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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사소한 줄 알았던 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더 놀랍더란 말이지. 사소하다는 말, 사소한 일의 가치, 사소한 말의 소중함, 사소한 순간의 빛나는 정서를 나는 꽤 좋아한다. 크고 무겁고 위대한 족속보다 사소한 것들에 훨씬 친밀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내가 가진 사소함을 무엇보다 아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은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내용이 많지 않았고 어렵지 않았고 이리저리 꼬여 있지도 않았다. 서늘하고 담백했다. 그래서 좀 무서웠지만. 맞는 말, 바른 표현, 아주 현실 같은 이야기는 나를 위축시킨다. 마주하는 데 용기가 없는 나로서는 떨리는 마음으로 대한다. 그리고 눌린다. 글에 분위기에 주제에 문체에 어떤 경우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양심에도. 그래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계속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계속 읽어야 할 일이라는 당연한 자각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카톨릭 수녀회, 차별받는 여성, 고아와 입양, 개인의 삶과 역사의 흐름, 인류와 인간. 하찮은데 중요하다. 사소한데 지극히 아름답다. 어지럽고 불만스럽고 억울하고 한탄스럽다.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일 텐데도 일어나고 있다. 살아남는 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스러진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 것인지. 지금 당장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의 나에게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더 힘들어지려나? 이래도 살 수 있다고 믿으라고 해야 하나? 마땅한 권리나 마땅한 의식을 의심하자고 다짐하는 수밖에. (y에서 옮김202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