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서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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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심하는 사람은 절대로 범인이 아닌다. 아무리 의심을 고쳐 다시 해 보아도 나는 늘 작가의 의도대로 의심했다가 마침내 속혔음을 알게 된다. 이건 뭐 깨닫는 것도 아니고, 자꾸 읽는다고 해서 늘어나는 추리력도 아니겠다. 그냥 읽고 단순하게 의심하고 맛깔나게 속히고 그래서 읽는 동안 즐거웠으면 되는 거다. 더 바랄 게 없으니까.  


시계 여덟 개, 하나 줄어서 일곱 개. 친구를 깨워 주려고 자명종 시계 8개를 이용했는데 친구는 죽었고 시계 하나는 창밖에 버려져 있다. 여기에 미스터리가? 시작은 늘 이렇게 되곤 하지. 그리고 이에 매달리다 보면 놓치는 게 생기고. 쓰는 이의 입장을 틈틈이 떠올려 보는데 소재나 사건을 배치하는 솜씨가 대단해서 참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인물들의 성격이나 숨겨진 속셈을 그려 내는 재주는 두말할 것도 없다.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데 저절로 믿고 마는, 그러다가 아뿔싸, 그런 생각의 함정으로... 


사정이 이러함에도 계속 읽게 되는 요인은 신통하지 못한 내 추리력이 전혀 무안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데에 있겠다. 속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했음에도 실망스럽지 않은,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익숙한 인상조차 생기지도 않고. 배경이나 인물들의 신분은 비슷한데 구성이나 전개 방식만큼은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내가 앞서 읽은 이 작가의 작품들의 특징을 홀라당 잊어버렸을 수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다른 작가의 글에서는 또 그런 익숙함을 찾아 내는 것을 보면 꼭 내 기억력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침니스라는 저택을 배경으로 한다. 침니스의 비밀이라는 책을 아직 안 읽었는데 순서상 거꾸로 보게 된 셈이다. (y에서 옮김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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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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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든 겨울이든 미처 느끼지 못하고 살던 때도 있었다. 사는 게 힘들어서 못 느꼈던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세상을 모를 만큼 철이 없었거나 어쩌면 그런 대로 살 만했거나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버텨내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게 지구 기온 탓인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 고단한 탓인지, 잘난 사람들 말처럼 세계 전체가 온통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가 나무랄 것도 아닌데 지레 움츠러들어서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내가 쓴 김애란의 책 리뷰를 다시 찾아 보았다. 3권이 있고 좋았다는 평을 남겨 놓았다. 그럼에도 딱히 인상에 남아 있는 게 없다. 매혹적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리라. 이 책은 굳이 안 읽고 미뤄 둔 책이다. 제목부터가 더웠고 고통스러웠다. 그 뜨거움을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한 해를 넘기고 여전히 책은 주목을 받고 있는 모양이고 이제 날도 추워지기 시작했으니 펼쳐볼까, 펼쳤는데 읽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좋았노라고 쓰지 못하겠다. 


글이, 주제가, 문장이, 표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아니다. 소설의 배경이 싫었다. 이 배경이 싫다고 소설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작가로서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꼭 이 배경으로 이 시대의 우리네 삶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고, 문제를 알리고 싶었을 것이고,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설정이 마음에 안 드니 소설을 좋은 기분으로 읽고 있을 수가 없는 거다.


아주 적절해서, 지금 이 상황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소설이라서, 이게 또 아프고 불편해서,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주변을 헤아리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심정이라서, 나는 자꾸만 소설 한 편 한 편에 마음의 발길질을 했다. 툭툭, 왜 화제작이 되었는지도 알겠고, 왜 오래 읽히고 있는지도 알겠고, 이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면 이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텐데, 어떻게 우리 사회가 나가는 속도는 느리기만 여겨지는 건지, 나아가고 있기는 한 건지. 


안 읽어서는 안 될 소설이었다. (y에서 옮김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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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마리의 아침밥 14마리 그림책 시리즈
이와무라 카즈오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아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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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은 곧 먹는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물음 안에 인류의 역사의 흐름이 있는 것이니까.


