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3
유강희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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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읽은 시집이 아니다. 쓰여 있는 시어들 중 많은 것들에 걸려 비틀거렸다. 날것의 말, 험한 말, 센 말, 가시로 다가오는 낱말들, 문장들. 나는 아무래도 여리고 약하고 동글동글한 시어들을 좋아하는 데에 멈춰 있는 것 같다. 나아가지도 깊어지지도 못한다. 어쩔 수 없다.  

희망을 별로 못 봤다. 시집의 제목들이 대체로 역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기대하다가 그러면 그렇지, 확인하게 된다. 세상에 어떤 고백이 희망을 전할 것인가, 고백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고민과 주저와 두려움이 담겨 있는 것을. 그럼에도 해야 해서, 마지못해, 억지로라도, 끝내는 살아야 해서 하는 말이 고백인 것을. 

내가 즐겨 읽는 취향의 구절을 몇몇 얻었다. 덜 힘들었다. (y에서 옮김20241022)


<지난해 겨울 평산책방에서 구한 시집>

까치 혼롓날을 알려줄 꿀벌은

언제쯤 바람의 페달을 밟고 날아오나 - P13

도토리 귀를 슬쩍 잡아당기면

숲의 가장 안쪽 물결이 인다 - P19

그늘보다 그늘 아래 물보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줘 - P37

어떤 저녁은 겸재의 그림처럼 한 산이 한 산을 껴안고 간다 - P66

라일락, 구름의 주소가 많은 스무 살

저 나무는 어디를 건너왔나

땀방울이 몽글몽글 피어났네

향기가 수치가 되는 날들 지나왔네

지치지도 않은 절망,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햇볕의 상처를 보여주는

모서리 딛고 네가 걸어오네

내 앞에서 한번 웃어주지 않겠니?

내가 열 수 없었던 눈물의 섬들

봄비가 대지의 틈을 꿰매듯

라일락, 너무 많은 모음과 자음

나는 어떻게 저 위를 지나가나 - P102

아버지의 단단한 눅은 마음결이

밤의 흰 속살을 밀고 가는

작은 칼의 굳은 입매를,

그 빛나는 밤의 종교를

나는 또 얼마나 닮고 싶은

것일까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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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안에 담은 것들 - 걷다 떠오르다 새기다
이원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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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새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뜻을 찾아본다.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로 나온다. 그렇구나, 소풍(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과는 아주 조금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두 낱말 다 한자말이고 순우리말로는 적당한 낱말을 찾지 못했다. 이것도 우리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산책이나 소풍을 딱히 하지 않았던 듯한, 그래서 필요가 없었던 듯한.(굳이 더 자세히 알아볼 사항은 아니고) 


산책, 좋아한다.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이래저래 산책이라는 것을 할 때마다 생각했던 건데, 산책을 하고 있는 내가, 내 처지가 퍽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지곤 했다. 사느라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건강이 나빠서, 이것마저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하는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막막하고 먹먹하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 산책만큼은 오래오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걸 남은 생의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산책을 할 수 있어야 사소한 다른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책을 비롯하여 이전에 읽은 시인들의 산문집에서 비슷하게 느낀 공통점이 있다. 시와 산문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듯한 문장들.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산문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를 느끼는 것이 이게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나뉘어진다는 점이다. 좋을 때는 시 구절로 이어지는 우아한 산문을 읽는 기분이 들어서 잔잔한 흔들림과 설렘을 오래 누리게 된다. 그게 아닐 때는? 실망만이 남는다. 놀림을 받은 듯한 기분마저 들어서. 


작가는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다. 산책한 곳도 대부분 서울이다. 평소 서울을 외국처럼 여기고 있던 터라 익숙한 지명이라도 한 겹만 들어가면 내게는 낯선 곳이 된다. 홍대에서도 골목길에서도 시장에서도 작가의 산책은 구체적이지 않았고 좀 몽롱했다. 이 부분은 읽는 이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요즘의 나는 골목골목을 남의 글따라 총총 걸어보고 싶은데(몸은 게으르니 마음만으로), 작가에 기대어 그걸 예상했는데, 글은 산책의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다른 시절 다른 상황에서 읽었다면 이 작가의 시집으로까지 이어졌을 산책길이 되었으련만. 


몇 장면의 일러스트레이션, 상당히 인상에 남는다. (y에서 옮김202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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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푸른 돌
은모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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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난감한 리뷰. 시작할 때는 촘촘하게 읽었는데 어느 새 설렁설렁 넘기고 말았다는. 화자가 바뀌는 형식도 각 화자의 인물됨도 딱히 내 주의를 끌지 못했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작품인 것으로 남긴다. 작가가 쓴 '애주가의 결심'에 깊은 호감을 느껴 이 책에 이르렀는데 여기는 아닌 듯하다.


