었으면 하네요.

범인을 건방지다고 치부하는 건 섣부른 판단인 것 같군. 범인은 범행에 수많은 역수사 기법을 이용했어. 즉, 경찰에 잡히지 않겠다는 뜻이지.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경찰에 잡히지 않으려면 보통은 범행수법이 저급할수록 좋아. 그런 종이를 남기지 않았다면 이 사건 역시 그저 평범한 살인사건으로 성과 시 양급 경찰의 관심을 끌지 않았을 테고, 자네처럼 고위급 지도부가 사건을 담당하지도 않았겠지. 투입된 경찰 인력도 자연히 줄어들 테니 범인은 더욱 안전해져. - P57

일부 경찰들, 특히 범죄심리학을 신봉하는 경찰들은 질문할 때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길 좋아한다. 심지어 상대가 대답할 때 눈을 위로 향하는지 아래로 향하는지, 왼쪽으로 향하는지 오른쪽으로 향하는지까지 살핀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미세한 행동을 통해 그가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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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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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나스오는 작가가 되기위해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공모전을 목표로 5년 동안 수많은 추리소설을 읽고 연구하여 마침내 <환상의 여인>을 내놓게 된다. 일일이 손으로 집필한 원고를 친구 기도 아키라가 워드프로세서로 정리 작업을 해주지만 안타깝게도 나스오집으로 가던 중 원고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걸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가던 나가시마 이치로가 발견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원고를 읽어본 이후 그는 욕심이 생겨 자신의 이름으로 공모전에 제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로 인해 기도 아키라는 자신을 나스오로 착각한 이치로에 의해 살해가 되고 뒤에 기도 아키라가 나스오가 아님을 알게 된 이치로는 진짜 나스오를 찾아가게 된다. 이치로의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난 나스오는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하게 된다. 퇴원 후 나스오는 공모전 결과를 보게 되고 자신의 작품 <환상의 여인>이 대상을 받은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있을 자리에는 시라토리 쇼라는 이름으로 되어있었고 이에 나스오는 시라토리 쇼가 자신의 친구 기도 아키라를 죽이고 자신의 원고를 훔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자신의 누렸어야 할 부와 명예를 훔쳐가 시라토리 쇼...나스오는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처음에는 욕심이 부른 참극으로 생각하며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야마모토 나스오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라는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친구의 죽음에 결정적 힌트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경찰에 말하지 않았고 나가시마 이치로는 처음에는 순수하게 원고를 돌려주려 했지만 원고를 읽고 나서는 상금과 인세에 욕심을 보여 살인까지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끝에 밝혀지는 모든 것은 욕심이 아닌 광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환상의 여인>이 부른 광기였고 여기에 결부된 모든 인물들은 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도착의 론도>는 시라토리 쇼라는 이름의 등장을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전반의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소소하게 진행되지만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반전의 반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시라토리 쇼의 등장으로 인해 사건의 전개와 진범을 대략적으로 간파하게 되는데 거기까지 갔을 때 '내가 너의 트릭을 간파했다'라는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다가 점점 끝으로 갈수록 '나는 결국 작가의 손바닥에서 놀아났구나'란 작가와의 두뇌싸움에서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내가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을 때 작가는 그것을 미리 간파하고 두·세수를 더 내다보고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트릭 소설은 읽는데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끝까지 이해를 못 하고 마치는 경우와 이해를 하지만 놀림을 당한 듯한 것에 대한 분함... 그래서일까요 트릭 소설을 읽으면 끝까지 손에서 못 놓고 읽게 만들지만 머리 아픈 게 싫어 처음부터 손을 안대는 경우 이 두 가지가 공존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도착의 론도>는 작가에게 놀림을 당하고 나의 머리 나쁨을 원망하며 한번 읽기 시작해서 끝을 보고만 그런 책이었습니다. 여전히 저의 부족한 내공을 반성하며 오늘도 책 읽기를 마칩니다.

나는 시라토리 쇼의 <환상의 여인>을 펼쳤다.

