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도 혼합 공간 문학과지성 시인선 571
김리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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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머무는 게 수월하지 않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 시어는 투명하게 보이는 듯했지만 겹겹으로 포개져 있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 다시 보았다. 얼마 되지 않아서 섭섭하고 좀 답답했다.


각 시의 길이가 긴 편이다. 한달음에 읽지 못하고 숨을 쉬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앞에서 읽고 세운 내 고유의 이미지들이 무너지고 나는 다시 낯선 땅에 선 느낌이 든다. 이게 이것대로 신선하면 좋을 텐데 이런 기분이 들기보다는 겨우 붙잡은 것을 놓친 듯만 해서 안달이 난다.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구나, 내 호흡이 짧구나, 다시 읽으려고 돌아가는 대신 책장을 넘기고 만다.  


각주가 꽤 많이 달려 있는 시집이다. 시마다 거의 달려 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시가 먼저였는지 각주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으나 이 시인은 이렇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좋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대상을 보고 시를 쓰거나 시를 쓰다가 기억 속에서 그 대상을 찾아내거나. 내게는 편한 구조가 아니었다.   


반복되는 시어와 반복되는 형상들이 있다. 시인이 좋아하는 풍경일 것이다. 빛, 미래, 유리, 물, 여름 등등. 투명한 것들이다. 투명한 게 늘 투명하게 와 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y에서 옮김20230113)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 가로수들은 영원히 자랄 것 같다 - P9

도시는 빛을 감추기에 좋고 원한다면 어떤 빛도 눈여겨보지 않기에 좋다 - P13

여름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더 여름을 잊어가고 있었다 - P17

자그마한 발을 가진 작은 새들 - P39

창문을 등지고 얼굴을 잃어버린 사람과
창문을 마주 보고 시선을 잃어버린 사람이
마주 앉아 신년 운세를 읽는다 - P61

보이는 모든 걸 만질 수 있다면 보이는 대로 믿게 되겠지 - P63

물의 형태는 순간 속에만 있고 순간을 떠난 물에게는 사라질 수 있는 몸도 없겠지 - P74

아무리 봐도 움직이지 않는 돌 위로
오후의 햇빛이 돌의 능선을 돌아 걸으며 빛나고 있다 - P87

시간은 계속 도착하고 있고 미래는 끝없이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 - P95

시간을 견디며 점점 아름답게 완성되어가는 장소와
지금을 갉아먹으며 점점 더 미숙해지는 시간이 함께 늙고 있다 - P111

따뜻한 공간이라고는 주머니밖에 없는데도 주머니에 넣어둘 것이 없었지. - P134

영원하다는 것은 죽지 않는 일에 가까울까 끝없이 태어나는 일에 가까울까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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