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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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가 44회 수상자다. 이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작품을 읽었다는 기억이 없다. 아니다, 언젠가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다. 어려웠던가, 읽기 힘들었던가, 그런 느낌에 내 취향이 아닌가 보다 하고 접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 수상집의 작품으로 다시 도전해 보자, 그때는 못 읽어냈더러도 이름을 알고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니.

수상작품 '마음의 부력'은 잘 읽혔다. 신기한 건 기독교의 성경 일화가 소설의 주요 배경 요소로로 쓰이고 있음에도 거부감을 못 느꼈다는 점이다. 이건 내 독서 취향으로서는 드문 현상이다.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미친 영향인 것 같다. 문장과 문장이, 사건과 사건이, 인물과 인물이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 이렇게 빼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좋아한다. 읽는 내 기분이 낭비가 되지 않는 것이니. 엄마와 아들, 형과 동생, 큰아들과 둘째 아들, 남편과 아내, 그래서 가족, 그리고 가족끼리 마음의 빚을 지는 일 등등...... 심하게 울렁거렸으나 메쓰껍지는 않았다.

이승우 작가의 자선 대표작 '부재증명'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음을 증명하는 일이라니. 나는 그곳에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를 봤다고 하니,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그게 지독히도 나쁜 인상을 준 상황이라는데. 이 소설은 예상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게 하고 겪게 하고 다짐하게 한다. 세상은 가끔 무섭다.

우수작 5편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실려 있는 7편의 소설 전부를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읽어 내기 쉽지 않은데 심사위원들도 출판사도 무엇보다 우리의 작가들도 마음고생을 오래 한 게 아닌가 싶다. 독자로서는 좋은 소설을 읽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으니 고마운 마음이다.

박형서의 '97의 세계'는 무한 루프라는 장치를 쓴 소설이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결국 믿을 수밖에 없는데, 믿어야 사는데, 글쎄, 그럴 수 있을까, 무한 루프로 되짚어 보게 한다. 윤성희의 '블랙홀'은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 글이었다. 저마다 남모르게 품고 있을 블랙홀,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겠지만 어느 순간 내놓고 마는 나쁜 본성들. 책장으로 내 블랙홀을 덮어 버리고 싶었다. 장은진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아련하고 애틋했다. 그래, 그런 적도 있었던 거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 젊은 날에는. 천운영의 '아버지가 되어주오'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내가 보는 것만 맞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들 서로서로는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인지. 내가 보는 거리와 네가 보는 거리는 어찌 그리도 다르기만 한 것인지. 한지수의 '야심한 연극반'은 고달픈 마음으로 읽었다. 특별한 상황을 특별하지 않도록 여기기까지 줄여 없애야 할 편견은 왜 또 이리 자주 일어나는 것인지. 해도해도 끝이 없을 일이다.

모처럼 만족스러운 기분이다. 이승우의 글을 더 찾아보고 싶어져서 이게 또 좋다. (y에서 옮김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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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양말 - 양말이 88켤레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무튼 시리즈 18
구달 지음 / 제철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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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 중에 한 권씩 일주일마다 빌려서 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엔 양말, 재미있게 읽었다. 하마터면 나도 인터넷으로 양말을 살 뻔했다. 니트 양말이라는 게 뭔지 찾아봐야 했으니까. 양말이면 양말이지 양말에도 이렇게 다양한 이름과 브랜드가 있었다니. 그래서 덕후라는 말도 생기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시리즈 책이 소재를 달리 하여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또한 삶의 모습 중 한 형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대상 하나에 몰입하는 생활이다. 그 대상이 무엇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형편마다 취향마다 다를 것이고, 쓰고 누리고 마련하는 것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게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좀더 윤기 있는 삶을 갖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 내게는 마땅한 게 없어서 좀 섭섭하다. 나도 한 가지 갖추고 산다면 정성을 다할 수 있을 텐데. 이 시리즈를 계속 읽다가 하나 정도 내게도 걸렸으면 싶은 바람도 있고.

작가는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일정하지 않고 적기도 한 수입에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양말을 향한 사랑을 마음껏 쏟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명품 양말이 20만 원이나 한다는 것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 대목 역시 요지경인 세상 이야기라 신기했다. 그렇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사람마다 기회비용이 다르다는 것,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덕후라고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정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니까.

아무튼 시리즈는 당분간 계속 읽어 보려 한다. (y에서 옮김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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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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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메리의 뜻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제목에 이 말이 쓰인 이유도 알겠고. 그럴 만하다. 태양이 식어가고 있다면, 그래서 지구에 빙하기가 갑자기 찾아온다면 헤일메리를 내뱉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하다. 나같은 보통 사람이야 그냥 흐르는 대로 맡기고 말겠지만. 과학자들은, 정치가들은, 기업가들은, 돈 많은 부자들은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면 뭐라도 할 사람들이니 지구를 구하겠다고 나서기는 하겠지. 그래서 구해지는가 어쩐가는 모르겠고.

참 재미있게 읽었다. 몇 날 며칠을 과학자인 화자와 함께 우주선 안에서 보낸 듯하다. 꽤 피곤하다. 못할 일이다, 우주여행은. 너무 불편하고 너무 힘들고 너무... 대책이 없다. 책만 읽어도 이러한데, 이 내용으로 영화도 만들어 낸다고 하는데, 아, 영화를 보게 된다면 나는 또 얼마나 떨까? 기대된다, 봐야지.

