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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책, 좋은 책, 분명히 감동을 받을 줄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좀처럼 읽고 싶어지지 않는 책이 있다.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읽고 나면 가슴 벅차리는 것도 알고 있고, 읽은 후에는 세상이 전과 다르게 보이리라는 것조차 알고 있으면서도 읽는 내내 어떤 것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임을 미리 예감하게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내게는 그런 책들 중의 하나였다. 이순신 장군. 초등학교 때 보았던 그의 영화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인가. 나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이순신 장군에 대해 굳이 생각해 보고 싶지도 공부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그 이유가 이순신 장군을 간접적으로나마 대면하기 부끄럽고 슬펐고 속상했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되새겨보았다.
'나아가도 죽고 물러나도 죽는다.' 내게는 이 말이 '살아도 죽고 죽어도 죽는다'로 읽혔다. 살 길이 없는 삶이었다. 어떻게 죽음을 앞에 놓고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인지.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성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죽음 앞에 삶을 놓고 밤마다 고민했을 그의 순결한 영혼이 가엾어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김명민이 연기했던 이순신 드라마도 끝내 보지 못했다.
선조 임금에 대한 내 인식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약하고 비겁하고 못난 임금. 임금에는 두 종류가 있나 보다.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를 만났을 때 그를 품어 더 나은 정치를 펴려고 하는 임금과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를 살려 두지 못하는 임금.
혹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정치가들에게서도 이런 속성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자신보다 뛰어난 국민들의 뜻을 모아 더 나은 나라, 더 나은 민족이 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는 정치가와 자신보다 뛰어난 국민들을 하루속히 이 나라에서 떠나가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만 남아 비굴하고 천하게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정치가.
서문에 작가가 남긴 말이 내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다. "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하였다..." 2001년에 올린 서문이 2008년에도 퍼렇게 살아 장군의 칼처럼 빛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앞으로 어떤 기회가 있어 내가 아산 현충사나 통영 제승당에 가게 된다면 그의 초상화 앞에서 눈물을 감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던 그가 너무 가여워서. 충성을 바친 임금으로부터 목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그의 현명함이 너무 가여워서.
남한산성을 읽고도 그러했고 이 책을 읽고도 그러했지만 백성들의 목숨이란 게 참 하찮고 보잘것 없는 것이었음을, 아무리 전쟁 때문이었다고 해도. (y에서 옮김2008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