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문기업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평점 :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읽는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다. 아주 소설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서, 바꾸기 힘든 현실의 문제점을 그대로 견뎌야만 하는 것 같아서, 무기력해지는 의욕을 살릴 길이 보이지 않아서.
먼저 이 소설의 내용과 비슷한 글의 특징을 정리한 몇 가지. 일본소설이다(최근에는 우리 소설에서도 더러 보인다). 주인공은 젊은이. 성장 배경이 원만하지 않아 부모로 인한 결핍이나 상처를 안고 있다. 혼자 애를 써서 도시에서 생활했는데 실패했다(취업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사기를 당했든). 집도 없고 먹고 살 길이 없게 되었는데 시골에 기다려주는 친척 어른이 있다(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등). 시골로 간다. 친척 어른의 도움으로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
구성의 기본 가지다. 여기에 어떻게 잔가지를 내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가, 어떤 재미를 만들어 낼 것인가, 어떤 배경으로 독자를 이끌어들일 것인가, 작가의 몫이겠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에밀리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부엌칼로 생선 요리를 배우게 되면서 자신이 입은 상처로부터 점차 회복된다는 내용을 보여 준다. 음식이 주된 소재라 흥미를 느끼며 읽어 나갔는데 익숙한 구성에 충분히 예측되는 결말이다 보니 싱거워지고 말았다. 내가 써 볼 것도 아니면서 이런 방식이라면 나도 쓰겠는 걸 싶은 허무맹랑한 자만심마저 들어버렸으니.
자연스럽게도 김태리가 주인공으로 나온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잘 먹을 수 있다면, 잘 먹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잘 먹을 수 있을 환경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시골이라고 해도... 그런데 소설일 뿐.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그림 속 세상일 뿐. 소설인데 소설로만 읽히는 게 아닌 것이 보이지 않는 힘과 간섭에 속고 있는 느낌이 자꾸 든단 말이지.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쳐 있는 청춘들에게 시골에 가서 잘 먹고 기운 얻어서 돌아오라고 하는 듯이. 마치 이것이 놓치고 있던 진정한 힐링의 포인트라는 듯이.
주인공이 돌아갈 시골의 배경을 어디로 할 것인가, 부모는 주인공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가, 주인공은 도시에서 누구로부터 어떤 상처를 받았는가, 시골에서는 어떤 일을 하며 지낼 것인가, 하루하루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 것인가, 시골에서는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교류할 것인가, 마침내 회복하면서 얻은 새로운 능력은 무엇인가, 도시로 나갈 때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물음만 정리해도 단순하게 보인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게 될까? (y에서 옮김2025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