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살면서 겪는 온갖 경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으로 남는다. 떠올릴 때마다 흐뭇해지는 좋은 기억도 있고 떠올리기 싫지만 그럴수록 더 떠오르는 좋지 않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좋은 기억은 어쨌거나 좋을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안 되겠지만,-어떤 이는 좋은 기억이 많을수록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는 편-좋지 않은 기억은 때로 삶을 황폐하게 만들거나 심할 경우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좋지 않은 기억들을 다스리는 저마다의 방법만큼은 갖고 살아야 할 일인데.
그런데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기억도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 이렇게 둘로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둘 사이에 넓게 퍼져 있는 어중간한 기억들이 사실은 더 많지 않을까? 마냥 좋기만 한 기억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기분 나빠지는 기억도 아니고, 떠올리면 뭔가 쓸쓸해지거나 아쉬워지거나 후회가 되기도 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그런 기억들. 내놓기에는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것 같고 숨기기에는 좀 섭섭해지는 약간은 그립기까지 한 기억들로. 하루키의 이번 책은 이런 무수한 기억들을 우수수 떠올리게 해 주었다. 날도 얼어붙어 춥기만 하고, 집 밖 세상은 온통 위험하여 나서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내 시간을 어루만져 주면서.
실려 있는 작품은 모두 8편이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산문으로 봐도 어긋날 게 없어 보일 정도로 작가의 실제 사정과 일치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하루키의 산문을 오랫동안 읽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작가는 소설이냐 산문이냐 하는 것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내 생각이지만. 기억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에 대해, 기억은 나는데 그 기억으로 지금의 삶이 흔들리는 일까지는 생기지 않는 기억에 대해, 그렇지만 남에게 보여 주고 싶기는 한 어느 시절의 기억에 대해 쓰는 글. 그 기억들을 되살려 봄으로써 지금의 나를, 내 처지를, 내 행운과 내 삶의 가치를 확인해 보는 계기로 삼기 위해 쓰는 글. 작가는 소설가이니까, 작가니까, 글을 씀으로써 이 일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이고, 이때 쓰는 글은 종류가 무엇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내 생각.
그렇다면 독자는, 나와 같이 읽기만 할 줄 아는 독자는 제멋대로 흔들리는 사소하지만 뜨끔뜨끔한 제 기억의 긴 통로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작가처럼 글로 쓸 수도 있겠고, 글이 아니라면 또다른 방법으로 저마다의 작품을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며, 굳이 생산이 아니어도 각자의 기억을 승화시키는 나름대로의 활동을 해 볼 수 있겠지. 특히나 억눌렀던 기억이라면, 잊은 척했던 기억이라면, 그까짓거 무시했는데 꿈 속에서 그만 휘둘렸던 기억이라면, 그냥 기억 저 혼자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드러내고 마주하고 어루만져서 달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심리 상담의 도움이 아니어도 이제 알만한 사람은 알게 된 시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 왔던가. 나는, 쓸 줄 모르는 나는,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바로 작가들이 쓴 글을 통해 내 숱한 기억들을 만나고 달래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던 것처럼.
기억은, 특히나 내 기억은 오롯이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기억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 그대로든, 실제 일에 가상의 일이 덧붙여졌든, 기억은 내가 바라는 바를 품게 된다. 특히 어떤 사람과 이어져 있는 기억의 경우,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인상보다 그렇지 않은 쪽으로 더 큰 인상을 남긴 경우라면, 약간의 원망이나 후회나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 따위들로 인해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기억되는 경우라면 더더욱. 실제로 어떠했던가 하는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래서 그랬던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불러낸 내 기억들에서는 유독 쓴 맛만 났다. 책 속 주인공이든 주인공의 기억 속 사람이든, 어느 쪽이든 아픈 마음이 더 컸던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는 기억 속 아픈 나를 쓰다듬어 주어야 했다. 마치 나는 살면서 한번도 누군가에게 상처 입혀 본 적 없는 것마냥.
‘돌베개’의 화자는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자신의 목을 올려놓아야 한다(24-25쪽)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돌아보니 내 마음을 베고 간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 기억이 화자의 처지와는 달리 아직 먼지가 되지 못했다는 것도.
