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과 같은 화창한 초여름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도 싶지만, 길이 그 자리에 있고 풍경이 그 자리에 있듯이 이 글도 그 자리들을 빛내고 있어서 읽었다. 이 또한 내게는 처음이 아닌 읽기.  


시간을 줍고 낚고 거느리며 사는 사람들을 스치는 것 같다. 정작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인데,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체험을 고스란히 내 감각으로 느낀다. 그래서 글 속의 바람도 물결도 나뭇잎 흔들리면서 반짝이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 온다. 고마운 일이다. 


이 작가의 글 일부가 국어 교과서에 종종 실리고 있어, 나도 참고 자료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내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젖는다. 앞서 읽었을 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기록으로 남긴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다시 읽어서 좋은 글들의 매력을 어떻게 정리해 두어야 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강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본다. 우리 강산에 머무르고 있는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다 붙잡아서 표현해 놓은 것 같다. 내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게 다행스럽고,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은혜로움을 못 느끼고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일깨우는 작가의 글이 더욱 은혜로워지는 이유이다.  


책은 개정판을 거쳐 절판이라고 되어 있다. 뭔지 모를 섭섭함이 남는다. (y에서 옮김20130522)

풍경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인간이 풍경을 향해 끝없이 말을 걸고 있다. 그러므로 풍경과 언어의 관계는 영원한 짝사랑이고, 언어의 사랑은 짝사랑에서 완성되는데 그렇게 완성된 사랑은 끝끝내 불완전한 사랑이다. 언어의 사랑은 불완전을 완성한다. - P25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 P42

언어는 갯벌에 주저앉아 마땅했다. 바다의 속살 위로 자전거를 몰아가는 이 마른 갯벌의 낯선 풍경은 시간의 작용과 공간의 작용이 합쳐져서 이루어내는 생성과 소멸이었고 지속과 전환이었는데, 시간과 공간은 바닷물 밑에서 만나 시간도 아니고 공간도 아닌 세상을 열어내고 있었다. 거기서는 생성, 소멸, 지속, 전환 따위의 어떠한 개념적 언어도 저 혼자서 독자적 의미의 힘으로 자립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저절로 되어진 모든 것들은 필연적일 것이고, 바다의 속살이 말라가는 이 갯벌에서는 필연이 자유의 반대말도 아니었다. - P95

선박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그 앎의 힘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한다. 내가 어디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야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철새들이 태양의 기울기나 지구의 자장을 몸으로 감지해가며 원양을 건너갈 때 철새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알지 못해도 천체가 보내주는 신호에 따라 방향을 가늠할 것인데, 인간의 몸에는 그 같은 축복이 없다. 그래서 선박을 움직여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목적지 항구에 닿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나’의 위치는 물 위에서 항상 떠돌며 변하는 것이어서 항해사의 질문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지나간 모든 위치는 무효인 것이다. 바다 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미래의 시간과 함께 인간의 앞으로 다가온다. - P134

바람은 바닷물을 재우거나 흔들어 깨우거나 미쳐 날뛰게 한다. 바다는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마당과도 같다. 바람이 없을 때 해면은 거울과 같다. 물 위에 고기비늘 같은 잔주름이 잡히면 실바람이고, 작은 파도가 생기면 남실바람이다. 파도의 대가리들이 부서지고 흰 거품이 일어나면 산들바람이고, 파도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옆으로 연대를 이루면 건들바람이다. 파도가 더 길어지고 흰 거품이 위로 치솟으면 흔들바람이고, 흰 거품이 대열을 이루어서 달려들면 센바람이고, 흰 거품이 부서져서 물보라가 날리면 큰바람이다. 물보라가 심해져서 시야가 흐려지고 파도의 대가리가 휘어지면 큰센바람이고, 흰 거품이 덩어리를 이루어 물 전체가 뿌옇게 보이면 노대바람이고, 큰 파도가 작은 파도를 때려 부수면서 달려들면 왕바람이고, 물거품과 물보라로 수면 전체가 뒤덮이면 싹쓸바람이다. 등대의 풍향계와 풍속계는 화살표 한 개와 바람개비 한 개로 이 모든 바람의 힘과 빠르기를 감지해서 그 내용을 인간의 세상으로 전한다. - P146

나는 모국어의 여러 글자들 중에서 ‘숲’을 편애한다. ‘수풀’도 좋지만 ‘숲’만은 못하다.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한데,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 있다. ‘숲’의 어감 속에는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건조감이 들어 있고, 젖어서 편안한 습기도 느껴진다. ‘숲’은 마른 글자인가 젖은 글자인가. 이 글자 속에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골짜기를 휩쓸며 치솟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고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 P151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이 완성은 적막한 무위이며 단단한 응축인 것인데 하늘을 향해 곧게 서는 나무의 향일성은 이 중심의 무위에 기대고 있다. 무위의 중심이 곧게 서지 못하면 나무는 쓰러지고 거죽의 젊음은 살 자리를 잃는다. 중심부는 존재의 고요한 기둥이고 바깥쪽은 생성의 바쁜 현장인데, 새로운 세대의 표층이 태어나면 생성과 존재가 사명을 교대하면서 나이테는 하나씩 늘어간다. 동심원 속에서 늙음과 젊음이, 전위와 후방이 순탄한 질서를 이루어 나무는 곧게 서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또 잎을 떨군다. 나이테의 동심원 속에서는 후방이 전위보다 훨씬 더 두껍고 단단한 것이어서 잎 피는 나무의 그 찬란한 전위는 모두 이 후방에 기대어 있다. 이 중심부 쪽 후방이 나무의 가장 단단하고 안정된 부분이다. 기둥을 세울 때 목공은 나무의 겉 부분은 다 깎아버리고, 고급 가구는 대부분이 후방만을 잘라 내서 목재로 쓰고 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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