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첫숨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지금의 인류가 가진 모든 지성과 첨단의 과학기술을 모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 가능할까? 지구와 달과 화성과 목성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생명체가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지금 지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새 공간을 창조하는 일, 될까?
이 소설에는 이런 상상의 한 부분이 담겨 있다. 작가의 넉넉한 과학적 지식이 특유의 상상력과 합쳐져 글로 펼쳐지고 있어서 마치 학생들의 미래상상 글짓기나 그림 작품들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이건 당연히 내 수준이다. 나는 작가가 창조해 놓은 ‘첫숨’ 공간의 설명에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가 없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막연하게 그러려니 하면서 넘길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보여 주면 참 고맙겠는데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이런 내 상상력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모처럼 배명훈의 소설이 내 취향과 맞았다고 본다.
공간만 있으면 될까, 이게 문제다.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공간만 있으면 될 것이라고,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만 상상했던 것 같다. 인간이라는 종의 성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 사실은 늘 이게 문제였는데.
어찌 되었든 과학기술의 힘으로 공간을 만들었다고 하자. 공기도 물도 집도 땅도 다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중력의 힘도 이용하고 날씨도 계절도 기후도 만들어 내면서, 다 다스리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 간의 관계가 남는다. 힘, 권력, 서열, 인맥, 정보 통제, ...... 또 하나의 지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다를 바가 없는 지구, 같은 세상, 여전히 불합리한 면 때문에 누군가는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 다르지 않는 삶...... 그렇게도 나은 세상을 꿈꾸었건만.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결말의 단서가 내 기대와는 상당히 달랐지만, 실망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혼자서 긴장했던 게 쑥스러워서 슬그머니 책을 덮었다. 내가 꽤나 통속적이었음 깨달았던 탓. (y에서 옮김2017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