‘크림’의 화자는 열여덟 살 때 겪은 기묘한 일을 들려 준다. 이번에는 화자가 아니라 화자를 당혹하게 만든, 화자에게는 하찮고 시시한 사람의 입장이 된다. 그리고는 생각 속에서만 도모해 보았던 하찮고 시시한 복수가, 그 방법들이, 그 생각을 하던 내가 떠올랐다. 그게 뭐라고, 그 사람이 뭐라고, 중심도 없는 원을 그리겠노라고 애를 쓰던 시절이라니. 다행히도 나는 이제 그때만큼 젊지 않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의 화자는 꿈 같은 이야기와 꿈 이야기를 들려 준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마음이 지극하면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걸까, 꿈에서 못 만나서 꿈을 꿨다는 소설을 쓰는 걸까. 소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음악과 관련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 몇 개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어떤 음악은, 어떤 노래는, 어떤 사람과의 기억 때문에 들을 때마다 불쾌해지기만 하니.
‘위드 더 비틀스’의 화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렸을 때 보았던 아름다운 소녀를 잊지 못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게 또 이래저래 나쁜 일이라고도 할 수 없겠고.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 본 적도 없고, 아름다운 소년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나는, 비틀즈의 노래에 빠져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낯설었다. 낯설면서도 쓸쓸했다. 아름다운 이를 기억할 수 없다는 건, 살면서 꽤 쓸쓸한 일이 되는구나 싶었으니까.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야구를 소재로 삼고 있다. 글은 글대로 재미있었고, 나는 나대로 잠깐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야구와 함께 한 시절을 떠올리면서. 천안북일고, 선린상고, 경북고, 광주일고, 군산상고,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그리고 프로야구가 시작되던 시절의 기억까지. 요즘 야구는 왜 그때만큼 재미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사육제’의 화자는 살짝 얄밉다. 남자는 나이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싶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인정하는 마음 따로 얄미운 마음 따로다. 그래, 예쁜 여자는 예뻐서 기억하고, 못생긴 여자는 못생겼다고 기억해라. 나는 기억하지 않는 것으로 그대를 지우겠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 원숭이는 사랑을 한다. 사랑 따위 현실에서는 관심이 없노라 말을 하면서 글 속 사랑 이야기에는 여전히 설레는 내가 신기하다. 사랑만큼 내 기억에서 먼 주제도 없을 것 같다.
‘일인칭 단수’의 화자는 친숙하면서 좀 난처하다. 나처럼 보이고, 8편 중에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듯하다. 내가 언젠가, 어느 곳에서, 누군가에게 지독한 짓을, 고약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알면서 모른 척하고 버티는 건 아닌지, 거울에 비친 나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기억들을 지우고 사는 건 아닌지...
한 편 한 편의 글을 따라 짚으면서 내 기억들을 이어 붙이는 일은 흥미로웠다. 이 작가의 글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읽으면서 나를 읽을 수 있다는 것, 특히 감춰 놓고 있던 나를 끄집어 내어 만나게 해 준다는 것. 나도 모르게 작품 속 누군가의 눈으로 마음으로 나를 보고 나를 건드리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 이 책으로 내가 기억 속 나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설사 그때의 내가 좀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속좁아서 떠올리기만 해도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질지라도. 그때의 내가 있어 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일 테니 이마저 고마운 노릇이다.
행여 나로 인해 불쾌한 기억을 갖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를 원망하느라 시달린 기억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읽고 지울 수 있게 되기를. 작가가 쓰면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읽으면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게 되기를. (y에서 옮김20201217)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ㅡ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ㅡ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 P23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 P48
"물론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 버드가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완만한 것이기도 해. 자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프레이즈와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한없이 잡아 늘일 수도 있지.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만큼 길게ㅡ혹은 영원에 다다를 만큼 길게. 시간이란 관념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어.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실제로 맞는 진짜 죽음은 철저하게 무거워. 그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갑자기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완전히 무無가 되어버려. 그리고 내 경우, 그 존재는 나 자신이었어." - P68
한때 소녀였던 이들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소년 시절 품었던 꿈 같은 것이 이제 효력을 잃었음을 새삼 인정해야 해서일 것이다.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P76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131쪽),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ㅡ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47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 P169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 P181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ㅡ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ㅡ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 P202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ㅡ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ㅡ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 P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