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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 ㅣ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4년 12월
평점 :
지구는 폭발해서 사라져버렸다. 폭발 직전에 살아남은 아서는 포드와 함께 우주를 떠돌게 되는데. 이렇게 쉽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니, 그동안 본 많은 영화에서는 지구를 지키겠다고 그토록 어려운 상황도 이겨내었는데 말이다. 지구가 없는 지구인이라, 그렇게 살아남아도 황당하기는 할 것 같다. 게속 살고 싶을까 할 만큼.
어쨌든 아서는 산다. 살아서 이동한다. 이 이동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서 더 기막히겠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옮겨 다닌다. 그것도 우주 곳곳을. 시간을 넘고 공간을 넘어서. 이쯤 되면 이게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헷갈릴 만도 하겠다. 이렇게 지구인 한 명은 우주에 던져진 채로 떠돌고. 아서라는 인물 탐구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2권에서는 우주의 대통령인 자포드에 주목하게 된다. 우주에도 대통령이 있어야 했더란 말이지. 그런데 이 대통령, 내가 알고 있던 대통령의 역할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대통령의 역할과 현실 세계 대통령의 실체 그 차이에 대하여. 작가가 자포드를 통해 풍자하는 낱낱의 비유에서 초반에는 거북함을 느꼈다가 점점 수긍이 되었다. 그래, 자포드같은 사람이 대통령인 게, 아니 대통령이 될 사람은 자포드 같은 사람인 게, 아니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데 실상은 그러고 있다는 게, 아, 이 작가, 나를 많이 혼란스럽게 한다. 소설인데, 그것도 우주 배경 소설인데, 말도 안 되는 상황 사이사이로 우리네 현실이 스며 나온다. 별로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모를 내용을 제법 만났다. 그런데 그게 소설을 읽어 나가는 데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런 게 있구나, 그런 게 있단 말이지?, 그런 게 있다고 인정하면서 읽다 보니 책장은 잘도 넘어 갔고 줄거리를 이어 가는 데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만 각종 이름들-사람 이름, 기계 이름, 장소 이름, 이론 이름 등등-을 작가가 얼마나 고민을 하면서 지었을지, 아니면 고민 없이 즐겁게 후딱후딱 지었을지 그런 게 궁금했고 그럴 때마다 잠시 책장 위에서 머무르곤 했을 뿐이다. 소설가는 이름을 짓는 데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하던데.
이 책 시리즈는 새로운 독서 경험을 준다. 시리즈 책을 읽으면 한 권 끝낼 때마다 다음 책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게 지극히 평범한 반응을 텐데 여기서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 아서 마냥 읽는 나도 될대로 되겠지 싶다. 지구가 없어졌다는데 무얼 더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y에서 옮김202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