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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편지 ㅣ 에디션F 11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21년 8월
평점 :
1796년에 영국의 여성 작가가 외국(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여행을 하면서 독자에게 쓴 편지다. 스물다섯 편의 편지 형식으로 된 글을 읽고 있노라면,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단 상상일 뿐이지만. 곧 깨닫는다. 이럴 만한 사람이라서 이런 여행도 이런 글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20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읽어도 어떤 형태로든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까지, 이건 좀 많이 대단하다.
작가 개인의 생은 불우한 편이다. 이 때문에 글에 절실함을 더 담을 수 있었던 것인지. 글로 봐서는 보탬이 될 성정이나 개인의 삶으로 봐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아프게 겪었을 것 같다. 남편과의 유쾌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고, 그로 인해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더 깊었던 걸까 짐작만 해 본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여자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를 받은 시기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뜨겁고 습한 올 여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을 것 같다. 200여 년 전의 북유럽 3개국의 여정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여행 방식과 비교하는 재미도 컸다. 여행기가 다양하게 나와 있으나 최근 내 마음에 드는 글과 여행담을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을 봐서 좋았다. 풍경이면 풍경, 묘사면 묘사, 사색이면 사색, 기행문의 3요소(여정, 견문, 감상)가 참으로 풍부하게 담겨 있다고 여겼다. 흐릿하게 갖고 있던 내 생각이 분명한 표현으로 나와 있는 글로 확인을 받을 때의 상쾌함까지도 느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 작가도 이러하구나, 심지어 이미 2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하였구나, 내가 괜찮은 생각을 하였구나......
편지나 일기를 손으로 쓰지 않게 된 이 시절, 나도 뭔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y에서 옮김20220805)
세상을 알면 알수록 문명의 발달을 추적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문명이 축복임을 잘 가늠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커집니다. 문명은 우리의 즐거움을 품위 있게도 만들지만, 감각의 원시적 섬세함을 유지시켜주는 다양성도 창출합니다. 상상력이 부재하면 모든 감각적 쾌락은 상스러움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 P28
저는 시골을 사랑하지만, 집을 짓기로 선택된 그림같이 아름다운 환경을 볼 때면 개발이 두렵습니다.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면서 주위 풍경에 어울리는 숙소와 외관을 꾸미는 데는 남다른 감각이 필요하지요. - P39
모든 나라가 자기네 나라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행자들은 집구석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어느 정도 윤택해졌을 때라야 취향의 연마로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개인의 청결과 기품의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국민성을 비난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작가들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 정신을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종이 지구본처럼 가상의 구 안에 가둬놓기 위해 계산된 듯한 독단적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탐구와 토론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P57
시대의 무지와 편견을 고려하지 않는 작가들은 자신들이 지식의 발전, 심지어 미덕의 발전에 얼마만큼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 작가들이 발달이 뒤처진 사회에 살았다면 개인의 노력으로 그 만한 발전에 이르는 정신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겁니다. - P59
우정과 가정의 행복은 끊임없이 칭송 받는 덕목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세상에서 보기란 힘듭니다. 애정이 잠들지 않게 하려면,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라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마음의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단순함과 허심탄회함은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약점에 가까워 보이지만 사랑이나 우정의 매력적 요소, 나아가 어린 시절의 온갖 황홀한 은총을 되살리는 본질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심미안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들로 서로에게 애정을 품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의 얼굴 표정은 저를 감동시키고 제 심상에 지워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점점 진부해지는 침체된 연민을 깨우려면 새로운 열정이 필요합니다. 심미안이 부족하여 끊임없이 동물적 감각에 의지해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면 좋게 말해 예의라고 하는, 꾸며낸 행동이 필요한 것처럼요. - P127
여행을 교양 교육의 완결로서 합리적인 근거로 채택하고자 한다면 유럽의 더 고생한 지역들에 앞서 북쪽 국가들부터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은 다른 나라의 다양한 응달을 탐색해야만 습득할 수 있는 관습의 학습터가 되어줄 겁니다. 그러나 기후가 다른 지역을 방문했을 때는 한순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모든 걸 이해했다는 결론에 이르면 곤란합니다. 환대는 여행자들에게, 특히 즐거움을 찾아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한 나라의 미덕을 잘못 평가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저는 한 나라의 미덕이 그 나라의 과학 발전과 정확히 비례한다고 믿는답니다. - P188
여행 중에 누군가를 만나면 관심이 생기는 그 순간부터 헤어짐을 아쉬워하게 되지요. - P206
사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걱정하거나 불행을 탐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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