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할 수 있을까?
다카기 나오코 지음, 윤지은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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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제자리를 잡은 사람에게는 세상이 참 다채로워 보일 것 같다. 삶의 어느 한 영역, 소재가 못 될 게 없어 보인다.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 의미만 부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림으로 나타낼 수만 있다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해 줄 테니까. 


의미를 부여하는 일, 이것도 능력이기는 하다. 먹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방송도 책도 만들어진 것일테고, 집을 짓거나 고치는 일, 옷을 만들거나 입는 일도, 하다못해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조차 의미가 되는 세상이니.  


이 만화는 부모님과의 에피소드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님의 특성을 보는 사람이 유쾌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려 내고 있다. 화목했던 집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어 나이 드신 부모님을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모시면 좋을지 이 일 저 일을 궁리하고 시도해 보는 작가를 보고 있노라면 이 자체가 효도가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고. 이 가운데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나라의 서울로 해외여행을 온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거꾸로 보는 입장이어서 묘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관광산업 수준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좀 민망하기도 했고. 


만화 주인공이 나이가 든 여성임에도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엽게만 보인다.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 그게 보기 좋다. 보기 좋아서 내 기분도 상승되는 이 느낌, 독서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y에서 옮김201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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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태원 옮김 / 검은숲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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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추리소설에 적절한 가상공간을 마련하는 작가. 라이츠빌이다. 책 앞에 도시의 중심지를 지도로 보여 주고 있어서 머릿속 그림을 그려 나가기에 퍽 편리하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이렇게 도시 하나가 세워지는 상상 속 세계다. 이왕이면 바람직한 모습의 도시나 마을이었으면 좋으련만. 이래서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는 않겠지?  


엘러리 퀸이 소설을 쓰기 위해 라이츠빌로 온다. 집을 빌리고 이 집에서 사건이 하나둘 일어난다. 작은 마을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대충 다 알고 있는 분위기에서,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에 더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본성. 얄궂다는 느낌이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이 공통점은 사라지지 않고 발현되는 것만 같다. 쑥덕쑥덕, 남 잘 되는 것은 못 보겠고, 못되는 일에는 참견하고, 소외시키고, 소외당하면서 괴로워하고, 그러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반성하고. 용서할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없고. 재앙의 집이니 재앙의 거리니 멋대로 이름이나 지어 부르며 또다른 죄를 짓고.


엘러리 퀸의 시선과 행동을 따라 라이츠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냥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요즘처럼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더러 교류도 좀 하고 이웃 사정도 좀 알고 있다고 본다면 말이지.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되기까지는 어떤 동기가 얼마나 차올라야 실행이 될까. 하도 자극적인 드라마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살인이라는 소재가 이제는 별로 낯설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만큼 쉬울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일 텐데. 죽고 죽이는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는 독자나 시청자의 본성은 어떤 것일까. 


라이츠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이 책을 포함해서 5권이라고 한다. 짐과 노라의 슬픈 사랑이 애달팠는데 다음 비극은 어떤 집 누구에게 일어날 것인지. (y에서 옮김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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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여행 1 - 두근두근 혼자 떠나는 일본 여행
다카기 나오코 글.그림, 윤지은 옮김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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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여행하는 좋은 점과 불편한 점에 대해서는 이미 직접·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다녀보기도 하고 여럿이 같이 다니기도 하면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혼자 왔더라면, 같이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나 다행스러움을 느끼곤 했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니, 이제는 혼자서 해 보는 단촐함에 더 끌리게 된다. 같이 하는 즐거움도 크겠지만 혼자 누리는 호젓함이 만만치 않게 기대되는 탓이다.

 

이 만화는 젊은 아가씨의 홀로 여행기를 보여 준다. 꽤 마음에 든다. 글로 나타냈더라면 그저 그런 기행문처럼 보였을 텐데,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집약해서 보여 주니 또 따라하고 싶어진다. 여행의 배경은 작가의 나라인 일본이니, 나로서는 우리나라 여행도 이렇게 해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걸리는 것은 숙소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혼자 잠자리를 찾는다는 게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밤 12시가 넘어서도 그냥 집으로 돌아오려고만 할까. 하기야 우리나라에 1박 할 곳이 어디 있는가 하는 농담도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여행자의 마음으로 잠시 머물고 싶은 때도 있기는 한데. 그곳에 온천 같은 쉼터도 있다면 더욱 근사할 것이고.

