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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장소가 기억을 갖고 있다면, 창경궁의 대온실이 자신의 지난 날을 기억한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상상해 본 가정이다. 기억이 없어서, 기억할 줄 몰라서, 기억할 이유가 없어서, 대온실은 괜찮은 걸까? 어쩌면 우리도 이 기억 때문에 생의 일부를 고달프게 여기는 것일까? 기억이 나서, 기억할 줄 알아서, 기억을 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여태까지 이 작가의 글에 시큰둥했는데, 이 책이 나를 사로잡았다.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 읽기에 대한 내 기억의 한 굽이가 방향을 바꾸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창경궁에 대온실이 있다고 한다. 창경궁에 가 보았으나,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심지어 봤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대온실은 그리고 창경궁은 이 책으로 다시 살아난다. 나는 창경궁에도 가 봐야겠다. 대온실도 꼭 봐야겠다. 이 책을 읽게 된 바에 대한 보답이고 창경궁에게 느끼는 미안함을 지우는 결심이다. 어떤 글은 어떤 공간을 다시 살리고 어떤 체험도 다시 북돋우며 어떤 기억도 새로 바꿔 준다. 나는 이 책이 참 재미있었다.
창경궁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화자, 화자를 키운 다정한 어른들과 미숙한 영혼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오늘의 풍경들. 그리고 지난 날의 이야기 혹은 역사 혹은 비밀들. 작가는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엮어서 진짜 있었던 이야기처럼 느끼도록 해 주었다. 소설의 사명을 제대로 살려 낸 소설가라고 해야겠다. 있을 법한 이야기,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 세상 어딘가에 꼭 있기를 바라게 되는 이야기.
얼마 전 통영에 있는 충렬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늦가을 햇볕은 찬란하기만 한데 충렬사는 쓸쓸해 보였다. 내가 쓸쓸한 게 아니라 충렬사가. 창경궁 대온실은 기억에 없어 떠오르지 않고 인적 드물었던 충렬사의 적막한 심사만 자꾸 생각난다. 충렬사도 대온실과 비슷한 어떤 기억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라는데, 시간은 흐르고 있고 주변의 도로와 집들은 자꾸만 바뀌고 있고. 창경궁 가까이에 살았던 영두처럼, 누군가 영두처럼, 그리워하면서 한탄하면서 오늘을 애써 버티고 있지는 않을까?
대온실의 비밀이 무시무시했던 게 아니어서 아주 안심했다. 무시무시한 일이 너무도 쉽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 소설 안에서라도 그저 안도하고 싶었다. (y에서 옮김20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