마음에 드는 글을 마음에 든다고 쓸 때는 할 말이 생기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적으려고 하니 난감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안 써 두자니 내 빈약한 기억력이 다시 이 책을 잡게 할 것 같고(이런 적이 하도 많아서). 순전히 내 독서의 편의성을 위해 메모처럼 남긴다.


제일 큰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나를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루미도 현도 이들의 부모도. 이들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가져온 심청전과 가믄장애기 설화도. 힘든 처지의 이야기라고 다 읽기 힘든 것은 아닌데 읽기 힘들었다, 마음이. 내가 왜 지금 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힘들게 읽고 있어야 하나, 딱 그런 기분. 이해도 동정도 수락도 공감도 하지 못하여. 책이 문제가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는 상황인 것으로 결론짓고 싶다. 


그래도 계속 읽을 일이다. 우리의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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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수밭 ㅣ 창비시선 122
천양희 지음 / 창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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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을 이미지로 찾아 본다. 많이 본 듯한 풍경이지만 아마 실제로 내가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봤더라도 그게 수수밭인지 몰랐을 테니, 못 본 것이나 다름이 없고. 마음에 수수밭이 있다면, 혹은 마음에 수수밭을 가꾸고 있다면, 그 마음은 어떠할까. 수수밭을 모르니 마음까지는 더 모르겠고. 그럼에도 시집 제목과 같은 첫시는 뭔지 모를 스산함으로 마음을 때리고. 


시인은 1942년생,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1994년판이다. 꽤 오래 전 책인데, 내가 사 놓고 정리를 안 한 건지, 선물로 받은 책인지 알 수가 없다. 개정판이 나와 있으니 아직도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시집인 모양이다. 이 시집이 나올 때쯤의 시인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막 구한 기분으로 시집을 읽었다. 


전체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 있는 시들이 좋다. 15편인데 고르게 나를 울린다. 이렇게 계속 좋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2부로 넘어가면서는 덜해졌다. 시를 읽는 마음의 간격이 커져 버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안 읽히는 이유를 대느라 고민하지 말고 잘 읽혀서 와 닿는 시들을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시의 화자를 동경하는 마음이 큰 듯하다. 1부의 시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 구체적인 지명을 향한 길도 있고 막연하게 꿈꾸는 길도 보인다. 길을 가는 생 앞에 서서 망설였다가 걷고 머뭇거렸다가 내딛는 화자의 의지가 애틋하다. 비슷한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가 이러고 있었던 것 같아서. 


반백년을 넘게 살아도,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다 싶어도, 여전히 생의 길은 첫길이다. (y에서 옮김20201225)

가지 않은 길 하나씩 품고 있는 한줌 기대와 기대 속에 묻힌 한 그루 추억의 푸른 나무 - P13

빠른 길만이 앞선 것은 아니다.

- P16

앞길은 언제나 막막한 것일까. - P24

나는 지상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노라던 말라르메의 그 말이,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던 김수영의 그 말이, 흠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던 랭보의 그 말이,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소라던 브로드스키의 그 말이, 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느냐던 니체의 그 말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그 말이…...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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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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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그(하루님)에서 관련 글을 보고 빌려 본 책이다. 책 제목이 마음에 썩 들었고, 음악을 배경으로 소재로 삼았다는 소설이라고 해서 흥미를 느끼게 했다. 내가 음악을 모르기는 하지만 좋아한다고는 여기고 있어서.


책의 분량은 짧은 편이었고 빠르게 넘어가는 속도감도 있었다. 내용은, 음, 내가 모르는 음악만큼이나 저높이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를 봤다면 딱 지루하다고 할 관객. 쉽게 포기한다. 어쩔 수 없지, 뭐. 책 제목은 참 근사했는데, 나도 세상의 모든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결국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니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포기의 자세인가 싶고. 


예술가, 이를테면 화가나 연주가, 건축가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다들 비슷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예술 자체에만 임할 것이냐, 예술 밖의 조건들도 고려하며 예술을 할 것이냐. 소설도 영화나 드라마도 종종 봐 온 것 같아 낯설지는 않다. 그리고 늘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예술가는 못되겠구나, 저 정도의 열정이나 집착이나 몰입이 없으니, 예술가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 작품이 나오는 모양이구나, 그냥 내 수준에서는 보고 즐기는 걸로 만족하자, 이런 정도의 독백으로 마무리하면서. 


이 소설도 실제로 프랑스에 있었던 두 명의 연주가를 모델로 삼고 있다. 짧은 사실로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내는 영화인.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는 너무 서운한 생이 되고 말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하다. 내 취향에 아주 가까운 소설은 아니었으나 나는 이런 확장을 좋아한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문학과 영화가 서로를 넓혀 주는 일은 계속되기를 바란다.


책을 보고 영화도 찾아 보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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