읽다 보니 의혹은 확신으로 변했다. 프롤로그의 문장에서부터 내 <환상의 여인>과 똑같았다. 그래도 나는 아니기를 바라며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하지만 모두 똑같았다. 문장 하나, 글자 하나 차이가 없었다. 다른 것은 작가의 이름뿐이었다. ‘야마모토 나스오‘로 되어 있어야 할 이름이 ‘시라토리 쇼‘로 되어 있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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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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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보면 와카타케 나나미를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 하드보일드의 달인, 단편 미스터리의 명수.. 등 많은 수식어를 가진 작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 한 권을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저는 코지 미스터리(폭력 행위가 비교적 적으며, 끝 맛도 깔끔한 미스터리)와 하드보일드(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써 내려가면서 등장인물의 마음의 변화를 독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는 서로 상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저의 오판이었음을 이 책은 기가막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하무라 아키라라는 여성 탐정을 주인공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나이는 어느새 40대에 싱글이며 체력적으로도 약하고 잔병도 많은 소위 요즘 말로 독거노인이라 불릴만한 그런 인물입니다... 이 소설은 코지 미스터리에 맞게 소소한 사건들로 구성(제 입장에서는) 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에서 물건을 훔쳐 간 여자를 추적하는(파란 그늘-7월), 치매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고생하는 아들(조용한 무더위-8월), 한때 유명했던 시타라 소라는 작가의 실종과 연관된 조사(아타미 브라이튼 록-9월), 병원에서 벌어진 인질사건에 엮이는(소에지마씨 가라사대-10월), 쓰노다 고다이작가의 신분을 도용하다 사고로 죽은 사람에 대한 조사(붉은 흉작-11월), <성야 플러스 1>의 서적에 얽혀 벌어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사건(성야플러스1-12월) 각각의 챕터는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유머스럽고, 때로는 묵직함으로 각각의 챕터들의 나름대로의 개성을 품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소에지마씨 가라사대-10월>과 <성야 플러스1-12월>을 좋아하고 이 책에서 가장 하드보일드스러운 단편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볼 때 저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3인칭 시점보다 집중이 잘 된다는 거 그리고 셜록 홈스처럼 명석한 추리력을 뽐내는 탐정보다 몸으로 때우는 무데뽀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속 탐정들을 더 좋아합니다. 이 소설은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 전문점을 배경으로 1인칭 시점의 내용은 가볍지만 몸으로 때우는 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거죠...읽는 사람에 따라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가 될 수 있고 코지 미스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파란그늘-7월>과 <조용한 무더위-8월>은 코지 미스터리로 <아타미 브라이튼 록-9월>부터 마지막 <성야 플러스1-12월>까지는 하드보일드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의 짜임새도 <아타미 브라이튼 록-9월>부터 더 뛰어나기도 하고요.... 하드보일드 소설을 좋아하지만 어둡고 묵직함이 부담스럽다면 이런 가볍고 유머러스한 하드보일드 소설 한편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흐른다. 사고 당사자들 또한 그렇다. 하물며 목격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살아가다 보면 허기가 진다. 먹기 위해서는 일할 수밖에 없다.

