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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평점 :
꽤 오랜 시간을 이 책 한 권으로 보냈다. 평소 내 습관대로라면 이 책 저 책, 얇거나 가벼운 책을 섞어 가며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데, 이 책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좀처럼 다른 책이 잡히지 않았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좋아하는 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내가 사로잡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으니. 나는 지금의 이 기분이 아주 낯설면서도 너무 풍성하여 벅차기만 하다. 소설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얼마나 많은 생을 경험하였던지.
모두 23편의 소설들. 읽을수록 글이 많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한 편씩 읽고 넘길 때마다 남은 글이 줄어드는 게 아까웠으니까. 더 읽고 싶고 계속 읽고 싶고 지금까지 읽은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더 서운한.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으로 겪는 이야기. 특별한 능력도 특별한 조건도 없이 조금씩 모자라거나 조금 넘치거나 그래서 사는 일이 수월하지 않고 좀 고달프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그러나 또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마음 다지는 이들의 이야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두고 런던을 오가면서 삶의 공간을 바꾸는 이들의 고난까지 담고 있는 이야기.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도 우리의 모습이 영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많이 낯익은 이야기들. 불쌍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한, 사랑하고 싶으나 사랑이 안 되는 이들의 이야기.
한 편씩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를 하려고 했다, 읽는 동안에는. 그런데 다음 편으로 넘어 가면 앞 이야기를 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감동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가 싶기도 했으나 잊고 나니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이어졌다. 어느 한 편 아프지 않은 글이 없었던 탓이다. 아픔을 느끼면서도 읽는 일이 기분 좋다니. 내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더없이 못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나의 비난이 줄어들 것 같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과 그들의 다양한 행적 덕분에 못난 이들까지 이해할 수 있을 능력을 얻은 것만 같다. 권력이든 재산이든 명예든 세습이든 아무리 간절한 욕망이라도 나이 들어가는 현상 앞에서는 결국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일이니.
아일랜드는 정녕 동경하게 되는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