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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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가 풀어나가는 글솜씨는 익히 알고 있던 바이고, 어느 한 구절 걸리는 대목 없이 술술, 이걸 이렇게 평온하게 읽어도 되나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재미를 따라갔다. 화자인 어셴든과 이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차례로 접하면서 책을 읽기 전에 언뜻 본 소개글의 '풍자'라는 특성이 글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나 챙겨 보려고 했는데 읽는 동안에는 내내 실패했다. 내가 소설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던 탓이다. 끝날 무렵에서야 간신히 발견했다고 해야 할지.

그때도 그랬단 말인가. 그곳에서도 그랬단 말인가. 이건 도대체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지 않는가. 작가도 아니지만, 우리의 문단이라는 곳이 어떤지 아는 바도 없지만, 꼭 문단의 모습이라고 할 수만도 없을 것 같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풍경이라는 생각에 한탄보다 신기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없다고 해도 계급과 신분은 있고, 아니라고 해도 후원자의 힘이 중요하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으로 더 비난을 받는 상황이라는 것. 화자인 어셴든이 로지에 대해 그토록 강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대목에서야 비로소 '아, 풍자!' 했으니까.

자신이 속한 직업의 속사정을 낱낱이 드러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고 여겨왔다. 그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아니, 소설이라서 더더욱. 이 작가는 이 일도 참 잘 해낸다. 실제 작가가 실존 인물을 작품 속 인물의 모델로 삼았다는 게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당사자의 호소에도 능청스럽게 대응한 걸 보면 여간 대단한 사람이 아닌 듯하고. 솔직하다는 장점을 넘어 고발 수준의 용기로도 생각되는데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잘난 척 하는 남자 작가들 말고, 화자가 좋아한 로지라는 여성 인물이 퍽 와 닿는다. 남들이 다 욕을 해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 그래서 만나는 이를 행복하게 해 줌으로써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 누가 나무랄 수 있다는 말인지. 어쩌면 부러워서-자신이 이 여자의 유일한 상대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이건 남자 쪽), 자신도 이 여자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이건 여자 쪽)-부러움을 느끼는 자신이 민망해서 도리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건 아닌지. 나 역시 이런 마음이 들었던 듯하고.

소설 참 무서운 글이다.

작품의 제목인 ‘케이크와 맥주’는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에 등장한다. 올리비아의 집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흥청거리는 앤드루 경과 토비 경에게 집사 말볼리오가 소란을 멈추라고 다그치자, 토비 경이 다음과 같이 응수하는 장면에서다. “자네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케이크와 맥주가 더는 안 된단 말인가?” - [출판사 리뷰]에서 (y에서 옮김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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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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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장르가 본질상 사회적 배경을 품고 있는 것이므로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점 때문에 퍽 고달프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달리 우리의 역사를 말해 놓고 있는 것이라 거리감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운 친밀감이나 동질감은 예상 이상으로 나를 아프게 한다.


인류 역사상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으리라고 여기는데, 여자의 삶은 남자의 삶에 비해 더 고단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겉보기만으로라도 남자와 동등해진 것이 최근의 모습이고, 실제로 따져 보면 이것마저 썩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기는 한데, 지금도 사정이 이러한데, 소설 속 상황으로 들어가 보면 딱하고 안쓰럽고 속상하고 기막히기 그지없다. 그 시절에, 그 어려운 시절에, 여자라서 더 힘들고 고통받는 삶을 이어야만 했을 것이니. 소설이지만,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모조리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 경우만큼은 소설의 허구성이 내게 아무런 효과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일제강점기(국권상실기) 시대, 백정의 자손, 한국 전쟁, 그리고는 딸, 아내, 엄마로 이어지는 여인의 처지. 또 이혼한 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등. 앞으로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사정을 품고 있는 글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니 계속 읽고 또 읽어야겠지만(먼저 작가 쪽에서 쓰고 또 써 주셔야 할 것이고), 읽는 마음이 늘 고단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기에, 이 고단함마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몫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슬프고 또 서글프다. 작가가 이 소설에 등장시킨 여성 인물들의 성격과 태도를 아무리 강하고 꿋꿋하게 묘사해 놓았다고 해도. 그게 또다른 숨김 과정임을 알기에.  