14마리의 생쥐 가족 이야기를 그림 동화로 읽으면서 나는 한탄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여. 생쥐보다 나은 존재이기는 한 것일까? 생쥐네 가족은 14마리, 눈을 뜬 후 전원이 아침밥을 마련하고 준비한다. 어느 한 마리 놀고 먹는 생쥐가 없다. 다 같이 찾아서 구해 오고 다 같이 만들어서 다 같이 먹는다. 우리는?


부모나 선생님들은 아이와 이 그림책을 같이 보면서 어떤 말을 주고받을까? 괜히 궁금해지고 괜히 심술이 생긴다. 아침에 온 가족이 함께 아침밥을 준비하고 함께 먹는 모습? 글쎄? 세상 어딘가에 이런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우리네 현실은? 각자 알아서 제 아침밥이라도 챙겨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인 처지이니. 


예쁜 그림책을 보고 싱숭생숭한 나, 무엇이란 말인가. 부럽기만 하다. 엄마 생쥐가 방금 구워 낸 빵,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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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완전판) - 에지웨어 경의 죽음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노지양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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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웨어 경이 죽는다. 경의 현재 아내가 다른 남자랑 결혼을 할 예정인데 이혼을 안 해 준다고 죽일 거라고 내내 벼르던 중에 그만 죽어 버렸다. 정말 이 아내가 죽인 걸까? 푸아로 경감이 이 사건을 해결한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그 사건이 핵심일 수도 있고 사소하게 지나가는 주변 요소에 그칠 수도 있다. 독자인 나는 이게 구별이 잘 안 된다. 당연히 작가의 솜씨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오는 사람이 모두 범인 같았다가 아무도 아닌 것 같았다가 하는 의심이 계속 반복된다. 이 재미로 읽는 것이고, 이 작가의 글은 이 재미를 얻는 데에 나를 퍽 만족시켜 준다. 어느 한 권도 빠지는 게 없다.

 

푸아로 경감은 심리 분석에 공을 들이는 탐정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 행동이나 태도를 보고 추측하거나 기질을 보고 판단하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이 되겠다. 나는 정말 못하는 일인데, 이걸 또 잘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으니 감탄하며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푸아로가 헤이스팅스를 놀리는 듯한 말로 종종 등장하는 표현, 신이 이 능력을 따로 주시지 않아서 순진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내가 딱 헤이스팅스다. 아니, 나는 헤이스팅스보다 기억력도 떨어지는데.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사건 현장,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국의 시대상, 한번 살인을 한 사람은 두 번째부터 쉽게 해치운다는 푸아로 경감의 무서운 예언까지 읽고 또 읽는다. 재미있다. 나는 앞에 읽은 책을 잘 잊어버리는 기술까지 갖고 있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다른 것에 비해 오타가 많은 편이었다. 읽기에 걸려서 짜증이 날 정도로 자주 만났다. (y에서 옮김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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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김혜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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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나라 어딘가에는 이런 곳이 있을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잠을 자는 곳.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다. 잘 사는 나라에도 있다니까. 집은 뭘까? 나를 지켜줄 공간이 없다는 암담함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누구는 노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겠는가마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무지하게 불편하고 답답해진다. 나를 보호해 주는 내 집에 대한 고마움은 다른 감정이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모처럼 인내심을 갖고 연달아 읽었다. 처음 읽은 '딸에 대하여'에서 받았던 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 섬세하고 무겁고 지독하다. 이렇게 빠져 있으면 스스로는 얼마나 힘들까,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 입장이면서도 염려가 된다. 이런 주제의 글쓰기는 결코 즐겁지 않을 텐데, 절대로 즐거울 수가 없는 내용인데, 작가는 어떤 사명감이나 보람이 있어서 이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일까. 

 

희망? 그런 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못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사랑에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삶,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만 가득한데 날은 새고 눈은 뜬다. 그 속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은 일어난다. 어쩌라고? 원망할 이도 애원할 이도 없는 세상에서 죽음조차 선택 사항이 되지 못하는 이 삶을 어찌 이어 나가라고?

 

마음이 어지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 눈에는 보이고 잡히고, 볼 때마다 자꾸 언짢아지고,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득해지고. 가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내게 닥칠 일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문제다. 원시 사회도 아니면서,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하면서 엄연히 존재하는 문명 이전의 상황. 어떤 개인은 어쩌자고 이리도 불행하단 말인가.   

 

요즘에는 공항에도 노숙인들이 생긴다고 하는 것 같던데. (y에서 옮김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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