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라는 게 새삼스럽게도 신기하게 여겨진다. 어렸을 때 숙제로 쓰던 일기 때문에 부담을 느꼈던 이후, 점점 나이 들면서 일기를 쓰고 싶어지는 때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책을 만났을 때처럼, 뭔가 삶의 결을 달리 하고 싶다거나 조금 더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싶다거나 자신을 전보다 더 아끼고 싶다거나 하다못해 글을 쓰는 시간을 갖고 싶다거나 하면서. 쓰고 싶다고 계획을 세웠다가 막상 쓰기 시작하고 나면 며칠 이어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보통 사람의 삶이라는 게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날마다 내세울 만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날이 그날 같은, 달라질 것이라고는 고작 날씨 정도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일기를 쓰면 그날부터 내 생에 전과 다른 빛이라도 비춰줄 것처럼 기대하게 되는데. 음, 아니지, 하면서도 또 꿈꾸고 상상하곤 하는 게 나이와 상관없이 되풀이된다는 것도 신기하고.
책은 싱겁다. 싱거운데 아늑하고 정답다. 이게 이 작가가 보여 주는 매력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이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해 주는 것. 단순한 선으로 된 그림을 보면서 작가가 들려주는 생각을 읽다 보면 자꾸만 나의 지난 날들이 겹치면서 떠오른다. 심지어 어떤 기억은 내것이 아닌 기억인 것만 같은데도 낯익고.
나의 열다섯 살, 나의 열일곱 살. 그랬지. 어설프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했지. 어렸던 탓에 아직 모르는 것들을 앞에 두고서는 어떻게 대하는지 몰라 서투르게 대응했을 것이고, 이미 겪은 일에 대해서는 겪어 보았다는 것만으로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오만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드러낼 것과 숨길 것을 묘하게 저울질하면서 친구와 부모님과 선생님들 앞에서 이중의 모습을 보이고는, 들키지 않으리라고 자신하면서, 친구는 몰라도 어른들은 다 알고 모른 척 해 주셨을 텐데도.
사춘기라는 게 어떤 이에게는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지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지나가기도 하는 건데 지나고 보면 또 언제 그런 시절이 있나 싶어질 만큼 아득하기도 한 게 아닐까 한다. 그래도 내놓고 보여 주는 쪽보다는 안으로 감추어 두고 싶은 게 더 많은 시절이 그때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뜨끔뜨끔 했던 것은 아닌지. 살짝 무안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뻔뻔했던 그때의 내 어느 하루를 보는 것마냥 민망하기도 하고. 그래도 제일 좋았던 건 짧은 시간이나마 다시 어려진 느낌을 받을 수 있더라는 것.
일기를 또 써 보고 싶어진다. 단 며칠이 되더라도. 이건 이것대로 지금의 내 나이를 붙잡아 두는 좋은 작업이 될 것이고,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반갑게 만날 내 젊은 날이 되는 것일 테니. (y에서 옮김201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