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4 (완전판) -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작가의 두 번째 남편이 고고학자였고 그를 따라 중동에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데.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유홍준 교수의 중국 답사기를 읽으면서 발굴 탐험자들에 대한 내 인상이 나빠졌던 참이라 이 책을 어떻게 읽게 될까 궁금했다. 읽고 보니 발굴 탐험자에 대한 내용과는 그리 관계가 없어 끝 무렵에는 홀로 살짝 민망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정의감의 소유자였을까마는, 이러다가 또 어설픈 편견 하나 더 갖게 생겼다.

배경은 이라크의 땅인 모양이다. 유럽인들이 아시아 유물 발굴에 한창 열 올리던 시절, 발굴단이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그래, 발굴이라는 게 개인의 호기심과 탐구심과 용기만으로 가능한 게 아닌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팀을 이루어야 하고, 마음이 맞아야 할 것이고, 분위기가 좋아야 할 것이고, 단원 중에 사기꾼이나 도둑이 없어야 할 것이고, 낯설고 고립된 땅에서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 요리사도 있어야 할 것이고. 거의 한 팀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어떤 이는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발굴 기간이 길면 그게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유적지 발굴 과정에 더 흥미를 느꼈으니 이 또한 앞서 읽은 책의 영향 탓이겠다.

어찌 되었든 발굴지에서 발굴단장의 아내가 살해당한다. 뻔한 공간에서 뻔한 용의자들을 두고 범인을 찾아 내는 푸아로 경감.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사람은 뒤늦게 발굴단에 합류한 간호사 레더런이다. 단장이 신경과민의 상태인 아내를 위해 고용한 사람인데 사건 현장에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목격자라는 이유로 화자의 역할을 맡았다. 푸아로를 만난 초반에는 그에게 비호감이었다가 점차 호감을 갖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한 가지 좀 아쉬운 설정은, 15년 전에 헤어진 남편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그런데 막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또한 저 좋을 대로 착각하고 사는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죽은 희생자의 성격 묘사는 또 얼마나 근사하던지. 그래,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단순한 성격을 가진 이는 없는 것이다. 복잡하고 섬세하고 이중삼중적이고 심지어는 저도 저를 잘 모르고. 그러다가 결국은 스스로의 허물로 피해를 입고 말기도 하고. 이 작가가 그려 내는 인간상을 정리하면 뭔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야 그저 읽고 잊고 읽고 잊고 해도 좋을 따름이고.

집착은 아무리 애정이 담겼다고 변명을 해도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해 놓겠다. (y에서 옮김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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