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무쿠, 못 보셨어요?
타카기 나오코 지음, 손이경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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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던가. 어떻게 지냈던가. 생각이 별로 안 난다. '무쿠'처럼 특별히 기억할 만한 사건도 없었다. 이걸 기억해 내고 재창조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는 만화가 또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고 있으면서 그 이전의 삶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고 다른 활동도 이것저것 해 보지만 자신이 잘하는 게 이것이다 싶은 것을 찾지 못하고 보낸 학창시절. 대학을 졸업하고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다기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던 젊은 날. 그런 시절을 거쳐 마침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 대목에서는 박수를 쳐 주어야 할 것 같고. 


표면적으로는 어린 시절 유기견을 데려다가 16년 동안 키운 이야기를 말해 놓고 있는데, 그 안에는 오늘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는 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유기견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데려와 키우겠다는 작가, 못하겠다고 하면서 끝내 함께 키우는 가족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두고 조금은 조바심을 내면서도 성급한 결론으로 후회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요즘 우리의 젊은이들도 약간은 도움이나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는 게 누구에게나 늘 분명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비교적 분명한 상태로 살아온 사람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일찍이 가졌고, 한번도 흔들리거나 의심한 적도 없었고, 시절을 잘 만나 선생님이 되는 길도 순조로웠으며, 지금에 이른 사람이다. 선생님 그 이상의 포부나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고, 현재 선생님으로 사는 일에도 지극히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작가와 같은 또는 내 아이들이 지금 헤매고 있는 삶의 방황 기간은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공평하게도 시련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내 아이들에게 닥친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오는 것일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그림으로 흔들리는 젊은 사람들이 이 만화를 보면 위로를 얻을 수 있기는 할까, 그저 나쯤 되는 사람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을 주는 데 그치고 말까. 예측 불가능한 미래 때문에 갖는 불안감이 이렇게 심각하게 여겨지리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던가.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y에서 옮김201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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