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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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본연의 나이고 싶고, 그런데 가끔은 내가 아니고 싶고. 나는 누구일까? 내가 보는 나, 내가 원하는 나, 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나, 나를 원망하는 나......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돌아돌아서 이 물음에 닿는다.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물어볼 엄두를 못내고.


흔하지 않은 상상, 흔할 수 없는 이야기, 신기하고도 매력적인 상상의 이야기를 읽는다. 자꾸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면, 자꾸 자신 밖의 세상을 꿈꾸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일까? 현실에는 없는, 그럼에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방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인물과 배경과 사건과 주제들. 낯설어서 풋풋하고 익숙해서 안심이 되는 장치들이다.  


얼마 전 울산의 반구대와 태화강국가정원과 간절곶에 가 보았다. '소금물 주파수'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의 배경으로 살아나다니. 무엇보다 울산 근처의 바다 어딘가에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를 몽이를 그려 보는 재미까지 느꼈다. 있을 거야, 분명히. 


책을 읽지 않으면 도저히 접해 볼 수 없을 세상을 구현해 주는 이 작가의 솜씨에 고마움을 느낀다. 고달픈 현실이 SF 소설의 소재로 쓰이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하는 주제의 근거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입맛이, 글맛이 쓰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천천히 나아져 가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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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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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본 것, 내가 생각한 것들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장 자크 상뻬의 책은 글 뿐만 아니라 그림조차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낸다. 내게도 이런 능력이 주어졌더라면 하는 강한 부러움과 더불어.

장 자크 상뻬를 통해 뉴욕을 들여다 보고 나니 평소 우리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멋있고 발전적인 모습의 뉴욕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사한 그림으로 익살스럽게 나타내고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뉴욕의 고독을 느낄 수 밖에 없었으니까. 끝없이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려고 하고 그 연락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뉴욕 사람들. 아마도 홀로 지내야 한다는 것을 본질적인 두려움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금요일 오후 5시(56-57p)의 모습과 일요일 오전(60-61)의 모습의 대조적인 그림이 뉴욕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나까지 쓸쓸하게 만들었다. 무언가에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이 빈틈없이 밀려가는 그림과 아무도 없는 텅빈 거리에 신호등만 깜박거리는 그림. 지구상에 있는 평범한 산업화 도시의 하나로서, 달리 어디랄 것도 없이 현대화라는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일까. 비단 뉴욕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건조한 도시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책을 보고 나니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뉴욕 사람들이 왜 그렇게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려고 모든 준비를 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y에서 옮김20010124)

르네 알렉시스, 아닌게 아니라 여기 뉴욕에선 모든 것이 자라고 번성해야만 한다네. 발전해야 한다는 말일세. 가장 보잘것 없는 것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여기선 누구든지 뭔가 (대단하고great), (창조적인creative) 일을 하려고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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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572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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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퍽 인상적이다. 이 구절만큼 마음이 멎는 다른 구절을 얻지 못했다고 하면 이건 다행인 것일까 섭섭한 것일까. 봄날의 괜히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으려 들여다본 시들, 이만해도 되었다는 생각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을 돕는 기운을 얻는 데에 시를 읽는 일만한 게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종종, 할 수 있다면 자주 시집을 열고 그의 시를 읊어 보려고 애쓰는 편인데, 이렇게 마음 설레는 순간을 자주 맞이했으면 좋겠다. 시집을 덮고도 웅얼거리는 시의 구절이 남아 있기를, 외운 시 구절에 내가 보내는 시간이 겹쳐 흐르기를, 시를 찾는 내 의욕이 줄어들지 않기를. 


낯선 시어를 자주 본 느낌이다. 내가 잘 모르는 낱말을 보게 되면, 우리말이 아닌 경우 더더욱, 새로 뜻을 찾아 보아야 하기도 하고, 과정도 내 속 사정도 답답해서 그만 포기하곤 한다. 내가 앞으로 더 알아야 할 낱말들은 얼마나 많을까?


