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들끼리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낯설다.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살아갈 날이 얼마 남았을까 따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주어지는 매일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이 여겼으며, 내일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염려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살아 있다는 게, 살아 있기만 하다는 게 마냥 행복하고 축복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장수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고통이 될 것이라고 하니 막연한 두려움까지 인다.
그래서 이 만화도 낭만스럽게 읽지 못했다. 전혀 무겁지 않고 궁색하지 않게 그리고 있음에도 그림 사이사이, 글 사이사이로 시대의 우울을 읽는다. 40세의 독신 여성이 70세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야기. 개를 키우는 일에 부담을 느끼는 나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아버렸을 때의 막막함, 그저 단순히 아끼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슬픔을 넘어 아주 오래 지켜본 후에 인정하는 체념 같은 것에 공감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아픈 슬픔이 아니라 약간 달콤한 슬픔 정도?
사는 게 그리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을 매일 매순간 느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고 사는 우리.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지극히 행복한 여정인 것을 꼭 어긋난 것에 치이고 다치고 나서 깨닫곤 한다. 나이를 먹어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나이를 먹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일상을 보낼 수 있고, 적당한 지혜와 한껏 깊어진 여유로 조급하지 않게 살 수 있다면, 게다가 그 울타리가 가족을 안고 있다면 그건 참 행복한 모습일 텐데. 나는 사와무라 씨 댁 세 사람이 그지없이 평화로워 보이기만 한다.
달라지는 세태가 너무 빠르다 싶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제 알 만큼 되었을 것 같다. 헛된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가뿐한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시절이다. 성공과 야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졌고, 삶의 의미와 가족의 중요성이 새삼스러워졌다. 밖에서 많이 떠돌았던 나의 관심과 열정들, 이제는 우리 가족 안으로 모아 들여야겠다는 내 생각이 마음에 든다. 늦지는 않았으리라 믿으면서. (y에서 옮김2017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