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 ㅣ 창비시선 179
천양희 지음 / 창비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내 자신이 무척 내 마음에 들 때가 있다. 또 어떨 때는 내 자신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도 있다. 나는 두 경우가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꼭 들거나, 마음에 전혀 들지 않거나. 그럴 때 내가 찾게 되는 시집이 천양희의 이 시집이다.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에 대해 그전보다 더 잘 알 수 있게 될까. 혹은 자신에 대해 진정 알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고 느끼면서 사는 때가 참 많다. 그러하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듣는 내 평이 오히려 더 맞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왜 나인지,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거나 속상하거나 설레일 때 천양희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난 시인을 몹시 부러워한다.

시를 읽는 일은 시인을 읽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시를 통해 시인을 더듬어 보는 일은 나 아닌 한 사람의 삶과 정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부러움이란 곧 시인의 삶과 정신에 대한 부러움이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자신의 모자란 부분과 남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성찰할 수 있는지, 무엇보다 자신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지.

한 편 한 편 베껴 쓰기도 한다. 한 줄 한 줄 외워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늘 부족하다. 한 순간 한 순간 그를 따라 살 수는 없는 까닭이리라. 그래서 나는 오늘처럼 내가 내 마음에 드는 날, '오래된 골목'으로 간다. (y에서 옮김20010208)

[인상깊은구절]
세상은 나 없이도 가득 차 있고 흐르는 물은 몇 개 웅덩이를 키우면서 내려갔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언제 말하며 피겠습니까 다른 사람 나만큼 사랑할 때 나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 자리는 그리워해보는 것이지 가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옛 우물 옛 거울 없어진...... 물음표의 모든 것은 바꾸고 싶지 않아도 바뀌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풀의 탄생 ㅣ 문학동네 시인선 232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풀은 시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많은 풀, 갖가지 풀, 흔한 풀, 귀찮은 풀...... 그리고 귀한 풀. 내게는 썩 귀찮은 풀이지만.  


    머리를 굴리거나 생각을 헤집으며 읽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순순히 또 선선히 다가와 주었다. 와서 나를 사로잡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사정이고 읽는 마음이 편안하였다. 마치 풀들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며 색을 잃어도 자연스러워지는 것처럼.


    실린 작품들 중 다음 한 편을 옮겨 보았다. 그러할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 그런데 좀 불안하기는 하다.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여, AI가 지금처럼 나댄다면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어서. 


    ----------------------------------------------------------------------------

    -그러할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

    반딧불이의 불빛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꺼진다면

    싱싱한 수풀은 곧 시들시들해지고

    이슬은 쌀쌀맞은 모래알이 되어 내리리

    달맞이꽃은 밤의 사랑을 기다리지 않으리

    우리는 폐광이 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서로를 외면하리

    여름밤의 하늘은 찢어진 우산이 되리

    어둠은 결코 깨어나지 못하리

    ----------------------------------------------------------------------------------------------


    멀리 있는 것들도 그립겠지만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것들이 있다. 풀처럼 바람처럼 흙처럼 물처럼. 무심히 놓쳐 보내지 않으려는 내 관심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살기 힘든데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내 술에 취한 채로 읽은 느낌이다. 이렇게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진짜 술의 힘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어떤 술이라도 마시련만. 현실에서 맛보았던 취기는 늘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 있건만, 그것도 아주 오래 되어 나빴다는 찌꺼기만 남아 있는 셈이건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좋은 환상만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권여선의 글을 읽었을 때나 만화 와카코와 술을 봤을 때와 같이. 


    얼마 전 y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이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때의 인상이 깊게 남아 빌려 본 책인데 만족스럽게도 호감이 이어진다. 이 작품은 2018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하니 작가에게는 데뷔 작품인 모양이다. 많이 신선하면서도 많이 따끔따끔했다. 이렇게 우리의 젊은 작가 한 명을 익히고 내 독서 목록을 늘려 본다.