"방금 경찰이 농성중인 범인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에머슨회 제2병원에서 농성 중인 것은 소에지마 준페이라는 인물입니다. 반복합니다. 병원에서 농성중인것은 소에지마 준페이, 5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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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걸려온 전화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2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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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러로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자신을 콘도 교코라고 소개한 그녀는 통장을 확인해 보라는 말과 함께 내일 저녁에 다시 통화하자는 말만 남긴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특별히 일의뢰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요즘처럼 여유로운 삶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호기심에 다음날 통장을 확인해 보니 콘도 교코의 이름으로 10만엔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나에게 '삿포로음흥'의 미나미 사장에게 작년 8월 21일밤 가리타는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봐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미나미를 만난 나는 가리타에 대해 물어보자 돌아오는 건 미나미의 극심한 분노였다. 황급히 자리를 피한 나는 스스키노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을 기다리고 있던 중 누군가에 의해 철로로 떨어지게 되고 간신히 전철을 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는 일종의 위협이었다. 켈러로 돌아온 나는 콘도 교코에게 결과 보고를 하고 의뢰를 마무리 지었지만 결국 나는 이대로 끝낼 수 없어서 작년 8월 21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기로 한다. 조사하던 중 스스키노 가이가쿠회관 방화사건과 소쿠텐도장이라는 우익단체가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방화사건에서 살해당한 여성 시체가 하나 나오게 되는데 그 여인 이름이 콘도 교코였다. 그와 더불어 죽은 콘도 교코의 아버지 역시 불량배에게 납치되어가던 여인을 구하려다 살해당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날이 8월 21일이었다. 나에게 의뢰한 콘도 교코라는 여인은 누구이며 그리고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들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나는 친구 다카다와 함께 소쿠텐도장으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드디어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참 힘들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는 진도가 더디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스토리 면에서나 구성면에서 전작보다 훨씬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키노 탐정의 틀을 2편에서 완성이 되는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여튼 가독성도 좋았고 마지막 여운을 남기는 부분까지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바에 걸려온 전화>는 영화 <탐정은 바에 있다>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영화화된 소설을 읽을 때 안 좋은 점은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읽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거나 대충 넘겨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탐정은 바에 있다>는 영화 역시 원작에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서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김빠지는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게 큰 반전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안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워낙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살려줘서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 속 두 주인공을 대입하면서 읽다 보니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읽는 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냥 읽을 때가 1이었다면 영화 속 캐릭터를 대입해서 읽을 때는 감정이입이 2~3배까지 올라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는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어둡거나 우울함이 묻어나는 그런류의 소설은 아닙니다. 전작도 그렇지만 항상 경쾌함과 리듬감을 잃지 않는 소설입니다. 특히 소쿠텐도장을 찾아가서 벌어지는 활극은 박진감과 함께 경쾌함마저 들게 하는 장면 묘사였습니다.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번 작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다카다와의 콤비 플레이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역시 이 둘이 같이 뭉쳐있어야지 재미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 둘의 개그적인 만담 요소는 많이 줄고 몸을 쓰는 액션이 많이 들어갔다는 점은 간사한 심정으로 봤을 때 많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드보일드 소설이면서도 기존의 하드보일드 소설 공식과는 다른 노선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전형적인 부분도 있는데 주인공인 나에 대한 캐릭터 설정은 전작과 변함없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의 느낌을 살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는 하루하루를 즐기며 사는 인생이고 알코올중독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틈날 때마다 술을 마십니다. 자신의 미래보다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소설에도 나오지만 봄이 오는 걸 싫어한다는 표현으로 새로운 시작이나 계획을 세우는 게 싫다는 것을 은근히 돌려서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소설의 큰 주제는 사랑입니다.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어떻게 보면 결국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배드 엔딩으로 끝나고 맙니다. 영화 속에서는 감정적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한 신파적인 느낌으로 결말을 이끌었다면 소설 속 결말은 짧고 강렬하게 끝맺고 있습니다. 결말의 내용은 같지만 표현방식에서 차이가 다소 있는데 결말에서 느껴지는 여운은 소설이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설을 털북숭이 아저씨가 썼다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읽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 시리즈는 오랫동안 계속 읽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국내에는 3권까지만 나와있기에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만 들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와 소설 모두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초봄이다. 눈은 거의 녹고, 갈색으로 퇴색되었던 풍경이 조금씩 녹색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길거리에 아스팔트 가루가 피어 오르고, 얼굴이 금방 까칠해지고, 목이 금세 칼칼해지는 계절. 나는 초봄이란 계절과는 영 맞지 않는지, 이유도 없이 죽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한다.

허무감과 절망감과 멜랑콜리에 지배당해서, ‘숙취에 시달리는 다음날 아침‘같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이 느낌을 알게 됐는데, 깜짝 놀랐다.

자살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만, 조금 더 상태를 지켜보자고 생각하는 동안 여름이 다가와서 위험이 물러갔음을 알았다. 그 후로 내게 초봄은 항상 기분이 울적해지는 계절이었고, 단전에 힘을 주고 고개를 움츠리고 지내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그러나 삼십년이나 살아오다 보니 지금은 그 정도까지 힘들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삼십년이나 살아왔다‘라는 말이 먹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참으로 위험한 계절이다. - P11

