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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탄식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45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평점 :
아는 이름의 시집을 고른 것. 시인의 나이가 새삼스럽다. 많다고 해야 할지 어쩔지. 시인으로서는 나이란 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독자인 내 나이를 헤아려야 하는 것인가. 어째 나이가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싱그럽게 반짝이는 대신 묵직하게 울리는 시어들, 문장들의 모음집이다. 한 행 한 행을 따라 건너는데 부담은 안 생기고 뭉클거리는 마음이 쉴 새 없이 솟는다. 나이 드는 좋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슬퍼도 영 슬프지 않고 서러워도 영 서럽지 않게 된다. 받아들일 만하고 견딜 만하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차례차례 이어지는 생. 누가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먼저 떠나는 생. 남아 있는 마음으로, 기껏 한 차례 앞서 보내는 마음으로 두루 되돌아보면서 살핀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너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그래서 우리는 잘 살아온 것이었던가. 시인의 노래를 읊으면서 내가 불러 보고 싶은 이름을 떠올린다. 살짝씩 겹친다. 반갑고 고마울 일이다.
어른의 글에 자꾸만 기대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나는 도무지 어른이 못되고 있다. (y에서 옮김20230124)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를 조심해라. - P18
그러나 명당자리가 아니고 아무 나라 아무 땅이나 하늘이 다 좋다면, 더 이상은 바람 따라 우리가 흔들리지 않아도 되겠지. - P20
쉬운 것이 가끔은 가장 아름답다는, - P33
버려진 몸과 말이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 - P55
팔순 나이에는 다른 이들의 말과 삶이 밝고 싱그럽고 매혹적이다. - P56
어느 만남에서야 헝클어진 내가 모든 시차를 극복하고 진정한 현장이 될 수 있을까. 믿기지는 않지만 언제쯤 우리는 편견까지 넘어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 P57
눈부셨던 날도 흘려보내야 반짝이며 산다. - P59
나이 들면 어디가 아픈 것은 흔한 일인데 그게 사람을 좀 겸손하게 만드니 다행이다. - P71
사연이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곡절을 물으면 모두들 한나절일 텐데 눈감고 떠나는 마르고 작은 꽃씨같이 빨리 늙어 확실한 길을 걷고 싶어서 젊었던 나이가 힘들었던 나여. - P75
움직이고 숨 쉬는 것만이 사는 게 아니다. 나이 들수록 놀랍게 너그러운 날들 많아지고 쉬어갈 나무 그늘이 한 아름씩 늘어난다. - P81
나이가 들어서야 큰 것은 단순한 것에 스며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다. 해는 저물고 세월은 너와 나 사이로 흘러가는데 그 하늘은 아직 높고 멀기만 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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