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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평점 :
연애란 무엇일까, 연애는 언제 어떻게 하게 되는 일일까, 하는 동안에는 모르고 있다가 끝난 뒤에 알게 되는 게 연애가 아닐까... 이런 방식의 질문을 나는 계속 해 나갈 수 있을 듯하다. 연애하는 마음을 믿지도 않고 연애하는 방식을 존중하지 않게 되어 버린 탓. 이 또한 내 탓일까, 연애 탓일까.
소설의 배경이 홋카이도라는 것에 확 끌렸다. 막연하게 내가 동경하는 곳, 가 본 적이 있으나 또 가 보고 싶은 곳, 그러나 이제는 가기 어려워져서 글을 통해서라도 가 보고 싶은 곳, 여름보다 겨울이 더 인상적인 곳, 후덥지근한 이 계절을 잠시 잊게 해 줄 만한 홋카이도에서의 사랑.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은 가상의 공간이란다. 세상에는 없는, 그럴 듯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작가의 능력인 것이겠지.
30대 중반의 남녀가 주인공이다. 둘은 연애를 한다. 이 나이쯤 되면 어른이라고, 어른이 연애하는 것이라고 하는 걸까? 더 젊으면 어린 연애? 더 나이가 들었다면? 나는 괜히 어른의 연애에 시비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권한다고? 바람직하다고? 할 만하니 해 보라고? 온 우주가, 온 자연이, 세상의 온 기운이 두 사람의 연애를 도울 것이라고? 작가는 오로지 문장력으로 연애의 격을 높여 놓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애 자체는 전혀 부럽지 않은데 연애하는 두 사람을 그려 보이는 작가의 솜씨에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괜찮은 연애라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연애가 본질적으로 찌질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어떤 연애든 잘 봐 주지를 못하겠는데, 이 두 사람의 연애를 봐도 같은 마음이었으니 응원 같은 게 생길 리는 없었고.
그럼에도 내가 연애 소설을 계속 읽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연애 소설 어디에 내 마음을 얹어 놓고 있는 것일까? 내 안의 모순은 어쩌다가 자리하게 된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을 다 알 것도 같고 변명도 할 수 있겠지만 하지는 않으련다. 그냥 계속 읽겠다, 연애 소설을. 인간의 본성과 이중성과 이기심과 욕망 따위를 삐딱하게 들여다보면서. 작가의 멋진 문장에 감탄하고 즐기면서.
작은 마을의 우편배달부. 작가는 이 일마저도 퍽 낭만적으로 그려 놓았다. 하고 싶어지도록.
<책 친구 우주님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