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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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내 취향이 아니나 문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읽는 소설집. 이런 내용은 읽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안 읽고 싶고 모르고 싶고 외면하게 되고. 할 수만 있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내용들. 그래서 반대로 더더욱 알아야 할 내용들. 알아서, 끝내 알아내어서, 이웃으로 당사자로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헤쳐나가야 할 고단한 일상의 상황들. 소설이지만 끝내 소설로 남을 수 없는 현실의 아픈 상처들. 


작가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인데, 읽는 동안에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나는 비겁한 방관자로 살 때가 많고(아니, 대체로 삶이 이러하고) 아주 가끔 흥분하고 분노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일 테다. 내 무능과 내 무기력이 나를 더욱 주저앉히곤 하니까. 


그래도 읽는다. 읽고 아파한다. 아파서, 쓰려서,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울지도 못한다. 울 자격도 없지 않나? 편하게 앉아서 글 몇 줄 읽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차갑게 그러면서 간결하게 쓰여 있는 글은 끝도 없이 나를 때린다. 책은, 글의 힘은, 이렇게 줄곧 매맞는 기분으로도 계속 읽고 싶도록 하는 데에 있다. 적어도 느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아무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이만큼의 사회적 양심이라도 가지라면서.        


어쩌면 나처럼 이만치 혼자서 물러 나와 있는 이들에게, 이웃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려고 쓴 책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고마운 각성이다. 작품 속 인물들을, 이와 비슷한 처지의 우리네 이웃들을, 조금이라도 깊이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자고 모든 배경 묘사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는지. (y에서 옮김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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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아래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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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중심 소재로 이렇게 아기자기한 만화를 그려내다니. 평온했다. 그림이 아주 멋지다거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부담없이 머물 수 있다. 그게 더 좋았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그런데 실제로 하는 것과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작가의 능력을 함부로 평가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님)

 

만화는, 아기자기한 만화는, 내용이 좋은 만화는, 내게 하나의 꿈이다. 멀리, 저만큼 떨어져 있는 꿈.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붙잡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꿈. 꼭 해 볼 것도 아니면서 언젠가 해 볼 수도 있지 않으려나 그런 꿈.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의 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 과학이든 신화든 전설이든 우주의 생성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가 우주를 공부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의 우주를 지켜야 하는 사명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거운 사명조차도 가뿐하게 받아들여진다.

 

작가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좀더 알아 보아도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다. 겉멋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만화책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y에서 옮김201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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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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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사람, 대범한 사람. 사소한 성격, 대범한 성격. 사람의 성향을 둘 중 하나로 딱 잘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일에 따라서 어느 쪽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 대체로 어떤 성향이 더 자주 나타나는가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뿐.


    나는? 나는 사소한 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쪽인가, 대범하게 일을 처리하고 넘기는 쪽인가? 사소한 일까지도 얽매인다고 여겼는데 어떤 일에서는 퍽 대범하게 넘겨 버리곤 해서 나 스스로 놀란 적도 여러 번. 그러면서도 소심하다고 착각도 많이 하고 살았는데. 결국 어느 한 쪽이 더 낫고 다른 한 쪽이 모자라는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성격이란 건, 성향이란 건. 그저 그러할 수밖에 없고 그러고 싶어하고 그러는 게 스스로 마음 편해서일 뿐. 


    이 작가의 글이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하찮은 일에 놓여 있는 경우의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일상에서는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고 넘길 자잘하고 사소한 일들, 그 일에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떠했던가 하는 되돌아봄. 그리고 그게 그 순간에는 어떤 이유로든 민망했거나 난처했거나 부끄러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그런 상황들. 그리하여 내가 그리 모자란 것도 아니고 남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나대로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는 말.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마저 사랑스러운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작가처럼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는 내가 더 이상 궁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러면 된 것이다. (y에서 옮김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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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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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머리에 새긴 낱말 셋>


    비루하다 -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 너절하다 - 허름하고 지저분하다. 하찮고 시시하다.


    던적스럽다 - 하는 짓이 보기에 매우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


     

    슬픈 소설이었다.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눈물도 메마르고 문체도 메마르고 읽는 내 숨소리조차 메말라버리는 소설이었다. 책 속에는 온통 물, 홍수, 습기, 바다로 가득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 책 바로 밖은 더할 수 없이 건조하고 팍팍하고 거친 공기뿐이었는지.  


