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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0년 9월
평점 :
이 책은 작가가 서른여섯에서 서른일곱 살 때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놓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에 발간된 것인데 번역본이 이제야 나온 셈이다. 덕분에 나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상상 체험을 해 보았다. 상당히 생생하면서 좋은 기분이 든다. 내게 맞는 글, 나와 어울리는 정서, 나를 북돋우는 다짐들, 사는 맛과 읽는 맛을 고르게 느끼도록 해 준다.
글 한 편이 두 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들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도 남는 무게감이 꽤 묵직하다. 짧은 분량이라고 해서 다 하찮은 것도 아니고 긴 글이라고 해서 다 웅장한 것도 아닐 테다. 스치듯 무심하게 건네는 듯 남기는 글들인데, 이 글 속에 담긴 생각이나 깨달음이 깊어서 다른 고상한 철학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보다 더 진지하고 명확하며 솔직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글을 읽고 있는 나 자신마저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서른여섯 살에 나는 어떠했던가. 나는 자꾸만 작가의 상황에 나를 견주어 보곤 했다. 이때의 작가는 애인과 동거를 하는 중이고 결혼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고향인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서 산 지 10년 쯤 되었고. 좌충우돌 시험 과정을 거쳐 직업적인 면으로는 나름 안정감도 누리고 있는 시기다. 그 때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느라 작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살고 있던 때다. 바빴고 신체적으로 힘들었고 정신적인 여유를 누린다는 생각은 거의 못 해 본 시절이지 않았나 싶다. 신기한 건 이 작가가 그 시절에 했던 생각이나 다짐들을 나는 이제서야 해 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빨랐던 건지 내가 늦은 건지 아니면 그냥 사람마다 다르게 이런 시절을 맞이하는 건지.
작가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어제 했던 생각이 오늘 바뀌어도, 오늘 하는 생각이 내일 바뀔지라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대응하는 모든 순간의 자신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서른여섯에 그러했더란 말이지. 살짝 아쉽다. 후회까지는 아니고 나도 그 비슷한 나이에 그럴 수 있었더라면 좀더 편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넘길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해서. 지금이라도 작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이렇게 좋은 걸 왜 더 일찍 얻지 못했나 싶은 아쉬움이겠다.
그런 날이 있다. 좋은 날과 덜 좋은 날. 나쁜 날은 없는 거다. 이 생각만 잘 해도 세상 살기가 참 괜찮은 것이 아닐지. (y에서 옮김202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