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의로움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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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약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각각의 글에서 완결된 느낌을 못 받았던 탓이다. 헤세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던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작품 출처에서 찾은 말, '발췌'. 그랬구나, 뽑아서 실었던 것이구나. 이해가 되었다. 옮긴이가 선택한 부분의 글이었던 것이다. 전문을 다 읽었으면 좋겠지만 이건 이것대로 또 괜찮았다. 어차피 헤세의 글에서 얻게 되는 헤세의 생각이니.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향수, 인간, 예술, 여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대가는 대가이다. 어느 한 영역 소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신 안에 이 다섯 가지가 다 고르게 자리잡고 있으려면, 삶의 주체자로서 이 다섯 영역을 고르게 누리려면 얼마만큼의 능력을 타고나야 하는 걸까? 이걸 기른다고 기를 수는 있는 것일까? 구경만 하고 있어도 이렇게나 벅찬 마음인데.


각 계절의 특징을 헤세가 자신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인식하는 즐거움을 서술한 1부가 특히 좋았다. 바야흐로 봄이 되려고 해서 내가 더 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가오는 봄의 순간순간을 내 감각으로 어루만지면서 맞이했으면 한다. 2부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던가를 떠올려보는 일로 작가와 발걸음을 같이 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과 그 시절의 꿈과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과 때로 아팠던 상처들을 되짚어 보면서. 그리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지금의 내 처지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정신의 어떤 영역 하나만큼은는 날카롭게 빛나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y에서 옮김20230224)

내가 무엇을 역겹게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치가 덜하거나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것, 내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것, 나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것, 나에게 아무런 호소를 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 자신은 더 초라해진다. - P28

중요한 것은 그대가 생각한 무엇을 이미 다른 사람이 생각했는가가 아니다. 그 생각이 그대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체험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 P233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그 충동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결코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나쁜 본능이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최상의 것에 몰두할 수 있다. 즉 우리들이 몰두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정신을 더 신뢰하기 위함이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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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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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있는데, 소설일 뿐인데, 읽는 내 마음이 왜 이리 저리나. 왜 이리 민망하고 애틋하고 서글프고 속절없나. 잘 살아온 것도 잘못 살아온 것도 시절시절 오갔겠지만, 살아 있다는 게 고맙다가도 서럽고 불만이다가도 행복이 이런 게지 싶어 눈흘김을 멈추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이 소설을 평온한 상황에서(마음이야 널을 뛰고 있다 해도) 읽고 있는 처지, 이것만으로도 난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이 작가의 글, 조건 없이 읽는다. 읽고 좋아한다. 좋아하면서 나를 돌아본다. 내 삶, 내 가치관, 내 가족과 주변인, 내 처지, 내 미래까지. 이렇게 나를 자꾸 생각하다 보면 나를 있게 해 주는 배경에 대해서도 저절로 따지게 된다. 괜찮은가, 괜찮아야 하는데, 괜찮지 않은 저 무엇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작가는 어떻게 다루고 있나, 우리는 어떤 세상을 바라고 있나......  


소설은 7편. 권희철의 해설이 소설 한 편 정도의 분량으로 실려 있다. 해설로 도움을 얻으실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시기를. 나는 대충 보고 넘겼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 자신과 나눈 대화가 혹 무안해질까 하여. 사는 일에 답은 없고 소설집 제목처럼 각각의 물음과 각각의 계절과 각각의 선택과 각각의 의지만 있을 뿐이니. 어쩌면 포기나 체념까지도, 그조차도 각각의 표정으로.  


60살에 가까워지니 세상을 바라보는 내 방식이 점점 뚜렷해진다. 여자 아이에서 젊은 여자로, 다시 아내와 엄마를 거쳐 할머니에 이르는 과정이 필름 영화처럼 돌아간다. 시도때도 없이. 기억하거나 잊어버렸거나 모든 것이 선택이었을 것이다. 순간순간을 살아남기 위하여. 기특했던가? 글쎄, 함부로 자신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는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가도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것.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고마운 소설집이었다. 마구마구 권하고 싶다. 지금 뭔지 모를 서러움에 울먹이고 있을 사람들에게. (y에서 옮김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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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가로질러 사각사각 (시절)
김종완 외 지음 / 시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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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의 외형. 크기가 작은 편이다. 표지는 여름의 푸른 이미지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멀어서 떨떠름하다.


