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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소설은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은 읽고 있는 동안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끼도록 해 준다. 더 나아가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가진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김초엽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으면서 이 유쾌한 특징을 만난다. 먼 미래의 이야기, 지금의 이야기도 아닌, 30년이나 뒤에 또 그보다 더 멀리 있는 이야기인데, 이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그 시기 동안 그 모든 독한 ‘더스트’ 상황들을 겪어 낸 뒤 끝내 살아 남아서, 나오미처럼 아마라처럼 그 먼 날에도 다행스럽게 살아 있어서, 아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우리의 만남이 참으로 축복이라는 듯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적 배경을 상상하는 재미도 특별했다. 먼 미래의 우리나라만 나오는 게 아니다. 에티오피아와 말레이시아가 등장한다. 지구 위 수많은 나라들 중에 작가가 왜 이 두 나라를 골랐을지, 우리나라와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구도에 읽는이는 저마다의 의미를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지구 위 세상은 더 이상 조각난 게 아니라는, 지금부터 30년이나 50년이나 100년 정도 지나고 나면, 지금의 국가별 싸움이나 대륙별 또는 인종별 갈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작가의 바람을 담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삶은 누구에게나 거대하면서 동시에 사소한 의미를 준다. 지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 생명을 지닌 개체가 모두 다 소중한 생명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또 어느 하나 빠뜨림없이 다들 피었다가 스러지고 마는 존재들이다.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세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겠지만. 그러나 그 중에 위대한, 위대하겠다는, 위대하고 싶다는 인간들 몇몇이 저지른 잘못으로 지구 위 생명체들을 온통 위험한 상황에 빠뜨린 일들이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저 잘난 목숨만 믿고, 제 이익만 추구하며 오만하고 그릇된 판단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들로 인해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어떤 의도도 없이 제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수많은 생명체들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 것인지, 남은 삶에 그럴 시간이나마 주어질 것인지. 생략되어 있으나 짐작하기에 전혀 어렵지 않은 이 모든 경고와 교훈과 위로가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곳곳에서 울려나오고 있다.
역사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만 기록하고 기억한다지만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이들의 삶이 이어져 역사가 된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모른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다들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 세상에 기여하는 존재임을, 오직 평범한 삶을 바라고 실천하는 올곧은 의지 하나만으로도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세상을 구원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며 엔지니어로 제몫을 다하겠다던 지수와 식물 연구자로 충실하며 만족한다던 레이첼이 하고 싶었던 말, 이들을 대신하여 온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록물로 전하고자 한 아영의 당부에 이 모든 소망이 담겨 있었던 게 아닌지.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곧 세상을 구원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자만이 이를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득 담은 글로서.
작가는 기록하는 사명을 가진 이다. 어떤 모습으로 기록하든 그건 작가의 고유한 영역일 것이고, 과거를 기록하든 현재를 기록하든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를 기록하든 그 어떤 모습이든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사회일 것임은 분명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후손들에게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일은 앞서 사는 이들의 책임이자 의무다. 이 작가가 이것을 이 책으로 보여주고 있다. (y에서 옮김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