2014년 세월호에 희생된 이들을 그리며 쓴 시들은 그저 먹먹하기만 했다. 잊지 않게 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y에서 옮김20230410)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 P10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 P16

간지러워 나무들은 재채기했네 - P41

내 사랑
한 줄로 된 현악기
울리거나 멈추거나 - P50

너는 얼마나 멀리 날아갈까
네 몫의 어리석음으로부터 - P58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 P75

모든 이가 어느 다락방에 쌓인 낡은 몰락의 일종이었음이 문득 자연스러워지는 오후 한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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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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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작가다. 친구의 권유로 읽어 본 책인데, 이 친구의 권유는 늘 믿을만 하다는 결과를 준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읽었다. 지루하지 않게 좋은 시간을 얻은 셈이다.)


7편의 소설. 각각의 사건보다 표현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저절로 집중이 되는 표현의  힘. 한 문장 한 문장에 머물렀다 떠나면서 소설을 벗어나 내 지난 날을 돌아보았다. 좀 아릿하다가 아프다가 쓸쓸해졌다. 사이사이 화도 나고 속터지는 듯한 순간들도 있었는데 그 감정들까지 서서히 품어 안아들이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이미 지나온 이십대를 다시 거쳤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래서 엷어져도 여전히 아프구나.  


소설이 무엇이기에, 고작 지어낸 글일 뿐인데, 소설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굳이 불러들이는 걸까.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일상과 비슷한 사건과 비슷한 상처와 비슷한 분노와 비슷한 암담함까지. 이 소설의 이 주인공은 이렇게 했는데, 나는 그 시절 그렇게 했었지, 나는 아마도 이렇게 하게 되겠지, 이런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다 보면, 이렇게 해 주는 소설을 만나게 되면, 잘 읽었구나 싶어지는 거다.   


도덕적 연대감, 세월호와 연관된 온갖 책임의식은 이 시대를 오래 붙잡고 있을 화두로 남을 것이다. 우리 삶은 여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이어져 있을 것이며, 두고두고 아프게 살아남아 각성시킬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글로,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로, 이야기로, 영화로 드라마로, 또 교육으로.


사는 건 쉽고 선명할 수가 없는 일인가 보다. (y에서 옮김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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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3 (완전판) - 나일 강의 죽음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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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살인 사건이라고 이 소설로 만든 영화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1년에 개봉한 것으로 나온다.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시험을 마치고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본 영화라고 기억한다. 내 기억력으로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남긴 영화다. 사건의 개요도 등장인물들의 인상도 범인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몇 번씩이나 보는 CSI 드라마 범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는 완전 다르게) 청소년 시절 너무 강한 자극을 받은 영화였던 것일까? 지금까지도 이렇게 생생한 걸 보면 청소년기 예술 체험의 중요성에 대한 어떤 시사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내년에 개봉한다고 하는데나의 옛 기억과 비교해 보고 싶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1981년 개봉작품을 지금 굳이 볼 뜻은 없다.) 


소설 배경은 이집트, 나일 강 위의 유람선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집트를 향한 환상을 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배경 묘사도, 인물 간의 관계도, 뻔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주제까지도 참 멋지게 그려 내고 있다. 범죄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가엽기는 하지만, 희생을 당하게 되기까지의 아주 작은 몫은 희생자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허황된 욕심이라든가 그릇된 생활태도라든가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잃은 사람의 경우처럼 아무 죄없이 희생당하는 것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 마음에 더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어떤 소설에서는 도덕과 교훈을 읽고는 반가움을 느끼기도 하니까.(절대 억지나 강요가 아닌, 자연스러우면서 자발적 다짐을 하도록 해 주는 장치로)


신기한 게 탐정 역할을 맡은 푸아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는 점이다. 배우도 장면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책을 읽는 동안에도 범인이 누구이며 왜 그랬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밝혀냈는지 끝까지 읽고서야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좀 미안한 기분이다. 나는 당시 이 영화를 어떻게 본 것일까? 여러 모로 신선한 작품이다.   (y에서 옮김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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