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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ㅣ 창비시선 203
허수경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허수경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시집을 샀다. 그녀의 시를 나도 모르게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를 다 본 첫느낌은 그러나 반갑다기보다는 염려스러운 것이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혹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토록 처절하고 힘든 것일까. 시인의 시를 통해 삶을 추측해 본다면 이 시인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못내 참으며,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막다른 벽을 짚고서,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끝내는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띠고서.
이제까지의 그녀의 시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사람들은 그것을 변화 혹은 성숙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자인 나로서는 부담스럽다. 그녀와 아주 멀어져 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 시처럼 삶이 힘든 것이어야 한다면 시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의 모든 길이 시를 향해 있다고 한다. 독일 유학도 힘든 삶도 외로운 인내조차. 그리하여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기는 한데 결코 부럽지는 않다. 그녀처럼 시와 바꿀 수 있는 내 삶이 아직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에. (y에서 옮김20010314)
[인상깊은구절]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고 내 영혼은 우는 아이 같은 나를 달랜다 그때 나는 갑자기 나이가 들어 지나간 시간이 어린 무우잎처럼 아리다 그때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든 별들은 기억을 빠져나가 제 별자리로 올라가고 하늘은 천천히 별자리를 돌린다 어느날 애인들은 나에게 편지를 썼으나 나는 편지를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쓰러지고 바람이 불어오는 사이에 귀를 들이민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