 

혼자서 돌아다니고 혼자서 밥 사 먹고 혼자서 기념품 챙기고 혼자서 잠 자고, 흐음, 머지않아 시도해 봐야겠다. 나에게 주는 선물 하나로.  (y에서 옮김201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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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의 비극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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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라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기까지는 무죄라는 말,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알게 된다. 힘 없고 재수 없는 사람이 반대의 사람에 의해 곤경에 빠지게 되면 얼마나 나빠지는가 하는 것까지. 소설이니까, 주인공 탐정이 반드시 해결할 것을 아니까 희생자를 구원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어째, 영 쓴맛이 난다. 모순이 많은 현실에서는 정의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게 아니더란 말이지.


드루리 레인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세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섬 경감의 딸이 등장한다. 아버지와 같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레인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총명한 기지를 보인다. 작가가 이런 설정-똑똑한 여성 탐정을 등장시키는 것-을 하게 된 배경이 살짝 궁금해지기는 하지만 그냥 읽는다. 경감에게 남달리 똑똑한 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사건을 맡은 수사관도 아니면서 아버지와 딸이 참관인으로 수사에 참여한다는 게 약간 의아하기는 했어도 그 시절 미국에서는 그랬으려나 여기며 넘겼다. 아버지와 함께 수사하는 엘러리 퀸과는 또 달랐고.


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나쁜 정치가가 얽혀 있는 살인 사건이라 그랬는지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벌 받아야 하는 사람은 벌 받아야 하는데, 현실도 소설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명쾌하게 판결이 나서 나쁜 범인은 벌을 딱 받는 것.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또 어떤 나라든 실제로 인간이 사는 현장에서는 이렇게 명쾌하지 못해서 범죄추리소설이 발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범죄 드라마도 마찬가지고. 


레인이 활약하는 책은 한 권 더 남아 있다. (y에서 옮김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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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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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사 둔 책인지 기억에도 없고, 리뷰에 남긴 흔적이 없으니 다 읽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이 없고, 그런 어느 순간 꽂혀 있는 책을 불현듯 꺼내어 넘겼다. 금방금방 넘어 가는 게 아니라 자꾸만 눈이 머무른다. 읽다 보니 분명히 읽은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다시 또 읽게 된다. 좀처럼 내가 하지 않는 일인데.

한번 읽은 책을 다시 꺼내어 읽는 일이 내게는 아주 드물다. 가끔 학생들에게 쓸 글을 찾기 위해 다시 뒤적이고 챙기는 일은 있어도 온전히 새로 읽어 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은 없는데, 어찌된 셈인지 이 책이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인연이어서일까.

오래오래 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 책의 제목인 '인연'이 떠올라서였던 것 같다. 갑자기 그때의 추억, 그때 글을 읽으시며 수업을 하시던 담임 선생님(그분은 왜 그리 빨리 돌아가신 것인지), 지금도 여전히 만나고 있지만 그때 함께 떠들고 놀았던 친구들의 인상 등등이 생각나면서 이 책을 처음 보았던 시절로 나를 되돌려 놓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피천득의 수필을 처음으로 본 책은 이 책이 아니라 범우사에서 발행했던 작은 책자 '수필'이었을 것이다. 대학교 때 사서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책은 곧 잃어버린 것 같고, 이후 수업을 하다가 필요에 의해 이 책을 구입했고, 보다 보니 몇 년 전에 몇 편의 글은 수업에 활용했다는 기억도 난다. 아, 어쩌자고 이렇게 내 추억이 많이 담겨 있단 말인가.

이 리뷰를 쓴 뒤에도 이 책을 곧 다시 펼쳐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이가 들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도 따스하고 그리고 서럽다. 지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너무도 고맙고 더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섭섭해지지가 않는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인연들이 떠올라 마음 아프고 현재 잇고 사는 인연들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고맙다.

책도 추억이 되는가.  (y에서 옮김20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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