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왜 그걸 내가 몰랐을까. 작가가 돌아가신 후에야, 이 책을 읽었다는 게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이라고 생각되는 내 마음, 그게 딱 전부다.
돌과 나무와 강물을 매개로 사람과 그 사람과의 기억을 잔잔하고 깊게 풀어놓은 책. 작가가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낯익은 이름만 보는 것도 벅찬, 거기에다 그들과의 추억과 관계가 부럽다 못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그저 이렇게라도 읽을 수 있어 그지없이 고마운 그들의 에피소드들.
내용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청준의 작품 어딘가에서 다 보았던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또 즐거웠다. 아마도 내가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 조건 하나로 그와 관계되는 모든 일상사가 반갑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내게 이런 작가가 여러 분 있다는 게 참 좋다.)
이청준의 소설들도 오로지 소설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수많은 친구와 친지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 한 대목 듣는다고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것만큼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이라고 봐야겠는데, 아무튼 소설가라는 사람의 삶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고맙게도 알 수 있는 해주었다.(나에게는 소설가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고.)
아무려나, 이 작가의 새로운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 그것만이 슬플 따름이다. 그리울 때는 예전 작품을 다시 찾아 읽을 수밖에. 내 기억력이 신통하지 못한 것이 이럴 때는 고마울 따름이고. (y에서 옮김2010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