누군가 내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돌아보자 마키조노가 있었다. 일그러진 입술을 힘껏 깨물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몇 번이나 내 가슴을 두드렸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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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타깃 그레이맨 시리즈
마크 그리니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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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츠로이 가족을 구출하고 로랑 그룹에 의해 수많은 적들로부터 죽을 고비를 넘긴 지 몇 달 후 젠틀리는 이번에는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집행가가 되었다. 핸들러의 이름은 시드로 젠틀리의 요구 조건 '죽어 마땅한 또는 윤리적 중심을 지키지 않는 표적들'만을 제거한다는 조건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번 의뢰는 두걸 슬래터리라는 6년 전 이후로 작업을 하지 않는 킬러로 죽기 전 그에게서 시드의 실체에 대해 듣게 된다. 임무 완료 후 돌아온 러시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시드의 부하들로 그들의 안내로 시드를 만난 자리에서 수단 대통령 바크리 알리 아부드의 암살을 의뢰받게 된다. 아부드는 현재 어마어마한 현상금에 다르푸르 대량학살로 헤이그의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태다. 그의 암살 이유는 다르푸르 사막 12A 지구에서 나오는 석유 때문으로 현재는 중국이 채굴권을 가지고 있으나 아부드를 암살하고 국회를 이용 중국을 쫓아내고 러시아로 채굴권을 가져올려는 계획인 것이다. 의뢰를 받은 그날 밤 시드의 부하들의 감시를 피해 허름한 여관으로 옮긴 젠틀리 거기서 오랫동안 그를 추적하던 CIA에 의해 붙잡히게 된다. 그런데 CIA는 젠틀리를 죽이는 대신 아부드 대통령을 산 채로 잡아 미국에 넘겨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 조건으로 젠틀리에게 내려졌던 사살 명령을 없애준다는 것이었다. 양쪽의 의뢰를 받은 젠틀리는 러시아 쪽 의뢰를 하는척하면서 미국 쪽으로 아부드를 넘겨줄 계획을 세우게 된다. 러시아 수송기를 타고 수단으로 가던 중 계획에 없던 알다시르에 착륙하게 되고 거기서 국제 형사 재판소 특별 조사단으로 온 엘렌 월시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엘렌 월시의 엉뚱한 행동 때문에 여러 번 곤경에 처하게 되는 젠틀리는 우여곡절 끝에 엘렌 월시를 무사히 떠나보내고 다시 원래 임무수행으로 돌아오지만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면서 러시아도 미국에도 모두 버림을 받게 되고 또다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캐릭터 중심의 시리즈 소설 거기에 액션 장르의 소설이라면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가지고 읽게 됩니다. 전편보다는 더 다채롭기를 바라죠. 이건 액션 영화를 볼 때도 나타납니다. 전편보다는 볼거리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대부분 액션 영화들이 스토리는 약해져도 스케일이나 볼거리는 속편으로 갈수록 풍성해집니다.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있기에 그것에 못 미치면 실망하거나 그다음에 나올 작품에 대해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의 차이가 있죠. 영화는 한정된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하기에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가야 하지만 소설은 작가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의 디테일도 살리면서 스케일도 마음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죠. 단 너무 만화같이 황당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겠지만 말입니다. 그레이맨 2탄인 <온 타깃>은 전편에 비해 내용도 다채로워졌고 작가의 필력도 월등히 향상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책의 분량만 봐도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전작만 놓고 본다면 전작은 막무가내적으로 보일 정도로 일방적인 진행 방식이었다면 이번 작은 목표에 도착하기 위해 직진보다는 우회하면서 그 속에 여러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직구만 던지던 투수가 이제는 커브도 던질 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중반까지는 다양한 상황 설정과 떡밥들을 만들기 위해 뜸을 많이 들였다면 후반 한 200페이지 가까이의 내용들은 태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읽혔고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정말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장르소설 특히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재미는 후반에 나오는 반전을 즐기는 거죠. 근데 그레이맨에서는 그런 반전의 재미는 느낄 수 없습니다. 그냥 읽는 내내 즐기면 되는 겁니다. 머리 쓸 필요 없이 작가가 펼쳐 놓은 세계에 빠져 즐기는 그런 재미로 읽는 소설이니까요, 마지막 장에 주인공 젠틀리는 앞으로 더 많은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걸 암시하며 끝납니다. 거기에 과거에 대한 떡밥도 흘리기 시작했고 이번 작품에서 조금씩 보여줬던 국가 간의 국제적 관계 속에 벌어지는 암투까지 앞으로의 차기작에서는 지금보다 더욱더 큰 스케일과 더 험난한 일들이 일어날 거란 걸 예감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이런 시리즈 소설들이 회가 거듭할수록 비슷한 패턴에서 스케일의 변화만 주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지거나 예측 가능한 뻔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시리즈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조금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레이맨 시리즈는 이미 8편까지 나와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가 안 되어있기에 빠른 시기 내에 차기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모리스가 들려준 또 다른 한 마디가 코트의 뇌리를 스쳤다.

"계획은 그저 벌어지지 않을 악몽들을 열거해놓은 목록일 뿐이야."

그것은 진리였다. 임무에서도, 인생에서도 계획은 좋은 것이었다.

필요한 것이었고 하지만 거의 모든 계획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 P39

"살인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스케일이 문제라는 건가? 하지만 난 정치 정책을 통해서 그 일은 해왔는데? 직접 내 손을 써서 죽인 게 아니라? 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게 법과 선전 포고를 통해 대량 학살을 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다고 생각해. 우리 중 더 위험한 놈은 당신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이 권력을 쥐고 국가 정보기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보나 마나 세상의 모든 반대자들을 싹 쓸어버리고 말걸."

수단 대통령 바크리 알리 아부드가 모닥불 너머로 상체를 기울였다. 땀에 뒤덮인 그의 얼굴이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바로 나처럼... 동지."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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