    슬퍼서 슬프다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읽게 되는 글이었다. 눈물이 솟으면 어쩐지 미안해질 것 같았다. 정작 슬픈 삶 속에 풍덩 빠져 있는 사람들은 눈물도 없이 견디면서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다지 슬프지도 않은 주제에 넘치는 주제에 남 슬픔 조금 엿보고서는 눈물 핑그르르 맺히는 것에 가소롭다고 할 것 같았다. '네가 슬픔을 알아?' 


    공무도하가로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한번도 슬픔의 깊이나 결을 말해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느낌마저 제대로 전달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건너지 말라고 했으나 기어이 건넜던 그 절대적인 간절함을 한번도 내가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까지 남의 삶을 이해할 수 있노라고 나 자신을 속여 왔던 것이리라. 진심으로 내 것처럼 여겨본 적도 없었으면서. 


    소설가의 힘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나는 이 책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이 지닌 슬픔 몇 쪽을 맛보았다. 맛본 것일 뿐이다. 그것도 혹시라도 나에게 그런 슬픔 한 쪽이 떨어질까 두려워 멀찍이 떨어져 나온 거리에 서서. 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고도 동정한다고도 위로한다고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많이 비겁하고 소심하고 이기적이며 남과 나를 동시에 속일 줄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오래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양심의 가책 같은 것에 조금 시달리게 될 것 같아 그렇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안 해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핑계 대는 자신이 한심해서 그렇기도 하고, 이 땅의 가여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픔이 불쑥불쑥 안에서 밖으로 삐져나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때마다 작가를 원망했다가 고마워했다가 그럴 테지.  


    좋은 소설은 이런 소설이다. (y에서 옮김20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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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의 토성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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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살 시절을 이미 오래 전에 지나온 어른이 만약 다시 열네 살 소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가정의 아이였으면 좋을까를 상상해 본 이야기로 읽었다. 이런 상상, 내 취향은 아니지만 현실의 고달픈 문제를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요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성격이 등장인물들의 태도로 곳곳에서 잘 드러나 있는 것도 좋았다. 만화로뿐만 아니라 소설로도 계속 믿을 수 있으니까.


    다시 열네 살이 된다면 어떤 가정에서 살고 싶을까? 아빠는? 엄마는? 또다른 가족으로는? 집의 형편은? 내 성격은? 내 친구로는? 학교는? 선생님은? 무엇보다 짝사랑하는 선배는? 등등.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고려했을 여러 가지 배경과 조건들이 꽤 흥미로웠다. 상상 속에서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안 하고 싶었던 것인지 주인공 안나의 생활 반경을 소박하고 평범하게 그려 놓았다. 몇 번이나 말한 듯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만큼의 평범한 조건을 얻는 일이 예사로운 게 아닌 것임을.


    성실하지만 그래서 가족을 위한 집도 마련했지만 35년 동안 집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아빠. 대출금을 갚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하는, 요리에 영 솜씨가 없고 솔직담백한 엄마. 오로지 우주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공부도 잘하면서 상냥하기까지한 대학생 오빠. 공부도 운동도 외모도 특별할 게 없이 중간층에 머물면서 하나뿐인 친구와 자신의 외모 관리와 짝사랑 대상인 선배 때문에 고민하는 여자 중학생인 주인공.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심각한 사건이나 골치 아픈 갈등 관계를 내세우지 않고도 평범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제각각의 문제를 잘 보여 준다. 글을 통한 상상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긁어서 괴로울 지경이 되도록 어렵고 고단하며 지긋지긋한 상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놓치지 않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나로서는 참 좋았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너무 넘치는 것도 그렇다고 턱없이 모자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하는 내게 딱 좋은 범위 안의 글이었던 듯하다. 


    주변에 열네 살의 소녀가 없다. 이만한 나이의 소녀들에게 신선한 선물이 되어 줄 책인데. 열네 살의 딸을 둔 엄마도 없다. 선물도 할 수 있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나를 위한 선물로 만족하는 수밖에. (y에서 옮김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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