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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연여름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올해 처음으로 반한 작가의 책이다. 이제야 읽은 게 못내 아쉽고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인 글들이었다.
개인의 불행한 요소와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놓은 SF 소설들로 채워져 있다. 입양, 자살, SNS와 덕질, 전염병, 장애인과 이민자, 성소수자, 존엄사 등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신기하고도 마법 같은 환상 세계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정녕 이러하였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바뀐 공간이 다른 행성이든 다른 우주든 또다른 평행 세계 안이든.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의 현실이 지긋지긋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으니 누구 탓을 해야 할지.
모두 9편. 어느 하나도 놓치게 되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안타깝던지.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일었다. 이게 내 병이지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감정이입, 살아 있는 것들이 온통 가여워서 나는 계속 주제넘는 생각만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나, 뭘 해야 하나, 고작 글이나 읽고 있을 뿐이면서. SF 소설이 본질적으로 반항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이 소설집에 대한 찬사를 놓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멋지고도 날카로운 반항이라니. 이대로 우리 사회의 곳곳을 콕콕 찔러 주었으면 싶다. 아프게 또 깊게.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에 나오는 설정이다. 주인공은 어느 행성으로 여행을 떠난다. 6개월이 걸리는데 그동안 동면을 할 수도 있고 내내 깨어 있을 수도 있다. 나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깨어 있는 쪽,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얻고 싶다. 설령 심심하고 지겨워서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하더라도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하여. 모처럼 이런 상상도 해 본다. 이 소설집이 이만큼 좋다.
리시안셔스는 장미와 비슷해 보이는 꽃의 이름이다. 구해서 키워 보고 싶다. (y에서 옮김20250105)