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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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소설. 다 합쳐도 길지 않고 세 번 탁 끊어 읽으면 금방 다 읽게 되는 분량의 소설집. 셋이 다른 듯 보여도 바탕에 깔려 읽는 맥락은 한 가지로 와 닿는 소설들, 작가의 의도. 


이 작가의 글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흥미를 느끼고 계속 읽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읽은 후 기분이, 아니 읽으면서부터 이미 불편하다. 마음이, 정신이, 느낌이, 생각이 거북해진다. 그런데 이러면 대체로는 더 안 읽고 싶어져야 되는데 그건 또 아니다.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읽어야겠다는, 읽는 게 낫다는 경계선을 넘어선 곳에 작품들이 나를 기다린다.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며. 


인물들, 특히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자들에게 거부감이 든다. 왜 이렇게 사나, 소설인데 현실로 읽는다. 그리고는 거부한다. 어쩐지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못난 그리고 악한 성격 중 일부 요소들이 내 안에 있는 것만 같다. 둘이 만난 것. 그래서 내가 더 거북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내가 싫어하는 내 안의 어떤 면, 작가가 내놓고 묘사하고 있는 인물의 부정적인 어떤 면. 남 탓할 게 아니라 너 자신과 먼저 마주하라는 은근한 경고에 움찔 당하는, 그럼에도 안 읽고는 못 견디는 나. 내가 나를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이런 면이 있다. 소설을 읽다가 종종 깨닫곤 하는데. 


나는 나를 좋아하는 편이다. 대체로 마음에 들어한다. 그렇지 않은 쪽이 있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숨기거나 무시하거나 깔아뭉개고 별탈없이 지낸다. 그러다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불현듯 만난다. 이 책에서처럼, 지금처럼, 그리고 뜨끔해 하면서 잘 읽었노라고 핑계를 댄다, 마치 이로 말미암아 괜찮은 사람이 된 것처럼. 


남자와 여자, 둘의 사이에서 알게 되는 나의 자화상, 나의 차별, 나의 피해의식, 나의 우월감, 나의 낭패감 등등. 아무 장치도 내색도 없이 나를 지긋이 자극하는 글이다, 작가다. 여전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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