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탄생 ㅣ 문학동네 시인선 232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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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시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많은 풀, 갖가지 풀, 흔한 풀, 귀찮은 풀...... 그리고 귀한 풀. 내게는 썩 귀찮은 풀이지만.  


머리를 굴리거나 생각을 헤집으며 읽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순순히 또 선선히 다가와 주었다. 와서 나를 사로잡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사정이고 읽는 마음이 편안하였다. 마치 풀들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며 색을 잃어도 자연스러워지는 것처럼.


실린 작품들 중 다음 한 편을 옮겨 보았다. 그러할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 그런데 좀 불안하기는 하다.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여, AI가 지금처럼 나댄다면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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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할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

반딧불이의 불빛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꺼진다면

싱싱한 수풀은 곧 시들시들해지고

이슬은 쌀쌀맞은 모래알이 되어 내리리

달맞이꽃은 밤의 사랑을 기다리지 않으리

우리는 폐광이 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서로를 외면하리

여름밤의 하늘은 찢어진 우산이 되리

어둠은 결코 깨어나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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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것들도 그립겠지만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것들이 있다. 풀처럼 바람처럼 흙처럼 물처럼. 무심히 놓쳐 보내지 않으려는 내 관심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살기 힘든데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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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의 결심 - 2018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은모든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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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술에 취한 채로 읽은 느낌이다. 이렇게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진짜 술의 힘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어떤 술이라도 마시련만. 현실에서 맛보았던 취기는 늘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 있건만, 그것도 아주 오래 되어 나빴다는 찌꺼기만 남아 있는 셈이건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좋은 환상만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권여선의 글을 읽었을 때나 만화 와카코와 술을 봤을 때와 같이. 


얼마 전 y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이 작가의 책을 읽었다. 그때의 인상이 깊게 남아 빌려 본 책인데 만족스럽게도 호감이 이어진다. 이 작품은 2018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하니 작가에게는 데뷔 작품인 모양이다. 많이 신선하면서도 많이 따끔따끔했다. 이렇게 우리의 젊은 작가 한 명을 익히고 내 독서 목록을 늘려 본다.


젊은 소설가들이 그려 내는 젊은 세상, 그들은 어느 장소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지 늘 그들이 살고 있는 때와 장소의 모습을 소설에 담게 되는 것일 테다. 이 소설에는 2010년대의 우리나라 상황,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힘든데도 안간힘을 다해 버텨 내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들, 비슷한 주제의 다른 글들에서는 주인공도 주인공이려니와 읽는 내가 더 힘들어서 좀처럼 펼치고 싶지 않았거늘, 이 책의 경우 읽는 마음은 여전히 힘들었어도 한편으로 재미있었다. 그래, 이래야지, 이렇게 전개되어야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지. 눈 부릅뜨고서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아무래도 상상 속 술맛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술이 없었다면,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못 읽었을 것만 같다. 나오는 술들에 대한 지식 하나도 없이,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 정도밖에 모르는 내가, 와인과 양주와 일본술은 1도 모르는 내가 이 책에 실린 술맛 도는 이야기를 이토록 재미있게 읽은 것은 순전히 작가의 솜씨 덕분일 것이다. 실제의 작가는 소설 속 인물만큼이나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오로지 취재의 힘으로 엮은 것일까 이런 것까지 괜히 궁금해지면서.


이제 더 이상 젊은 축이 아닌 나는, 글을 읽다가 가끔 새삼스러워한다. 아, 내가 이 나이가 아니지, 이미 지나온 시절이지, 그래, 어느 누구도 힘들지 않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는 없다 하는 세상이지. 이런 힘든 느낌만큼은 세상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던가. 아무리 해도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이라도 찾아 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쓰고 있을 모든 소설가들, 독자인 나는 나이를 잊은 채로 번번이 도움을 받고 위로를 얻는다. 이 책이 2018년을 다시 살게 해 준 것도 그러했다.  


