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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지금 여기를, 우리는, 우리 중의 누군가는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를 떠나서 세상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상상으로도 못 갈 것이라고 여기고 사는 사람인데 나와 달리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아니, 또 글쎄. 그런 사람들, 이 책의 작가처럼 그들 역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바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실린 소설은 모두 7편. 눈에 드러난 것만으로는 우리네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한 겹만 더 들어가면 사는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게 나는 좀 많이 아프다. 달랐으면 좋을 세상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상은 앞으로도 옆으로도 저 멀리멀리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찾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똑같은 세상, 똑같은 슬픔, 똑같은 절망, 똑같은 한숨, 희망마저 똑같을 것이라는 게 더없이 맥빠지게 만든다.
내가 응원하는 작가이므로, 응원하는 작가의 글이므로, 시작부터 끝까지 옹호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낯선 요소들은 신선하다 하며 받아들이고 익숙한 장치에서는 노련하다 하며 끌어당긴다. 어느 한 편 내 기대에서 떨어지는 작품이 없다. 나로서는 한번도 가정해 본 적 없는 세계의 모습들이, 그 세계를 이루는 요소 낱낱이 그럴 듯해진다. 의심이 되지 않는 가정,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의 실현, 작가의 도움으로 내 상상력의 폭을 넓힌다. 현실이 구차할수록, 끔찍하게 여겨질수록 상상은 숨쉴 틈을 만들어준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장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건 너무도 중요하다. 삶과 죽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같은 선에 서서 이름을 부르고 있기도 하니까.
SF 장치와 소재들로 입혀 놓은 상징들이 온통 뜨끔뜨끔한 자극을 준다. 약자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음에도 저는 아닌 척, 강자로 군림하는 이들의 허상이 애달프다.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을 때일 텐데.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챌 만큼 지혜로우면 좋을 텐데. 그릇된 편견과 아둔한 고집으로 놓치는 진실이 얼마나 많은지, 놓친 진실 때문에 아픔을 겪게 되는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알면 좋을 텐데. 작가가 7편의 작품에서 그려 보이는 특수 상황에 처한 이들과 닮은 사람들을 우리네 현실에서 끌어내다 보니 고단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나 또한 거기에 뻔뻔하고도 어리석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니.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흐뭇하고 또 고맙다. (y에서 옮김2022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