이 작가가 썼다는 마션도 책은 안 읽었고 영화만 보았다. 맷 데이먼의 연기도 배경도 아주아주 훌륭하여 그 영화를 볼 때도 내가 화성에 같이 있는 것만 같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같은 마음이었다. 배경만 달라졌을 뿐 상황은 비슷한, 비슷하면서도 더 절실하고 더 힘겨운, 그럼에도 끝까지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주인공에게 매달리면서.

우주는 넓고 우주에 우리만 있는 건 아닐 것이라는 상상은 이제 익숙하다. 그렇다면 우리와 비슷한 누군가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물음을 오로지 과학적 상상력으로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나는 대부분의 과학적 장치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고 아주 깊이 설득되었다. 이게 더 놀랍다. 내가 믿고 있다는 게. 저 먼 별들 어느 곳에 우리와 조금 닯고 많이 다른 누군가가 우리처럼 생을 이어가고 있을 것 같다고.

이름을 짓는 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일차적인 방법이 이름 짓기인 듯하다. 너를 무엇이라고 부를까? 시인이 의미 있는 노래를 했던 데에는 깊은 성찰이 있었던 것, 나는 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 일에도 아주아주 멀었다. 멀어도 괜찮다, 더 많이 읽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니.

로키를 보고 싶다. 영화 속 로키는 어떤 모습일까? 로키로 인해 엔지니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도 맥가이버가 멋있기는 했지. (y에서 옮김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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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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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게 참 묘한 감정이다. 내 처지에 만족하여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남의 행복에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도대체 행복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매달리는 듯 보일까. 갖고 싶다고 쉽게 가질 수 없는 듯하다가 애써 가지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행복한 감정의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기도 있고. 아무튼 좋은 것임에는 분명한데.

책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것이다. 칼 라르손이라고 하는 스웨덴 화가를 아주아주 좋아해서 그의 삶과 이력과 근거지와 작품들을 몽땅 찾아다니고 자료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는 것. 대상자인 칼 라르손이라는 화가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많겠지만 한 사람을(혹은 어떤 대상 하나를) 좋아하면 어떤 경지까지 활동할 수 있게 되는지도 이 작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만하면 일과 놀이와 즐거움을 한데 모아 누릴 수 있다고나 할까. 취재 과정의 수고로움이 단지 수고스럽기만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이런 대상을 많이 가질수록 각자의 삶이 좀더 풍요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칼 라르손, 몰랐던 사람이고 알게 되어 좋다. 이케아의 정신적 모토라고 하는데 위대한 화가는 세계로 향하는 국민 기업의 모델이 될 수도 있음을 실제 사례로 본다.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예술과 인문학을 잘 알고 활용하면 얼마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 내 가족과 함께 하는 데에 있다. 아는데, 알아도, 쉽지 않다. (y에서 옮김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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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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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을 자신으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나를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얼마나 믿고 있나. 내가 나를 이렇게 이 강도로 이만큼의 질로 여기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나면, 내가 다른 사람을 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겨줄 것인지 견주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못믿겠다'이다. 그런데 이게 또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소설 읽는 시간이 길었다. 돌아보니 하루에 한 편 이상 읽기 힘들었다. 참고 두 편 읽은 날은 체한 느낌마저 받았다. 실제로 아프기도 했고. 그게 소설 때문이었는지, 아픈데도 이 책 속 소설을 읽어서 겹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쉽지 않다. 읽고 싶은 글이고 읽어야 할 글이고 읽으면서 좋다 싶은데도 읽는 내내 몸과 마음이 아프다니,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지. 


모두 8편의 글. 책 제목처럼 등장하는 주인공 어느 한 사람 신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제까지 신중한 태도는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신중하기만 한 건 신중하지 못한 것만큼이나 문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신중하면서 치밀해야 한다고 했으니, 그러고 싶기는 하지만, 사람이 또 불완전하기 그지없어서 신중하면서 치밀하기는 어지간해서는 이를 수 없는 경지로만 보인다. 차라리 어중간하게 신중하고 어중간하게 치밀해서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는 게 더 나아 보일 만큼. 


주인공들의 딱한 처지에 이입되어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소한 억울함이나 원망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탓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로 처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작가가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는 인물들의 속사정을 보면 알아챌 수 있었듯이 나도 내 본성을 알고 있고 한편으로 또 모르는 척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그랬을 것 같았다. 내가 누군가로 인해 아프고 힘들었듯이 나로 인해 누군가도 그러했을 텐데, 어쩌면 지금도 그러할 텐데, 마치 나는 세상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듯 자만하고 있으니. 얼마나 더 내 안을 돌아보아야 하는 걸까. 끝이 없는 길이지 싶다.  


띄엄띄엄 그러나 끊임없이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찾아읽겠다. 다만 사서 읽지 않고 빌려 읽는 이유를 말하지 못하겠다. 나 자신을 너무 가까이 만나 알게 되는 두려움 탓이라고 하면 핑계가 될지. 옆에 둘 수가 없어서. (y에서 옮김20211101)

어떻게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같은 걸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가 어떻게 하든 받아들이기로 정해놓은 것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경로를 통해, 저렇게 하면 저런 경로를 통해 같은 걸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리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더라도,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리하게 되고, 결국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 어떤 태도를 택하게 된다. - P85

욕심내고 있다는 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순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 P107

진실은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 사람은 잘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진심을 믿기가 믿지 않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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