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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ㅣ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평점 :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전이든 이후든 지금 가진 것으로 상상하여 만들어내는 세계란. 상상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하고 벅차서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데 이런 일을 해 주는 작가들이 있다. 자꾸 만난다. 고마울 뿐이다.
이 시리즈의 3권 중 2권. 무슨무슨 상을 얼마나 받았는가 하는 소개에서 내가 영향을 받았나 안 받았나? 모르겠다. 상관이 없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어서 읽고 싶다가도 아니지, 천천히 누리면서 읽어야지, 매순간 변덕을 부리면서 읽었다. 이제 한 권밖에 남지 않았다니,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고요 대륙. 지구와 같은 것인지, 지구 이전의 대륙인지, 지구 이후의 대륙인지. 조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행성인 걸 보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이 달라졌다. 사람과 더불어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낯설게 나열되고 있고. 조금만 더 따져 보면 사실 다르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화산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오로진(로가). 오로진을 제어하는 수호자. 이런 특별한 능력이 없는 둔치들. 2권까지에서는 정확하게 다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인 스톤이터. 같이 살아가는 듯 싶어도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가 생기고,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기도 하는 등 사람의 운명이 한 치 앞도 예상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살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다. 죽어가면서까지도. 그 상황에서도 사랑이라니.
세상을 만들어 내었으니 작가가 만든 낯선 이름을 만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초반에는 이 이름들 때문에 읽는 데에 많이 성가셨다). 이름 하나를 짓는 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 이게 꼭 소설 안에서만 겪는 일도 아니고,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다. 이제는 분명하게 알겠다.
오로진인 엄마 에쑨과 엄마와 같은 오로진인 딸 나쑨은 3권에서 만날 모양이다. 남편이자 아버지로부터 지켜낸 두 사람의 목숨이 어떤 모습으로 활약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y에서 옮김2023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