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사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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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맛에 맞는 우리 작가의 소설. 이런 글을 발견할 때 참 반갑다. 내 마음에 드는 작가의 이름을 익혔다가 잊었다가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강한 다짐을 해 본다.

삶은 고단하고 형편은 여의치 않고 그럴 듯한 내일은 오지 않을 것만 같은데 계속 내일을 기다리는 우산씨와 해주씨. 어떤 상황에서도 우산을 접지 않는 우산씨나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갑을 짜야만 하는 해주씨나 내내 지켜 보고 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들이야 원래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더 나아졌으면, 형편이 괜찮아졌으면 대신 빌어 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소설 속 인물들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되도록 안 보려 하고 보더라도 따지게 된다. 계속 안 봐도 될 이유를 찾아 내기 위해. 인물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구성이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간단하다거나, 배경이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문체가 거슬린다거나, 대화가 너무 많거나 너무 없다거나, 등등으로. 마치 거르기 위한 장치처럼 나만의 잣대로 글을 지우고 작가의 이름을 지우곤 했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내가 구했다는 뜻이다. 계속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로.   

소설이 있음 직한 현실을 붙잡아, 있었으면 하는 상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들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때 이 글은 상상하는 사람을 제대로 도와 준다고 생각한다. 우산씨도 해주씨도 더 외롭지 않고 더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해주씨 가족이나 재하 오빠도 더 이상 나쁜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이라도 제값에 팔리기를, 현실이 아니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그렇게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현실에서 안 되니까 더더욱 간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십삼 년 전에 집을 나간 해주씨의 엄마가 돌아온 모습은 몹시 불편했다. 그렇게 돌아온 걸 짐작못한 것은 아니지만 짐작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또 속상하다. 아프거나 불행한 사람은 나아질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럴 방법이 있기는 할까? 소설이지만, 소설이라도 이렇게나 언짢은데, 현실에서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변명으로 고개를 돌리게 될까.  

작가가 그려 내는 인물들에 자꾸 끌린다. 싫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y에서 옮김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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