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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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작가의 글 -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제는 작가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 버렸을 독일,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뮌스터'. 작가는 뮌스터를 걷는다, '너' 없이. 작가의 무수한 '너'를 고국에, 혹은 고향 진주에 남겨 두고서.


하나의 도시, 하나의 마을을 자신의 생만큼이나 사랑하고 아끼고 다듬을 수 있으려면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할까. 나는 이십 여 년을 살아온 고향 도시 진주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고, 이후에 살았던 동네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도 애착을 갖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이 사랑도 능력이려나, 사랑할 줄 아는 능력과 사랑할 줄 모르는 것 사이. 


한숨을 몇 번이나 쉬면서 읽었다. 뮌스터 시내를 돌면서 독일의 역사와 유럽의 역사를 챙기고, 떠오르는 고향을 붙잡았다가 뿌리치고, 좋았거나 잔인했거나 '너'와의 기억을 더듬어 매만지는 작가의 여정에 내 발길도 낯선 곳을 헤매었다. 나는 뮌스터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건마는.


홀로 걷는 매력을 보여 주는 책이다. 홀로 걸으면 이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의 나를 확인하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추측하게 되는 시간을 만날 수밖에. 아무래도 기뻤던 기억보다는 슬펐거나 쓸쓸했거나 후회되거나 아쉬웠던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르게 될 듯하고 그때 그러했던 부족한 자신을 끝내 동정하고 마는, 이것으로 생이 끝나지 않을 것도 알고 여전히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돌아보게 되는 지난 날.


그녀의 글은 내가 청춘의 나를 기억하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y에서 옮김20150823)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은 따뜻하지만 나쁜 일을 기억하는 것은 새록새록 아프다. 그 아픔을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도 기억의 일이다. - P86

우리는 너무 가깝다. 밥을 나누어 먹었고 같이 울었고 그런데도 헤어졌다. - P103

아무리 새 사람을 만나도 영원히 내 내면에서 걷거나 뛰거나 앉아 있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는 옛사람들. 선연히 저 벽돌담처럼 햇살을 받으며 내 마음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그들이 있는 어느 날. 마음의 지층 아래에서 숨쉬고 있었던 그 모든 것에게 붙일 이름이 있다면 그리움이라는 이름 말고 또 어떤 이름이 있으리. - P116

삶이라는 것은 버릇을 되풀이하며 기억을 재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기억에 대한 소망은 그 안에서 부풀어오른다. 기억 앞에 ‘차갑다’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해도 지나간 것들은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진저리가 쳐진다 해도 그리운 그 무엇을 품고 있다. 지나간 것이니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까. - P151

그리고 더는 네가 나를 기다리지 않음을 알리니. 네가 나를 기다렸던 그 자리에 존재했던 둘만의 시간도 차츰 사라지리. - P202

어떤 사랑도, 비참하게 배반된 사랑마저도 사랑이었으므로 그 사랑의 마음이 물처럼 흐르던 동안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삶은 살 만했는가. 물은 흐르고 사랑은 그 밑에 고여 흐르지 않는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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