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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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이 책이 출간된 것이 오래 전인 것 같고, 이 책이 나온 한참 후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던 모양인데 그 일을 경험하고도 우리 사회는 별로 달라지거나 나아진 게 없는 것만 같은 이 서글픈 마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진에는 안전 지대인 줄로만 알았던 우리나라에 지진이 일어나고 그 영향으로 동해안 원자력발전소의 위험 여부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이제는 이런 사고가 남의 일만은 아닌 게 되어 버렸는데.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의 양면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 좋은 쪽으로 활용하면 아주 유용한 기술도 조금만 바꾸면 아주 무서운 무기가 되어 버리는데, 문제는 과학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겠지? 원자력 발전이 원자 폭탄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보면서도, 내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본성 탓인 걸까. 귀찮거나 게으르거나.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알자’일 것이다. 모르는 채 살지 말고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게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걸 알고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고 행동하면서 살자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 하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사실 얼마나 부족하고 소심하고 나약하고 또 비겁하기까지 한가 말이다.

 

이런 경우, 믿음이나 신뢰 이런 쪽과는 거리가 좀 있을 것 같다. 정부를 믿고 안 믿고, 경찰을 믿고 안 믿고, 과학자를 믿고 안 믿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배자의 논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선택이고 판단이며, 내게 내려진 상황과 한 발 건너 이웃에게 내려진 상황 사이에도 엄청난 간격이 존재할 것이다. ‘정의’라는 게 과연 우리가 실현시킬 수 있는 덕목이기나 한 것인지.

 

원자력은 없애는 게 나을 것 같다. 전기를 덜 쓰고 살고 그래서 더 불편해지더라도, 편리보다 위험이 더 크게 느껴지기만 한다. 이 소설 속 상상이 현실로 나타났던 모습,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y에서 옮김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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