기획은 돋보인다. 4명의 소설가가 여름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각각 소설 한 편과 에세이 한 편을 써서 실었다. 비슷한 기획을 했던 책을 봤던 것 같은데 굳이 찾아볼 생각은 없다. 이 기획으로 만든 봄과 가을에 대한 책은 이미 나와 있고(모두 2024년 발행)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참여한 작가가 책마다 같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나는 이종산의 작품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같이 읽은 4편의 글. 딱히 마음을 끌었던 글은 없다. 여름이 지나가 버려서 그런가? 지난 뜨거운 여름에 읽었다면 좀 빠져들었을까? 계절이, 계절에 휘둘리는 내가 참 변덕스럽구나 싶은 생각뿐. 그러고 보니 여름을 주제로 잡은 책 몇 권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년 여름으로 미루는 게 낫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참에는 가을을, 또 겨울을 배경으로 삼은 책을 읽는 게 좋겠다. 이 시리즈의 겨울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그 이유도 궁금하다. 


송재은의 '각자의 정원에서'가 내 마음을 슬쩍 일렁이게 했다. 남들에게는 딱하게 보여도 각자 제대로 제 힘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것, 내가 멋모르고 했을 착각과 참견이 아프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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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총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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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추리소설에 담아 놓은 여러 가지 흥미 요소는 독자별 취향에 따라 다르게 와 닿을 것이다. 나는 인물들의 심리나 행동의 내적 동기에 유독 관심을 둔다.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인물은, 탐정이든 경찰이든 희생자든 범인이든 관계없다. 모두 다에게 해당되니까. 그(그녀)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하는 점. 


2만 명이 들어찬 로데오 경기장에서 한 사람이 총을 맞고 살해된다. 누가 죽였는지, 범죄에 사용된 총은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내용이 글의 대부분이다. 신기하게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다 읽고 나면 지루할 만한 묘사였다 싶은데 읽는 동안에는 무비 카메라를 움직이는 사람이라도 된 마냥 긴장감이 든다. 어느 한 줄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혹 이것을 놓치기라도 하면 사건 해결에 필요한 중요 단서를 놓치고 말 것만 같기도 하고. 그랬음에도 결국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았지만. 


죽는다는 것,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과 같은 답을 요구하는 표현이라는 바를 모르지 않지만 이 소설에서 또 확인한다.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단 말인가. 이건 합당한가. 이래도 되는 건가. 내가 된다고 혹은 안 된다고 해서 세상 이치가 내 방식대로 돌아갈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의 기준을 위해서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기는 한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건이었다. 


소설 제목이 미국 총이다. 총을 찾는 이야기. 우리로서는 아주 낯선 소재. 로데오 경기장도 내가 머릿속그림으로 그려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엘러리의 활약은 흥미로웠다. 범인을 내 손으로 잡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읽었으므로 궁리 자체를 하지 않았기도 하고 알려 준 바를 바탕으로 추리할 능력이 없기도 하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읽고 있어도 이것대로 또 재미있었으니 되었다.  (y에서 옮김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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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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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소설을 몇 권 보았다. 좋은 쪽으로 인상적이었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니어서 멀리 했다. 그랬는데 얼마 전 유시민 작가의 북콘서트에 요조와 함께 나오는 프로그램에 다녀온 후 이 책을 빌렸다. 소설 말고 산문은 어떤가 새삼스럽게 궁금했다.


소설가의 글이라면 산문보다 소설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게 좋을 텐데, 난 반대로 와 닿는 소설가몇몇을 좋아한다. 이 소설가의 경우도 소설보다 산문에서 더 호감을 얻는다. 그의 소설 어느 대목에서 내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여기는지도 이 책을 보고 정확하게 알게 된다. 사회와 세상과 사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다루는 소설의 시선을 내가 거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작가는 이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고), 산문에서는 이런 점을 오히려 통쾌하게 여기는데 나의 모순이다.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책은, '이게 뭐라고'라고 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아주 대단한 가치를 품고 있는 대상이다. 작가의 말대로 한다면 나는 읽고 쓰는 쪽이라서 이러할 것이다. 무인도에 갈 때도, 우주에 갈 때도 나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보다 책과 공책을 택할 사람이라. 그래서 읽고 쓰는 인간으로서 작가가 느끼는 온갖 감정과 현실에 공감했다. 내가 비록 작가는 아니지만 독자로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내용이라고 생각했으니. 


소설가로서의 삶도 흥미로웠고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일어난 각종 에피소드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쪽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형편이니 그렇구나, 끄덕이면서 새롭게 여겼다. 사람 사는 모습이 죄 비슷하다 해도 또 다들 다르게 살고 있기도 하는 셈이다.  


얼마 전에 이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구해 놓았다. 전에 안 보이던 세상과 전에 못 봤던 매력을 모조리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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