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시블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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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호흡을 천천히 하면 시간의 마디마디, 공간의 틈새까지 머물러 살필 수 있을까.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작가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풍요로울까, 아닌가, 그만큼 보이는 게 많아져서 도리어 성가시게 될까?

 

진지한 만큼 재미를 느끼면서 읽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시각으로 본다는 게 좀 낯설기도 했지만(너무 오래 전에 잊어버린 감각이라)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꽤나 똑똑해야 할 듯하다. 내게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이만큼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리라 싶으니까. 중학생들의 세상이라는 게 일본이나 우리나 겹치는 부분이 있어 이해가 쉬운 점도 있었고, 전학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의아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한낱 어린 학생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라고 혹은 입으로 말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어른이든 어린이든 저마다 생의 무게를 갖게 되리라. 나이가 어리다고 가벼운 것도 아닐 테고, 나이가 많다고 무겁기만 한 것도 아닐 테고, 남들은 쉽게 지나치는 것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엄청 애써서 건너는 생의 다리가 될 수도 있고, 내 것인 삶조차 내가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노릇인데 하물며 남의 것은 함부로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고, 왜 그렇게 힘들게 견디느냐고, 왜 그렇게 무모한 것이냐고, 왜 그렇게.......    

 

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을 무척 소중하게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좋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과 내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게 된다. 사소한 물건 하나도, 그 물건에 얽힌 기억도, 그 기억을 나눈 사람까지, 내가 살고 있는 영역을 동그랗게 확장시키면서 품어 보게 해 준다.

 

하루카가 사토루와 우애 있게 자랐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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