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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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는 다음에 해당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려고 한다.

1. 작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으면서도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분

2.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작가를 적은 질투만으로 참아 줄 수 있는 분

3. 나이가 들어도, 오십을 훌쩍 넘어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채 투덜거리는 남자의 수다를 너그럽게 받아 줄 수 있는 분

순전히 내 마음대로 떠올린 대상이므로 혹시 내 권유에 책을 읽고 실망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다.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작가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1. 작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으면서도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분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유쾌하다.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도 짜증나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는 짜증난다는 듯이 표현할 때도 있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시원하고 통쾌하다. 심지어 문제가 해결될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일 때조차도 그러하다. 문제를 파악하고 통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내게 웃음을 일으키고 여유를 갖게 해 주는 덕분이다. 그러니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고 다른 사람도 다 나와 같이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같이 좋아한다면 그것대로 또 다정한 연대감이 생기겠지만 취향이 다르니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이래저래 망설이는 분들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작가의 책을 한 권 이상 읽어 본 적은 있어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 나처럼 발간되는 족족 무조건 읽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는 잠재적인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 작가의 성향을 아예 모른 채 이 책을 처음 잡는 독자라면, 몇 가지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를테면, 나이가 그만큼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다라든가, 재수없다라든가, 잘난 척한다라든가... 하는 정도로. 만약 이런 인상을 받은 탓에 이 작가의 글을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이 작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서운할 듯하다. 그런 점을 다 봐 주고서라도 책을 읽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2.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작가를 적은 질투만으로 참아 줄 수 있는 분

‘슈필라움’.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는 꼭 남자만 갖고 싶은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여자에게도 필요한 공간이다. 그냥 모든 이에게 필요한 공간이라고 해야겠다. 함께 있어도 좋지만 그래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향한 바람. 이런 공간을 당당하게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이 화장대 앞이든 식탁 옆이든 조촐하게나마 의자를 마련하는 것일 테고.

작가는 이 공간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여수에 들렀다가 마침내 여수 앞바다 섬에까지 이른다. 미역창고를 사서 돈을 들여 고치고 다듬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매일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바다를 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겠다는 자신만의 장소. 거기에 한쪽 벽면을 책으로 장식하다가 모자라서 한쪽 벽면을 더 마련하고 있다는 계획과 빈 책장에 책을 채우면서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 부러운 노릇이다.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바닷가 미역창고를 사서 고칠 수 있을 만큼 돈이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림도 글도 남들에게 번듯하게 내 보일 만큼의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는 동안에도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하루하루 악착같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약오르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나로서는 작가의 앞선 책을 통해 어떤 과정으로 작가가 여기에 이르렀는지 대략 알고 있고 이해하는 처지이므로 질투나 불만 없이 지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삶에 동경하는 마음마저 들 정도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무턱대고 질투를 하는 태도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런 노력 없이 누군가로부터 덜렁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 겪고 잇고 쌓아온 결과로 얻은 것이라면, 그것으로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근사하게 꾸려 가겠노라고 한다면, 그저 응원해 주는 게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서다. 요즘 들어서 제 몫으로 잘 살아 나가는 사람을 보는 일이 내게 엄청 좋은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된 탓이 크다. 이 책도 역시 그러했고.

3. 나이가 들어도, 오십을 훌쩍 넘어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은 채 투덜거리는 남자의 수다를 너그럽게 받아 줄 수 있는 분

남자는 15살 이후로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남편이나 아들이 같은 수준에서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본다거나 나이와 상관없이 열다섯 살 사춘기 때의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볼 때,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려고 굳이 욕심을 부리는 때나 주변 여건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때 등등.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증상의 작가 모습을 시시때때로 보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모습은 애교 수준이다. 여자는 어쨌든 부인의 입장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다. 남편이 가정이 있는 서울 집을 떠나 굳이 여수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하면? 교수라는 직업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오십이 넘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하면? 여수 앞바다의 섬에 있는 창고를 사겠다고 하면? 그 창고에 가기 위해 배를 사겠다고 한다면?

작가의 이런 성향을 고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무척 짜증이 날 것 같다. 어쩌면 화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소제목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당당한 자기 주장으로 읽을 수 있으려면 작가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를 한 상태가 좋을 듯하다. 괜한 오해나 비난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는 취향이 다른 분들 간의 다툼을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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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내 리뷰가 다른 책들에 비해 다소 넘치게 쓰여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이만큼이나 될 정도로 작가에 대한 내 호감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다만 요즘 같이 조심스러워야 하는 때에는 도로 변명을 앞세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좋다고 해도 그게 왜 좋은 거냐고 하고, 좋지 않다고 해도 왜 좋지 않느냐고, 마치 시비를 걸기 위해 웅크리고 있다가 탁 터져 나올 기회만 보고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시기에는 방어막을 쳐 두고 싶은 것이다. 덜 다치고 싶어서, 덜 깨지고 싶어서,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좀 해 보고 싶어서. 이게 예상보다 훨씬 넘치고 만 것 같아 지금 많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책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니. (y에서 옮김20190521)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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