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 걸려온 전화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2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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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켈러로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자신을 콘도 교코라고 소개한 그녀는 통장을 확인해 보라는 말과 함께 내일 저녁에 다시 통화하자는 말만 남긴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특별히 일의뢰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요즘처럼 여유로운 삶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호기심에 다음날 통장을 확인해 보니 콘도 교코의 이름으로 10만엔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나에게 '삿포로음흥'의 미나미 사장에게 작년 8월 21일밤 가리타는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봐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미나미를 만난 나는 가리타에 대해 물어보자 돌아오는 건 미나미의 극심한 분노였다. 황급히 자리를 피한 나는 스스키노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을 기다리고 있던 중 누군가에 의해 철로로 떨어지게 되고 간신히 전철을 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는 일종의 위협이었다. 켈러로 돌아온 나는 콘도 교코에게 결과 보고를 하고 의뢰를 마무리 지었지만 결국 나는 이대로 끝낼 수 없어서 작년 8월 21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기로 한다. 조사하던 중 스스키노 가이가쿠회관 방화사건과 소쿠텐도장이라는 우익단체가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방화사건에서 살해당한 여성 시체가 하나 나오게 되는데 그 여인 이름이 콘도 교코였다. 그와 더불어 죽은 콘도 교코의 아버지 역시 불량배에게 납치되어가던 여인을 구하려다 살해당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날이 8월 21일이었다. 나에게 의뢰한 콘도 교코라는 여인은 누구이며 그리고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들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나는 친구 다카다와 함께 소쿠텐도장으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드디어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참 힘들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는 진도가 더디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스토리 면에서나 구성면에서 전작보다 훨씬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키노 탐정의 틀을 2편에서 완성이 되는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여튼 가독성도 좋았고 마지막 여운을 남기는 부분까지 모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바에 걸려온 전화>는 영화 <탐정은 바에 있다>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영화화된 소설을 읽을 때 안 좋은 점은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읽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거나 대충 넘겨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탐정은 바에 있다>는 영화 역시 원작에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서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김빠지는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게 큰 반전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안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워낙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살려줘서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 속 두 주인공을 대입하면서 읽다 보니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읽는 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냥 읽을 때가 1이었다면 영화 속 캐릭터를 대입해서 읽을 때는 감정이입이 2~3배까지 올라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는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어둡거나 우울함이 묻어나는 그런류의 소설은 아닙니다. 전작도 그렇지만 항상 경쾌함과 리듬감을 잃지 않는 소설입니다. 특히 소쿠텐도장을 찾아가서 벌어지는 활극은 박진감과 함께 경쾌함마저 들게 하는 장면 묘사였습니다.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번 작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다카다와의 콤비 플레이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역시 이 둘이 같이 뭉쳐있어야지 재미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 둘의 개그적인 만담 요소는 많이 줄고 몸을 쓰는 액션이 많이 들어갔다는 점은 간사한 심정으로 봤을 때 많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드보일드 소설이면서도 기존의 하드보일드 소설 공식과는 다른 노선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전형적인 부분도 있는데 주인공인 나에 대한 캐릭터 설정은 전작과 변함없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의 느낌을 살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는 하루하루를 즐기며 사는 인생이고 알코올중독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틈날 때마다 술을 마십니다. 자신의 미래보다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소설에도 나오지만 봄이 오는 걸 싫어한다는 표현으로 새로운 시작이나 계획을 세우는 게 싫다는 것을 은근히 돌려서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소설의 큰 주제는 사랑입니다.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어떻게 보면 결국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배드 엔딩으로 끝나고 맙니다. 영화 속에서는 감정적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한 신파적인 느낌으로 결말을 이끌었다면 소설 속 결말은 짧고 강렬하게 끝맺고 있습니다. 결말의 내용은 같지만 표현방식에서 차이가 다소 있는데 결말에서 느껴지는 여운은 소설이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설을 털북숭이 아저씨가 썼다는 게 참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읽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 시리즈는 오랫동안 계속 읽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국내에는 3권까지만 나와있기에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만 들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와 소설 모두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초봄이다. 눈은 거의 녹고, 갈색으로 퇴색되었던 풍경이 조금씩 녹색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길거리에 아스팔트 가루가 피어 오르고, 얼굴이 금방 까칠해지고, 목이 금세 칼칼해지는 계절. 나는 초봄이란 계절과는 영 맞지 않는지, 이유도 없이 죽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한다.

허무감과 절망감과 멜랑콜리에 지배당해서, ‘숙취에 시달리는 다음날 아침‘같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이 느낌을 알게 됐는데, 깜짝 놀랐다.

자살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만, 조금 더 상태를 지켜보자고 생각하는 동안 여름이 다가와서 위험이 물러갔음을 알았다. 그 후로 내게 초봄은 항상 기분이 울적해지는 계절이었고, 단전에 힘을 주고 고개를 움츠리고 지내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그러나 삼십년이나 살아오다 보니 지금은 그 정도까지 힘들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삼십년이나 살아왔다‘라는 말이 먹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참으로 위험한 계절이다. - P11