    젊은 소설가들이 그려 내는 젊은 세상, 그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지 늘 그들이 살고 있는 때와 장소의 모습을 소설에 담게 되는 것일 테다. 이 소설에는 2010년대의 우리나라 상황,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힘든데도 안간힘을 다해 버텨 내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들, 비슷한 주제의 다른 글들에서는 주인공도 주인공이려니와 읽는 내가 더 힘들어서 좀처럼 펼치고 싶지 않았거늘, 이 책의 경우 읽는 마음은 여전히 힘들었어도 한편으로 재미있었다. 그래, 이래야지, 이렇게 전개되어야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지. 눈 부릅뜨고서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아무래도 상상 속 술맛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술이 없었다면,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못 읽었을 것만 같다. 나오는 술들에 대한 지식 하나도 없이,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 정도밖에 모르는 내가, 와인과 양주와 일본술은 1도 모르는 내가 이 책에 실린 술맛 도는 이야기를 이토록 재미있게 읽은 것은 순전히 작가의 솜씨 덕분일 것이다. 실제의 작가는 소설 속 인물만큼이나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오로지 취재의 힘으로 엮은 것일까 이런 것까지 괜히 궁금해지면서.


    이제 더 이상 젊은 축이 아닌 나는, 글을 읽다가 가끔 새삼스러워한다. 아, 내가 이 나이가 아니지, 이미 지나온 시절이지, 그래, 어느 누구도 힘들지 않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는 없다 하는 세상이지. 이런 힘든 느낌만큼은 세상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던가. 아무리 해도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이라도 찾아 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쓰고 있을 모든 소설가들, 독자인 나는 나이를 잊은 채로 번번이 도움을 받고 위로를 얻는다. 이 책이 2018년을 다시 살게 해 준 것도 그러했다.  


    술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친구에게 권해 주어야겠다. (y에서 옮김202103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가 재미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하고 명확하기만 하면 되지, 귀찮게 추리하는 과정이 왜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문학 속에서 추리하는 일은 분명히 매력적인 일이다(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그건 어쩌면 자신이 자신을 시험하면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는 방편이 되어 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작가와의 싸움 혹은 경쟁, 결국 작가의 결말에 뒤통수를 맞는다 해도 과정만으로 즐거웠던 기억은 충분히 남아 있을 테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백야행'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영화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도리어 읽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몽환화'를 봤고 그 작품이 좋았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다른 작품을 더 읽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안 읽었으면 섭섭할 뻔했다. 이로써 일본 작가 한 사람을 내 독서의 작가 목록에 추가한다.   


    '이시가미'를 향한 내 응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가 머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나만 이시가미를 응원하는 것도 아닐 테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왜 그러는 것일까. 아직도 사랑의 진심을 믿고 있기 때문일까.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사랑이 아니라면 삶도 아니라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에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의 그러한 의도에 내가 공감하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장치를 잘 꾸며서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그렇겠지. 그러니 특별히 추리소설 분야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고 영역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 매순간 이시가미처럼, 혹은 작가처럼 생각을 해야 한다면 좀 귀찮지 않을까, 그것도 습관이 되면 저절로 되는 생각이려나?   


    영화는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이 낫겠다. (y에서 옮김201408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가 재미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하고 명확하기만 하면 되지, 귀찮게 추리하는 과정이 왜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문학 속에서 추리하는 일은 분명히 매력적인 일이다(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그건 어쩌면 자신이 자신을 시험하면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는 방편이 되어 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작가와의 싸움 혹은 경쟁, 결국 작가의 결말에 뒤통수를 맞는다 해도 과정만으로 즐거웠던 기억은 충분히 남아 있을 테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백야행'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영화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도리어 읽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몽환화'를 봤고 그 작품이 좋았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다른 작품을 더 읽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안 읽었으면 섭섭할 뻔했다. 이로써 일본 작가 한 사람을 내 독서의 작가 목록에 추가한다.   


    '이시가미'를 향한 내 응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가 머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나만 이시가미를 응원하는 것도 아닐 테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왜 그러는 것일까. 아직도 사랑의 진심을 믿고 있기 때문일까.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사랑이 아니라면 삶도 아니라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에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의 그러한 의도에 내가 공감하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장치를 잘 꾸며서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그렇겠지. 그러니 특별히 추리소설 분야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고 영역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 매순간 이시가미처럼, 혹은 작가처럼 생각을 해야 한다면 좀 귀찮지 않을까, 그것도 습관이 되면 저절로 되는 생각이려나?   


    영화는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이 낫겠다. (y에서 옮김201408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