그러니 밤이 밝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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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음식 - 지치고 힘든 당신을 응원하는 최고의 밥상!
곽재구 외 지음 / 책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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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음식-추억-작가의 에피소드. 이 짜임으로 기획했던 책인 모양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통해 추억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겠다. 좋아하는 음식이 같다면, 추억 속 그리운 사람이 같다면 더욱 절절해지겠지. 나도 그런 행운 하나 만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음식 이야기 책을 자꾸 읽다 보니 내 취향인 글과 거리가 좀 먼 글로 갈린다. 이 책에는 내가 기대하던 음식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메모를 해 두지 않으면 내 한심한 기억 때문에 이 책을 다시 굳이 잡게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남기는 리뷰가 된다.) 글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내가 이 책을 한번 읽었다는 것도 잊고, 나이도 더 들고, 음식이 주는 위로를 알게 되는 때에 이르면 새로운 감동을 만날 수 있게 되기도 할까. 그런 마음을 남겨 두어도 괜찮겠다. 


아프면 먹고 싶은 음식, 기쁨이 되는 음식, 용서가 되는 음식, 용기를 주는 음식.. 그런 게 있나? 늘 그래온 것 같은데 음식에 대한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삶을 향한 의욕이 남들보다는 더 강할 테니. (y에서 옮김201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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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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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했다. 앞뒤 뜬금없이, 기다리지 못해서. 10권까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는데 이 책이 내 차례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 사 모으는 것도 아니고 시리즈의 책을 한 권만 덜렁? 그것도 가운데에 있는 책을? 그만큼 궁금해서 보기는 했는데, 이제까지 읽은 내용과는 구별되는 미스터리다. 


나는 중간 쯤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를 눈치챘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시시해지지는 않았다. 이 미스터리를 결말까지 작가가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만 해도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충분했으니까. 대단하다고 할 밖에. 


같은 배경, 같은 인물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미스터리의 유형은 얼마나 될까? 작가는 얼마나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어야 상상력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읽는 나는 매번 감탄만 하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쓸데없이 궁금해진다. 작가의 머릿속 세상이나 소설 구성을 위해 세운 사건의 구조도 따위들이. 맞다, 인물도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장단점이나 행동 유형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등등. 소설가는 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일반인보다 훨씬 많이 누리면서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중세 수도원에서 살았을 수사들의 삶이 점점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귀족들 경우에 장남이 아니면 가업을 이어받기 힘들고 그렇다면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되거나 유산을 물려 받은 외동딸의 배우자가 되어야 살 수 있었다는 시절. 신부나 수사가 하나의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시도때도 없이 벌어졌을 때, 전쟁으로 다른 이의 목숨을 해치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빌어야만 했다니, 나로서는 참 납득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전쟁을 하지 말든가. 주교나 왕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인간 유형. 그래도 수사라는 직업에 대해 호감도를 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 뚜렷하게 남아 만족스럽다. 


전쟁으로 몸을 다친 나이 든 수사와 이 수사를 돌보는 젊은 수사의 사정이 구구절절했다. 그리고 저마다의 기구한 사연으로 등장하는 몇몇 수사들의 모습. 이어지고 갈등하고 해결된다. 읽는 재미가 풍성했다. 


다음 권을 빌릴 수 있을까? 다시 구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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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2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27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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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로 읽는 세 편의 우리 소설. 읽을 때마다 읽는 소설들이 모두 내 취향이어서 내 마음에 들었다고 쓴다면 좋겠지만. 처음에 실린 김채원의 작품이 한참 먹먹하게 읽혔고 두 번째 성혜령의 작품은 살짝 어긋난다 싶었으며 마지막 현호정의 작품은 건성으로 읽고 말았다.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다르게 읽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출판과 편집하는 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가려 가려 실었을 테고, 내 독서의 폭이 넓고 깊어서 다 아울러 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한 작품이라도 깊이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채원의 '빛 가운데 걷기'. 노인은 노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보고 있기에 참 애달프고 착잡하다. 사는 일에 아무 무게도 보이지 않는데 그지없이 무겁다. 어떤 생은 하도 가벼워서 짐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다. 겨울 같기만 한 삶, 봄이 와도 따뜻하지 않을 삶, 그런데도 계속되는 삶. 이 삶을 내내 지켜 보면서 그려야만 했을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까. 



인터뷰와는 아직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 (y에서 옮김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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