누군가 내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돌아보자 마키조노가 있었다. 일그러진 입술을 힘껏 깨물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몇 번이나 내 가슴을 두드렸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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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바에 있다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1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스스키노 거리에서 탐정 노릇을 하고 있다. 나이는 28살.. 사무실은 '켈러 오하라'라는 작은 바다. 여유로운 날을 보내는 오늘 밤 하나다 마코토라는 대학 6년 후배라는 녀석이 찾아와 자신의 여자친구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한다. 미팅에서 만난 스와 레이코.. 거의 동거하다시피 살고 있었는데 그러던 그녀가 나흘 전부터 행방불명이라는 것이다. 마지못해 의뢰를 맡게 된 나는 조사를 하던 중 그녀의 통장에 들어있는 금액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 알바 수입치고는 너무 많은 금액이 들어있었고 그런 금액을 단기간에 벌 수 있는 일 이 무엇인가 생각하던 중 레이코가 매춘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좀 더 깊게 파보기로 하고 조사를 하던 중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조이사토사건'과 연관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이사토사건'이란 조이사토라는 러브호텔에서 구도 케이키치라는 인물이 흉기에 살해된 사건을 말하는데 구도 케이키치는 여자를 소개해주는 사업 즉 매춘 사업을 하고 있었고 스와 레이코는 그 업체에 소속된 여자였음을 알게 된다. 죽은 구도 케이키치 사무실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먼로라는 여성을 우연히 만나게 되지만 먼로는 나를 피해 도망을 치고 설상가상으로 먼로의 3류 건달 애인 하루가 나를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 소설을 보통 하드보일드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하드보일드(Hard -Boiled) 란 장르가 아닌 스타일을 말하는데요 자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주제를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하는 게 특징입니다. 저에게 하드보일드란 중절모, 재즈, 위스키, 담배가 연상이 되고 합니다. 그만큼 소설 속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소품들이기도 하고요.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은 대체적으로 탐정입니다. 그것도 잘 나가는 탐정이 아닌 겨우겨우 살아가는 그런 탐정이죠.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에서도 하드보일드 속 탐정들을 자신들의 성적 매력 만 내세우는 머리는 안 쓰는 그런 분류처럼 이야기합니다. 어느 정도는 동의되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보면 하드보일드 소설은 남성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성적 대상의 일부이거나 남성을 유혹해서 이용하는 그런 팜므 파탈로 묘사되며 대부분 이런 여성들과 탐정들은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남성들은 남성호르몬을 물씬 풍기는 마초들이 주를 이루죠. 고전소설에서는 많이 나오는 공식 아닌 공식이라면 요즘 나오는 현대 소설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하드보일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소설 《탐정은 바에 있다》는 전통적 하드보일드 공식을 따르면서 유쾌함을 잃지 않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스스키노 탐정이라고 하겠습니다.)는 잘 나가는 그런 일류 탐정이 아닙니다. 스스키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흥업소를 도와 손님 외상값을 대신 받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유흥업소에 사기당한 사람들을 도와 일을 해결해주는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고 때로는 남의 뒷조사도 해주면서 수고비를 받는 탐정보다는 그냥 흥신소일을 하는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 못 하는 면도 있고 은근히 보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오지랖도 넓은 알고 보면 정이 많은 그런 츤데레 캐릭터입니다. 이런 친근하고 정이 가는 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 아즈마 나오미는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태어나 홋카이도 대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홋카이도 토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스스키노 탐정'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를 써왔습니다. 이 '스스키노 탐정'시리즈는 1992년 《탐정은 바에 있다》를 시작으로 2012년 12권《고양이는 기억》을 끝으로 현재는 아쉽게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도 3편까지 나왔는데 영화 속 주인공과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싱크로율이 좋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큰 사건보다는 소소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서 그런지 사건보다는 캐릭터를 알리는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아쉬운 건 스스키노 탐정과 다카다 콤비의 활약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는데 잠깐식 보여주는 그들의 개그만담은 이 소설 중에서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자칫 흐름이 지루해질쯤 불쑥 뛰어나와 웃게 만드는 그들의 개그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그게 전부여서 몹시 아쉬웠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그 둘이 보여주는 액션들이 나름 볼만했는데 말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게 안 보여서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지만 어떨지는 다음권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듯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은 1980년대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한 건 1992년인데 왜 1992년이 아닌 1980년대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작가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가져온 건 일본의 화려했던 그 시절이 스스키노 탐정과 잘 어울린다고 본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작가의 20대 시절을 추억하며 자신의 모습을 탐정에게 투영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 읽고 났을 때는 그 시절이 아닌 다른 시대였다면 잘 매치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굳이 소설의 단점을 꼽자면 묘사의 디테일은 살아있는 반면에 그게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중반 이후 다소 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설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함을 좀 더 내세우고 속도감을 좀 더 올렸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작가의 데뷔작임을 감안하고 이해하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작품이 나온 지 27년이 되다 보니 요즘 작품에 비해 올드 한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재미 면으로 따졌을 때는 현재 읽어봐도 손색이 없는 그런 작품으로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차가운 돌풍이 정면에서 휘몰아 쳤다. 나는 무심결에 얼굴을 찡그렸다. 가지각색의 조명 아래 흩어져 있는 호객꾼들이 제각기 한 손에 전단 뭉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점퍼 옷깃을 여미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이었다. - P9

밤의 스스키노에 소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휘향찬란하게 세상에 가득 한 빛 속에서 몇 만 명이나 되는 인간이 소리치고 노래하고 웃는 소리. 그것들이 다양한 소음과 하나가 되어 밤하늘로 올라간다. 하루의 외침도 그것에 녹아든다. 스스키노는 빛과 소음, 그리고 밤하늘은 어두운 침묵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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