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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평점 :
사람이 사람을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을 자신으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나를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얼마나 믿고 있나. 내가 나를 이렇게 이 강도로 이만큼의 질로 여기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나면, 내가 다른 사람을 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겨줄 것인지 견주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못믿겠다'이다. 그런데 이게 또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소설 읽는 시간이 길었다. 돌아보니 하루에 한 편 이상 읽기 힘들었다. 참고 두 편 읽은 날은 체한 느낌마저 받았다. 실제로 아프기도 했고. 그게 소설 때문이었는지, 아픈데도 이 책 속 소설을 읽어서 겹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쉽지 않다. 읽고 싶은 글이고 읽어야 할 글이고 읽으면서 좋다 싶은데도 읽는 내내 몸과 마음이 아프다니,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지.
모두 8편의 글. 책 제목처럼 등장하는 주인공 어느 한 사람 신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제까지 신중한 태도는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신중하기만 한 건 신중하지 못한 것만큼이나 문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신중하면서 치밀해야 한다고 했으니, 그러고 싶기는 하지만, 사람이 또 불완전하기 그지없어서 신중하면서 치밀하기는 어지간해서는 이를 수 없는 경지로만 보인다. 차라리 어중간하게 신중하고 어중간하게 치밀해서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는 게 더 나아 보일 만큼.
주인공들의 딱한 처지에 이입되어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소한 억울함이나 원망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탓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로 처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작가가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는 인물들의 속사정을 보면 알아챌 수 있었듯이 나도 내 본성을 알고 있고 한편으로 또 모르는 척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그랬을 것 같았다. 내가 누군가로 인해 아프고 힘들었듯이 나로 인해 누군가도 그러했을 텐데, 어쩌면 지금도 그러할 텐데, 마치 나는 세상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듯 자만하고 있으니. 얼마나 더 내 안을 돌아보아야 하는 걸까. 끝이 없는 길이지 싶다.
띄엄띄엄 그러나 끊임없이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찾아읽겠다. 다만 사서 읽지 않고 빌려 읽는 이유를 말하지 못하겠다. 나 자신을 너무 가까이 만나 알게 되는 두려움 탓이라고 하면 핑계가 될지. 옆에 둘 수가 없어서. (y에서 옮김20211101)
어떻게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같은 걸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가 어떻게 하든 받아들이기로 정해놓은 것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경로를 통해, 저렇게 하면 저런 경로를 통해 같은 걸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리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더라도,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리하게 되고, 결국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 어떤 태도를 택하게 된다. - P85
욕심내고 있다는 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순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 P107
진실은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 사람은 잘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진심을 믿기가 믿지 않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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