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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영화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포레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계의 귀재 또는 폭주하는 영화감독 오야나기 도시조는 '탐정영화'라는 새로운 작품을 찍기로 한다. 영화의 결말은 비밀로 한 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결말을 제외한 러시 필름을 시사하는 날 감독은 연락도 없이 행방불명이 된다. 남은 건 오직 결말 부분뿐.... 잘못하면 영화사 자체가 도산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 감독의 행방을 찾지 못한 체 영화제작진들은 감독 없이 결말을
찍어 완성하기로 결정한다.
산사태를 만난 자유기고가 다쓰미는 한 저택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곳은 왕년의 유명한 영화배우 사기누마 준코의 집으로 그곳에는 그녀의 딸과 조카 그리고 고용인으로 보이는 노인과 주치의, 입주 간호사가 있었다. 산사태로 인한 통신 두절에 마을로 내려가기 힘든 고립된 상황에서 하루를 묻기로 한 다쓰미.. 그날 새벽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 다쓰미는 다급하게 밖으로 나오고 집 밖에는 간호사 하야시가 목이 부러진 체 죽어있었다. 2층 그녀의 방은 안에서 잠겨있는 상태였고 방열쇠는 그녀의 손에 들어있었다. 자살? 아니면 살인?..... (영화 '탐정영화')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는 국내에 《살육에 이르는 병》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그 책을 아직 읽지 못하였고 이 《탐정영화》가 작가와의 첫 만남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1989년 《8의 살인》으로 데뷔하여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1990년에 나온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드는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짜임새가 아직은 부족한 어떻게 보면 아직 신인작가로서의 풋풋함마저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소설은 크게 보면 영화의 크랭크인에서 크랭크업 그리고 영화 상영 이후의 이야기까지 영화를 만드는 전과정을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다시 두 가지 파트로 나눠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현실에서의 영화 촬영 현장과 그들이 만드는 영화 속 이야기. 이 두 가지 상황을 교차편집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보통 치밀한 구성과 극적 긴장감 그리고 반전의 묘미가 주는 즐거움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극적인 긴장감이나 이렇다 할 반전은 그렇게 없는 작품입니다. 《탐정영화》는 '왜, 감독은 사라진 것인지' 그리고 '영화 속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냐'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게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 같은 경우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상황들을 독자들이 풀어보는, 즉 작가와 독자의 두뇌게임을 벌인다고 본다면 이 소설에서는 이야기에 독자들도 같이 참여해서 만들어가기를 원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저는 소설 속 장면 중 감독 없이 스텝과 배우들이 결말을 만들기로 결정한 후 배우들은 서로가 돋보이기 위해 자신의 배역이 범인이고 왜 그런지 이유를 밝히는 장면에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당신들도 같이 참여해서 '어떤 역이 범인인지 그리고 왜 그런지 한번 만들어보는 건 어떤지' 의견을 제시해보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기분이랄까 하여튼 조금은 신선하고 재미있게 책 읽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결국 소설이기에 읽다 보면 결론으로 가게 되는데 아쉽게도 결말 부분은 좀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쉬웠습니다. 뭔가 한방이 있겠지 했는데 감독의 사라진 이유도 그렇고, 맥빠지는 영화 속 결말도 그렇고 많이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살육에 이르는 병》을 먼저 읽으신 분들은 이 소설에 대해 실망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이분의 다른 책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미스터리 소설로는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현실 속 영화 만들어가는 과정과 감독의 실종만을 가지고 좀 더 코믹스러운 상황들을 만들어 넣어 이끌어갔다면 유쾌한 소동극으로 더 나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제 영화로도 만들어져도 재미있는 작품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와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둘 다 잡기에는 어딘가 역부족이지만 책을 읽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드니 나름 재미있게는 읽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영화 관련된 내용들이 많아 다양한 영화들과 감독, 배우들의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소설 속 나오는 영화나 배우, 감독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아는지 맞추면서 읽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어두운 실내. 의자가 스무 개쯤되는 시사실 한가운데 사내가 몸을 깊숙이 묻고 앉아 있다. 그가 왼손을 높이 들어 딱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머리 위로 눈부시게 하얀 빛의 사각뿔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각뿔의 밑면은 남자 정면에 있는 스크린, 꼭짓점은 그가 등지고 있는 벽 중앙 부분에 있다. 큼직한 숫자가 스크린에 비친다.
5, 4, 3, 2, 1·······
"서, 술·····서술 트릭? 그건 뭐지?"
미스즈가 묻자 호소카와가 신이 난다는 듯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는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 트릭‘이라고 정의하지. 작품 속 범인이 쓰는 트릭이 아니라 작가가 오로지 독자를 속이기 위해 장치하는 트릭이야·····소설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체형이나 그 공간의 풍경은 눈에 보이지 않잖아?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중요한 내용을 독자에게 숨겨두기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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