술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친구에게 권해 주어야겠다. (y에서 옮김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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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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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리가 재미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하고 명확하기만 하면 되지, 귀찮게 추리하는 과정이 왜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문학 속에서 추리하는 일은 분명히 매력적인 일이다(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그건 어쩌면 자신이 자신을 시험하면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는 방편이 되어 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작가와의 싸움 혹은 경쟁, 결국 작가의 결말에 뒤통수를 맞는다 해도 과정만으로 즐거웠던 기억은 충분히 남아 있을 테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백야행'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영화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도리어 읽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몽환화'를 봤고 그 작품이 좋았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다른 작품을 더 읽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안 읽었으면 섭섭할 뻔했다. 이로써 일본 작가 한 사람을 내 독서의 작가 목록에 추가한다.   


'이시가미'를 향한 내 응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가 머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나만 이시가미를 응원하는 것도 아닐 테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왜 그러는 것일까. 아직도 사랑의 진심을 믿고 있기 때문일까.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사랑이 아니라면 삶도 아니라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에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의 그러한 의도에 내가 공감하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장치를 잘 꾸며서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그렇겠지. 그러니 특별히 추리소설 분야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고 영역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 매순간 이시가미처럼, 혹은 작가처럼 생각을 해야 한다면 좀 귀찮지 않을까, 그것도 습관이 되면 저절로 되는 생각이려나?   


영화는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이 낫겠다. (y에서 옮김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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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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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가 재미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하고 명확하기만 하면 되지, 귀찮게 추리하는 과정이 왜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문학 속에서 추리하는 일은 분명히 매력적인 일이다(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그건 어쩌면 자신이 자신을 시험하면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맛보게 해 주는 방편이 되어 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작가와의 싸움 혹은 경쟁, 결국 작가의 결말에 뒤통수를 맞는다 해도 과정만으로 즐거웠던 기억은 충분히 남아 있을 테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백야행'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영화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도리어 읽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몽환화'를 봤고 그 작품이 좋았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다른 작품을 더 읽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안 읽었으면 섭섭할 뻔했다. 이로써 일본 작가 한 사람을 내 독서의 작가 목록에 추가한다.   


'이시가미'를 향한 내 응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가 머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나만 이시가미를 응원하는 것도 아닐 테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왜 그러는 것일까. 아직도 사랑의 진심을 믿고 있기 때문일까. 사랑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사랑이 아니라면 삶도 아니라고?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겨지는 인생에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의 그러한 의도에 내가 공감하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장치를 잘 꾸며서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그렇겠지. 그러니 특별히 추리소설 분야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고 영역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 매순간 이시가미처럼, 혹은 작가처럼 생각을 해야 한다면 좀 귀찮지 않을까, 그것도 습관이 되면 저절로 되는 생각이려나?   


영화는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이 낫겠다. (y에서 옮김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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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하이쿠 ㅣ 하루하루
마쓰오 바쇼 외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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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는 5,7,5의 열일곱 음으로 이루어진 일본 고유의 정형시다.  일본말을 모르니 일본말의 구조도 몰라 이해를 못하는데 우리말 음절로 번역을 맞춰 놓은 것을 읽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형식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 하나의 감각이 포함되어야 하고 자연계나 인간계의 현상을 담아 읊은 시라니. 단 17자로도 세상 한 면은 비춰 보일 수 있다는 것이겠다. 일본어가 아닌 우리 글자로 해 볼 수도 있겠지만.

계절이 계절이라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는 시들에 집중했다. 지금 딱 와 닿는 다음의 한 편. 풀을 뽑아야 하는데 뽑을까 말까 변덕을 부리는 나를 안심시키는 내용이다. 찬바람이 더 불면 지난 여름 내내 왕성했던 풀들이 절로 말라 버릴 것을 알아서 굳이 뽑을까 어쩔까 하고 있는 중이라 보고 슬며시 웃는다. 하이쿠라는 시가 이렇게 일상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다.  

 
즐겨 읽고 있는 일본 만화에서도 하이쿠의 맛을 보고 있다. 술 한 잔과 더불어 읊는 하이쿠 한 수. 우리에게도 음보를 맞춰야 하는 정형시가 있다. 시조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데 3장의 형식이라 하이쿠에 비하면 좀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까이 두고 멍 때릴 때 펼쳐 보면 또다른 멍때림의 차원으로 나를 안내해 줄 듯하다. 사계절 중 한 계절의 맛을 느끼는 게 새삼 좋아진다. (y에서 옮김20241003)

<이번 여름에 woojukaki님이 보내 주신 선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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